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 대한 제재심의위원회의 결정을 뒤집고 징계수위를 '중징계'로 최종 확정했다. 이에 따라 이 행장은 사퇴했고, 임 회장도 퇴진 압력에 직면했다.
최수현 금감원장은 4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사옥에서 브리핑을 갖고 "제재심 종료 후 지난 2주일동안 심의과정에서 규명된 사실관계 및 해당 법규 등을 종합적으로 면밀히 검토했다"며 "그 결과 임 회장에 대한 중징계를 금융위원회에 건의하고, 이 행장에 대해서도 중징계를 확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 원장은 특히 "신뢰를 생명으로 여겨야 할 금융사 최고경영진이 제재 대상자가 됐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유감스럽고,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최고경영자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 또한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며 공개적으로 사퇴를 요구했다.
최 원장은 이와 함께 "이경재 KB금융지주 이사회 의장과 김중웅 KB국민은행 이사회 의장을 만나 경영진간 갈등과 조직 내 반목을 그냥 덮을 것이 아니라, 근본원인을 발본하고, 철저한 인적·조직 쇄신을 통해 경영의 독단과 공백을 동시에 해소해줄 것을 간곡히 당부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의 최종 결정이 발표된 직후 이 행장은 사퇴 의사를 밝혔다. 금융계에서는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임 회장의 사퇴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은 당초 지난 6월 주전산기 교체 등의 문제로 임 회장과 이 행장에 대해 중징계를 사전통보했다. 하지만 금감원장 자문기구인 제재심의위원회는 6차례에 걸친 회의 끝에 지난달 21일 경징계로 제재수위를 한 단계 낮췄다.
최 원장은 제재심의위의 결정을 뒤집고 원안대로 중징계를 결정했다. 금감원장이 제재심의위의 결정을 뒤집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감원은 임 회장 등 KB금융지주 경영진이 국민은행 주전산기의 유닉스 전환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심각한 시스템리스크를 은폐해 경영협의회와 이사회에 보고하도록 국민은행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판단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임 회장은 국민은행의 주전산기를 유닉스로 전환하는 사업을 강행하려는 의도로 은행의 IT본부장을 교체하는 등 자회사 임원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했고, 국민은행은 주전산기 관련 컨설팅보고서가 유닉스에 유리하게 작성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고, 성능검증결과와 소요비용 등을 이사회에 허위 보고했다.
최 원장은 "KB금융그룹에는 총체적 내부통제 부실로 대형 금융사고가 수년에 걸쳐 연이어 발생했고, 최근에는 해외지점이 외국 금융감독당국에 의해 영업 정지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며 "더 큰 금융사고를 예방하고 흐트러진 금융질서를 바로 잡아야 하는 금감원장으로서 확실한 책임을 묻는 것이 KB금융이 선진금융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는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KB국민은행의 주전산기 기종변경 절차 진행과정에서 이사회 안건 왜곡 및 허위보고 등 범죄행위에 준하는 심각한 내부통제상 문제가 표출됐다"며 "고도의 도덕성을 갖추어야 할 금융인에게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위법행위이므로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KB금융과 국민은행에 중징계인 '기관경고' 제재를 결정했다. 이와 함께 임 회장을 제외한 KB금융 임직원 4명에 대해 정직과 견책, 주의 등을, 이 행장을 제외한 국민은행 임직원 16명에 대해 정직, 감봉, 주의적경고, 견책, 주의 등의 조치를 취했다.
한편 이건호 행장은 금감원이 중징계 방침 발표 직후 "은행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 내 행동에 대한 판단은 감독당국에서 적절하게 판단한 것으로 안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