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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영표 "박지성 대표팀 복귀? 글쎄..."

입력 2014-01-16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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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영표 "박지성 대표팀 복귀? 글쎄..."


월드컵이 다가올수록 왠지 더 보고 싶어지는 남자가 있다. '초롱이' 이영표(37)다.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한 음식점에서 이영표를 만났다. 지난해 11월 은퇴한 후 두 달 정도가 지났지만 이영표는 선수 시절과 다름 없이 날렵했고,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초롱초롱한 눈빛도 여전했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할 때 눈을 빛냈다. 앞으로 2~3년 동안 캐나다 밴쿠버에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보통 운동 선수들이 은퇴 후에는 스포츠 관련 분야를 공부한다. 그런데 이영표는 "MBA(경영학 석사)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것도 캐나다에서 말이다. 'MBA는 한국에서 따도 되지 않나'라고 물었더니 단호하게 "아마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면, 좀 더 편하게 학위를 따도록 도움을 받을 확률이 크다. 그러고 싶지 않다. 어차피 공부를 하려고 마음 먹었는데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이영표는 은퇴 후에도 참 치열하게 살고 있다. 그는 2014 브라질월드컵 때 KBS 해설위원을 맡았다. 워낙 말솜씨가 좋으니까 선수 시절 뒷이야기만 풀어놔도 해설은 저절로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해였다. 이영표는 "연습 해설을 한 번 했는데, 자료 준비하느라 꼬박 사흘이 걸렸다. 내 평생 공부했던 시간을 다 합한 것보다 더 오래 책상에 앉아있었다"며 웃었다.

-앞으로 구체적으로 어떤 공부를 할 계획인지 궁금하다.

"MBA를 준비할 계획이 있다. 물론 아직 입학이 확정된 건 아니라 말하긴 조심스럽다.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UBC) MBA 과정을 듣고 싶어서 입학 준비 중이다. 다른 부분은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GMAT(해외 경영대학원 및 일반 대학원 진학을 위한 시험) 점수 최소 550점(800점만점)이 필요하다고 하더라. 이 시험은 영어와 수리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라서 수학적인 기초지식도 필요한데 걱정이다."

-스포츠 분야가 아니라 경영학을 공부하려는 이유는 뭔가.

"MBA 과정을 배우고 나면, 그걸 스포츠에 접목할 수 있다. (구단 경영에 관심이 있는 것인지 묻자) 그쪽에도 관심은 있다."

-요즘 박지성(에인트호번)의 대표팀 복귀 여부가 화두다. 박지성이 대표팀에 돌아올 거라고 보나.

"글쎄, 복귀하지 않을 것 같다. 은퇴라는 건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다. 어떤 물건을 이제 그만 쓰기로 결심하고 아주 예쁘게 포장하는 것이다. 지성이는 이미 세 번의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뛰었고, 아주 완벽하게 포장을 끝냈다. 그런데 대표팀에 복귀한다면, 그 포장을 다시 뜯는 것 같은 기분이다. 포장을 뜯은 자국도 남고, 또 다시 싸려면 그만큼 완벽하게 못 쌀 것 같은 기분이랄까."

-축구 선수라면 월드컵에 많이 나가고 싶은 욕심이 나지 않을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경우엔 이미 2002 한·일월드컵을 너무 훌륭하게 해냈다. 제대로 된 월드컵 출전 한 번이 열 번 나가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다. 나도 대표팀 은퇴 후에 주위에서 조금만 더 뛰면 A매치 최다기록(홍명보 135경기) 넘을 수 있다며 다시 복귀하라고 했다. 조광래 전 대표팀 감독님은 나에게 복귀를 권유하면서 '너는 한국 축구를 통해서 커다란 은혜를 입었는데 국가가 이렇게 어려울 때 모른척 하냐'고 하셨다. 그때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괴로웠다. '내가 정말 이기적인 놈인가'라는 고민도 했다. 대표팀 은퇴는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고 결정한 것이다. 떠난 자리에 다시 돌어올 때는 스스로 납득할만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은 해설위원으로 현장을 가게 됐다.

"먼저 전지훈련 중인 30일 미국에서 열리는 멕시코전에서 해설위원으로 데뷔할 것 같다. MBC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는 송종국에게 해설 잘하는 비법 좀 얻으려고 연락을 했다. 그런데 종국이가 '해설 잘 하는 법? 난 원래 타고 났다'고 하더라(웃음). 나는 큰일이다. 그냥 '못 하더라도 방송사고 밖에 더 나겠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이미 월드컵에 출전하면서 국민들에게 많은 욕을 먹었다. 욕을 더 먹는 건 괜찮다."

