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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코하람 피납 여성들, "정부군이 오자 그들은 돌로 찍어 살해하기도 했다"

입력 2015-05-0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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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코하람에 피납됐다 구출된 나이지리아 소녀와 여성들은 구출되기 직전에 끔찍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전쟁터에서 완전히 벗어난 첫날인 3일 AP통신에 정부군의 총소리가 다가오자 보코하람 전사들이 더러는 돌로 찍어 죽이고 어떤 피납자는 장갑차에 깔려 죽었다고 말했다.

정부군에 구출돼 오는 과정에서도 3명이 지뢰에 사망했다.

이들 가운데 라미 무사(27)는 생후 5일 된 갖난애(여아)를 안고 "우리가 살아난 것은 신에게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첫번째로 구출된 275명의 여성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지난주 자신의 남편을 살해한 자들 가운데 1명과의 강제결혼에서 구출된 셈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나를 납치해 자기네 지휘관 가운데 하나와 결혼하게 됐다고 말했다"고 무사는 회상했다.

보코하람 전사들은 이미 남편을 살해했다면서 그의 세 자녀를 포기하도록 했다. 이 아이들의 운명은 아직 모르고 있다.

그것은 5개월전 라사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들은 내가 임신한 것을 알자 내가 '무신자'의 애를 뱃다고 말하면서 자기네가 이미 남편을 살해했다고 말했다"고 무사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들은 내가 동의하면 1주일 이내에 한 지휘관과 결혼하게 된다고 말했다.

무사는 남편과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증언하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그는 구출되기 전날밤 곱슬머리의 여아를 낳았다.

정부군이 다가와 총격전이 심해지자 보코하람이 여성들에게 자기네가 이동할 것이니 같이 가야한다고 말했다.

이에 여성들이 거부하자 돌로 찍기 시작했다.

여기서 살아 남은 무사와 살라마투 불라마(20)는 그로 인해 다수의 소녀와 여성들이 살해됐으나 정확히 몇명인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그 뒤 정부군이 왔으나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의 여성들은 관목 아래 숨어있었으나 정부군은 이를 모르고 인원수송장갑차를 그 위로 몰았다.

불라마는 "그 때 사망한 사람이 약 10명쯤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교전 과정에서 유탄으로 죽은 경우도 많았다.

구출된 뒤에도 이들을 실어 나를 차량이 충분치 않아 일부의 여성들은 걸어 가야 했으며 정부군들은 보코하람이 숲속에 지뢰를 매설해 두었으니 차량들의 바퀴 자국을 밟고 가라고 말했다. 그래도 사망자가 나왔다.

불라마는 2개월전에 병으로 죽은 자신의 2살짜리 아들을 생각하면서 베일로 얼굴을 가리며 울었다.

그는 빌린 휴대전화로 소식을 전해주는 다른 생존자로부터 그의 남편이 북부 도시 카두나 읍에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자 "그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하면서 통곡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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