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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다시 한 번 헤드록'

입력 2018-09-04 21:29 수정 2018-09-04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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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좁은 사각의 링.

그 안에는 마치 '동물의 왕국'과도 같은 세상사가 모두 담겨있었습니다.

둘 중의 한 사람이 나가떨어지는 순간까지 뒤엉켜 싸우는 사각의 링은 종종 반칙이 난무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맨몸과 맨주먹으로 서로를 상대했기에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쥐고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송강호 주연의 영화 < 반칙왕 > 에서도 나약한 은행원이었던 주인공은 사각의 링 위에서 세상사에 억눌렸던 일상을 판타지로 극복해갑니다.

헤드록.

어슴푸레 잊혀가던 프로레슬링 용어는 영화 덕에 다시 살아나 일상에 유행하기도 했었죠.

실제로 지난 1960년대와 70년대를 풍미한 프로레슬링은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의미로 한국사회에 존재했습니다.

역도산이 일제강점기 이후에 우리의 민족적 자긍심을 회복시켜주었다면 프로레슬링 1세대인 김일, 장영철, 천규덕은 좁은 사각의 링 안에서 몸을 던지고 또 던져 식민지와 전쟁을 겪어낸 한국인들의 상실감을 채워주고는 했으니까요.

거구의 미국 선수들은 물론이고, 단골 적수인 일본 선수들을 상대로 김일의 박치기, 장영철의 두발당수, 천규덕의 태권도는 그렇게 스포츠의 사회학을 완성해냈습니다.

동네에 1대뿐인 텔레비전 앞에 모여 저 같은 꼬마들조차도 끝 모를 애국심에 불타오르던 시절…

"프로레슬링은 쇼다" 

논란의 그 발언으로 프로레슬링은 사양길을 걸었다지만 쇼이건 아니건 이미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로 인해 행복했고 의기충천했던 가상현실의 세계…

이제는 찌든 가난과 상실감에서는 벗어난 시대라고는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고 삶은 고달프기에…

우리는 그로부터 훨씬 훗날까지도 바로 이 사람…

이왕표를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프로레슬링의 끝자락에 서 있던 그가 오늘 세상과 작별했습니다.

플라잉 드롭킥.

전매특허와도 같았던 발차기의 주인공은 그의 선배들이 이룩해놓은 로망과도 같았던, 그러나 치열했던…

가상현실의 거의 마지막 주인공이었습니다.

"저도 헤드록 해드릴 수 있습니다"

지난 2015년 은퇴를 선언한 날 뉴스룸에 출연했던 그는 그보다 4년 전 노지심 선수와 함께 저를 만났을 때를 기억하고는 그렇게 말했었지요.

오늘은 좀 참아 달라면서 다음을 기약했었는데…

조금은 민망하더라도.

그때 그냥 해보시라고 할 걸 그랬습니다.
 


다시 한 번 헤드록!!
 - 이왕표 (1954~ 2018)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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