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밀착카메라] '왜, 누가…' 불 꺼진 뒤 더 바쁜 '산불 국과수'

입력 2020-04-29 21:28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앵커]

사흘 동안 경북 안동 지역을 태운 산불이 지난 주말에야 꺼졌죠. 불 끌 때보다 꺼진 뒤가 더 바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산불 국과수라고 불리는 원인 감식반인데요. 돌을 하나하나 뒤집어보고 주민들 얘기도 들어보면서 원인을 찾습니다.

밀착카메라 서효정 기자가 동행 취재했습니다.

[기자]

폐허가 될 만큼 매서운 불이었지만, 큰 인명 피해나 문화재 훼손은 없었습니다.

취재진이 찾아간 마을에선 일상으로 복귀한 사람들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하지만 분위기는 뒤숭숭했습니다.

[권순학/경북 안동시 남후면 고하리 : 아니, 그러니까 외부에서 들어오는 소문이 뭐 내가 알기로 세 가지야, 세 가지. 말 못 해.]

불이 왜 났는지 저마다 의심하는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는 산이 깊어서 일반 사람들이 등산하고 잘 그러지는 않을 텐데…]

이들은 한 목소리로 원인을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김인동/경북 안동시 남후면 고하리 : 밝혀야 되지, 그걸. 그렇게 무심코 있어 가지곤 안 되잖아요? 안 그래요?]

불을 끄고 난 뒤의 산은 불을 끌 때 만큼이나 바쁩니다.

화재 원인을 알아내는 작업에 바로 착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검은색과 푸른색의 대조가 선명합니다.

낙동강 주변 산자락엔 불이 할퀴고 간 자국이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까맣게 타버린 산은 흙바닥이 그대로 들여다보입니다.

불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찾기 위해 산림청 원인감식반이 모였습니다.

울창한 풀숲을 헤치고 산을 올라가 봅니다.

앙상한 나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불은 산을 타고 내려오다 바로 이 지점에서 멈춰 섰습니다.

당시 산불진화대원들이 풀과 낙엽을 이쪽으로 쓸어모아서 이렇게 방화선을 구축한 겁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새카맣게 타버린 나무가 많아집니다.

바닥은 재로 뒤덮였습니다.

몇 분 만에 신발과 바지가 검게 변합니다.

감식반원들은 돌멩이를 하나하나 살피며 올라갑니다.

돌이 탄 흔적을 보면 불이 어디서 온 지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병두/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방재연구과장 : 이것은 화염이 이렇게 왔기 때문에 여기에 얼룩이 지는 거죠. 반대편은 상대적으로 깨끗하게 남아 있는 상태가 되고요.]

물론 속단해서는 안 됩니다.

증거물이 움직였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돌을 하나하나 뒤집어봅니다.

[이병두/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방재연구과장 : 보시면 하단부에 재가 없죠. 맨흙이죠. 안 움직인 거고. 얘는 어디선가에서 굴러온 거죠. 얘는 증거로서 자격이 없고, 얘는 증거로서 자격이 있죠.]

이번 불은 이른바 '날아다니는 불'이라서 추적이 더 까다롭습니다.

작은 불티가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넘어가는데 몇 초밖에 안 걸렸습니다.

[권춘근/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전문조사관 : 저기 시커먼 데 보이죠. (저기까지 넘어갔다고요?) 지도상에 봤을 땐 1.3㎞ 넘어갔어요.]

비슷한 거리엔 사적 제 260호 병산서원도 보입니다.

[이병두/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방재연구과장 : 불똥이 2㎞까지도 날아가니까 저기를 지키려고 진화자원들 많이 투입해서 계속 지켰던 거죠.]

조사를 마친 곳은 깃발을 꽂아두고, 헷갈릴 땐 산에서도 다시 노트북을 꺼냅니다.

[권춘근/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전문조사관 : (어디가 어딘지 아세요?) 다 알죠. (다 산 같은데 그냥…) 주변에 지형지물이 나와요. 밭이 어디 있고 강이 어디 있는지. 대표적 지형지물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거죠.]

가방 안엔 조사를 수월하게 해주는 도구들이 가득합니다.

[권춘근/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전문조사관 : (개인 짐은 하나도 없으시네요?) 없어요. 이건 쳐 놓는 거예요, 들어오지 못하게. 증거물 수집할 때 쓰는 장갑. (타 기관에서 저희를) 산림분야의 국과수라고 해요.]

주민들의 증언도 꼼꼼히 듣습니다.

이번엔 서른 명 정도 말을 들었는데, 그중에 믿을 만한 말을 가려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권춘근/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전문조사관 : 한 번 물었을 때, 두 번 물었을 때 다른 답변을 받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불낸 사람이랑 관계가 있거나 이해관계가 있는 분들이지 않을까…]

감식반은 이런 식으로 5일 동안 조사한 내용을 20장짜리 보고서로 작성하는 중입니다.

최초 발화지는 가려졌습니다.

보고서는 경찰 수사의 토대가 됩니다.

[권춘근/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전문조사관 : 잘못된 보고서가 나가게 되면 또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자료들을 최대한 많이 수집하고…]

이번 산불 진화에 동원된 헬기만 총 32대, 차량 215대, 사람은 3400여 명에 달합니다.

피해 주민들은 이 감식 보고서를 통해 산불의 진상이 드러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VJ : 박선권 / 인턴기자 : 이두리)

관련기사

안동 산불, 강풍에 되살아나…'축구장 140배' 잿더미 건물 덮치고 산불도 활활…강풍 덮친 영남, 피해 속출 났다 하면 대형…강원도 동해안 '산불과의 전쟁' 한창 이맘때 떠오르는 '산불 악몽'…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