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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붙어보고 싶었는데"…'코로나 장기전' 토론서 불붙은 '거리두기 완화' 논쟁, 이면엔?

입력 2020-10-28 09:18 수정 2020-10-2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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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붙어보고 싶었는데"…'코로나 장기전' 토론서 불붙은 '거리두기 완화' 논쟁, 이면엔?
 

(권순만 교수님과) 토론을 붙어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어쩔 수 없네요


어제(27일)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이 주최한 '코로나19 대응 중간평가 및 장기화 대비 공개 토론회'가 끝난 뒤 한 참석자가 기자에게 전한 소감입니다. 코로나19 장기화에 어떻게 대비할지 논의하기 위해 각계 전문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논쟁에 불을 댕긴 주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취재설명서] "붙어보고 싶었는데"…'코로나 장기전' 토론서 불붙은 '거리두기 완화' 논쟁, 이면엔? 27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중간평가 및 장기화 대비 포럼` 참석자들. 맨 왼쪽이 권순만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사진=연합뉴스)

■ 젊은 층 감염돼도…방역 완화하고 고위험군 집중 보호하자?

"확진자를 최대한 줄이는 것보다,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을 정책 목표로 삼아야 한다"

3명의 주제 발표자 중 한 명이었던 권순만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포럼에서 내놓은 제안입니다. '확진자가 많아지면 당연히 사망자도 더 많이 생기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다릅니다. 아래 표처럼 2009년 유행했던 신종플루와 비교해 보겠습니다. 40대 이하가 걸렸을 때는 모두 치명률이 0에 가깝지만, 나이대가 올라갈수록 차이가 크게 벌어집니다. 표에는 없는 80대 이상 환자만 따로 떼어 놓고 보면, 코로나19의 치명률은 20%를 넘습니다.
 
[취재설명서] "붙어보고 싶었는데"…'코로나 장기전' 토론서 불붙은 '거리두기 완화' 논쟁, 이면엔? 자료: 질병관리청

권 교수는 그래서 이런 주장을 펼칩니다. "젊은 사람들은 더 풀어주고, 대신 감염에 약한 고령층과의 접촉을 최대한 줄이자." 이러면 젊은 층 확진자 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중증 환자가 될 위험이 적으므로 우리 의료체계가 충분히 견뎌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망 위험이 큰 고령층을 보호해 인명피해를 최대한 줄이자는 전략입니다.
 
[취재설명서] "붙어보고 싶었는데"…'코로나 장기전' 토론서 불붙은 '거리두기 완화' 논쟁, 이면엔? 권순만 교수 발표 자료 캡처

이런 주장의 배경엔 코로나19 유행이 길어지면서 심해지는 사회적 피로감이 있습니다. 밤 9시 이후 식당과 술집 문을 닫게 했던 2.5단계 거리두기 같은 강력한 봉쇄 정책을 오랫동안 끌고 가기는 어렵습니다. 포럼에 함께 참석했던 중앙사고수습본부 윤태호 방역총괄반장은 앞으로 코로나19 대응의 키워드는 "지속 가능성"이라고 했습니다. 거리두기 수준을 낮춰 지친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으면서도, 고위험군의 인명 피해는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는 얘기입니다.

■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감염 규모 줄여야 고령층도 보호"

하지만 방역 현장의 전문가들은 다른 목소리를 냅니다. 권 교수에 이어 토론에 나선 나백주 전 서울시 방역통제관은 "감염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사망률을 최소화하는 데에도 굉장히 중요하다"라고 맞받았습니다. 그러니까 고위험군 인명피해를 줄이려면, 일단 확진자 수부터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김탁 순천향대 감염내과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을 더 풀어준다"는 표현이 거리두기를 안 지켜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취재설명서] "붙어보고 싶었는데"…'코로나 장기전' 토론서 불붙은 '거리두기 완화' 논쟁, 이면엔? 나백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전 서울시 재난안전대책본부 방역통제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꼬리물기 논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방역당국은 고위험군 보호 전략을 지난 2월 1차 유행 이후부터 계속 추진해 왔습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면회는 반년 넘게 전면 금지입니다. 거리두기 2단계가 유지되는 동안엔 노인 복지관이나 경로당도 폐쇄됐었습니다. 이제야 다시 문을 여는 곳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정책은 고위험군 보호에 성공했을까요? 숫자를 보면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5월 이전까지 60대 이상 확진자 비율은 23.6%였습니다. 그런데 수도권 확산이 시작된 5월 이후부터 오늘까지는 31.5%입니다. 고위험군 보호 정책을 폈는데도 오히려 오른 것입니다. 지난 2일 정례브리핑에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전체의 감염 규모를 줄여야만 고령층도 같이 보호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했습니다. 지역사회에 이미 바이러스가 퍼져 있다면, 고위험군이 많은 요양 시설을 보호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 '거리두기' 비용은 취약계층이 치러…"수용 가능한 위험" 고민해야

발표를 한 권순만 교수에게 이런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접 물어봤습니다. "그런 지적도 받아들인다"라고 했습니다. 고위험군을 온전히 보호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사실도 어느 정도 인정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확진자 수를 0으로 만들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면, 우리 사회가 "수용 가능한 위험"이라는 개념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게 권 교수의 의견입니다.

예를 들어, 고령층이 자주 찾는 복지관 문을 닫는 것은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조치입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갈 곳을 잃게 된 고령층이 방문판매업체 같이 오히려 더 위험한 장소를 찾아갈 수도 있습니다.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학교 문을 닫았지만, 그러다 보면 학생들이 코인노래방이나 PC방처럼 더 위험한 장소로 몰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래도 감염 관리를 잘 할 수 있는 복지관이나 학교가 문을 여는 게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취재설명서] "붙어보고 싶었는데"…'코로나 장기전' 토론서 불붙은 '거리두기 완화' 논쟁, 이면엔? 권순만 교수 발표 자료 캡처

권 교수는 "이런 논의를 할 수 있는 것도 방역이 지금까지 잘해 온 덕"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거리두기의 비용은 복지관에 갈 수 없게 된 노인, 돌봄을 도맡게 된 여성, 일자리를 잃은 젊은이처럼 사회적 약자가 많이 치르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더 오래 버티려면,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은 어제 토론회가 "사회적 거리두기의 기준과 내용을 개편하는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열렸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으로 거리두기를 완화할지, 강화할지 의견을 나누는 중요한 자리였던 셈입니다. 하지만 논쟁적이었던 권 교수의 발표는 일단 발표로만 끝이 났습니다.

앞서 "토론을 붙고 싶었다"라는 소감을 남긴 익명의 참석자와도 통화해 봤습니다. "더 깊은 토론이 필요한 주제이니 다음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했습니다. 바이러스와 함께 맞는 두 번째 겨울을 앞둔 지금, 우리 사회가 머리를 맞대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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