-2002년 멤버였던 안정환 역시 MBC 해설위원이다.

"정환이 형은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테크니션이다. 유럽에도 그런 기술을 갖춘 공격수는 보기 어려웠다. 나는 수비수였으니까 정환이 형을 항상 뒤어서만 봤다. 축구하는 동작이 그렇게 우아할 수가 없다. 현재 대표팀 공격수 손흥민(레버쿠젠)도 기술적으로만 보면 정환이 형에 못 미친다. 손흥민은 슈팅력이 있고, 스피드가 좋고 순간적인 재치가 있다. 손흥민이 대표팀에서 팀플레이나 수비가담에 대한 지적을 받는다고 들었다. 정환이 형도 수비를 잘 못했다. '수비 포기 형'이었다(웃음). 그런데 그런 정환이 형도 2002 월드컵 때는 수비 정말 열심히 했다. 공격부터 수비까지 전원이 하나로 똘똘 뭉쳐서 경기를 했기 때문에 그때 4강까지 간 거다."

-해설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나.

"지난해 10월 12일에 대표팀이 브라질과 평가전을 했다. 그 경기로 최근에 연습 해설을 했다. 준비하는데 사흘 걸렸다. 결국 어제는 토하고 몸살까지 났다. 현역 시절에도 잘 몰랐던 다른 선수들 기록을 다 파악하게 됐다. 아내가 '해설 하지 말라'고 하더라(웃음)."

-자료를 정말 꼼꼼하게 준비하는 모양이다.

"인터넷으로 선수 관련 기록을 열심히 찾았다. 스토커마냥 사생활까지도 다 알게 됐다. 멕시코의 라파엘 마르케스(클럽 레온·멕시코의 홍명보로 불리는 선수)는 결혼을 두 번 했더라. 처음에는 배우, 그 다음은 모델과 했다(웃음). 이 선수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바르셀로나에서 7시즌을 뛰었고, 그 시기에만 12개 트로피를 들었다."

-놀랍다. 그걸 다 외운 건가. 마르케스가 한국전에 안 나오면 어떡하나.

"마르케스가 멕시코 대표팀 주장이라 꼭 나올 것이다(웃음). 중계 카메라가 관중석을 잡을 때를 대비해서 멕시코 축구협회장과 축구 관련 인물 사진까지 다 찾았다."

-다른 선수들 경력과 기록도 다 외우나.

"하도 많은 자료를 보다 보니까 외워졌다. 재미있는 기록이 많더라. 브라질 공격수이자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네이마르는 2009년부터 대표팀과 클럽팀에서 총 12개 트로피를 들었다. 개인상은 무려 42개를 받았다."

[인터뷰] 이영표 "박지성 대표팀 복귀? 글쎄..."
-방대한 축구 지식을 쏟아내는 한준희 KBS 해설위원 뺨친다.

"한준희 해설위원 중계를 재밌게 봤다. 선수 출신이 아닌 해설위원은 확실히 시청자들 눈높이에 맞게 해설을 잘 한다. 사실 예전에는 비(非) 선수 출신 해설위원들이 내 플레이를 지적하면 발끈했다. '이영표 선수, 이렇게 하면 안 되죠'라고 하면 '뭘 안다고 그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 분들이 정말 고맙다. 그 분들 때문에 축구팬도 더 늘었고 축구 저변이 더 넓어졌다."

-유럽에서 선수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생생한 뒷얘기가 많이 나올 것 같다. 2006 독일 월드컵 당시 차범근 해설위원이 독일 대표팀 요아힘 뢰브 코치를 보고 "선수 시절 제 백업이었습니다"라고 발언해 화제였다.

"나도 그런 선수가 있던가? 아, 토트넘에서 뛸 때 '1500억 원의 사나이' 가레스 베일(레알 마드리드)이 내 백업 선수였다. 당시 베일은 아주 어렸고, 풀백으로 뛰었다. 그런데 이 선수는 웨일즈 대표팀 아닌가? 월드컵 본선에 출전 못하니 '제 교체 선수였습니다'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많이 아쉽다(웃음). 네덜란드 미드필더 아르연 로번(바이에른 뮌헨)하고도 친했다. 내가 에인트호번에서 뛰던 시절에 로번이 18살쯤 됐는데, 이미 그 때부터 머리숱이 적었다. 당시 동료들이 로번 앞에서 머리를 만지면서 놀리면 로번이 씩씩 대고 화내면서 숟가락을 집어던졌다(웃음)."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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