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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정 의붓아들 사망 "가해자 밝히지 못한채 영구미제 가능성"

입력 2020-07-16 16:12

"'밀실살인'인데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
현남편 측 "대법원이 새로운 법리로 실체적 진실 규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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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살인'인데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
현남편 측 "대법원이 새로운 법리로 실체적 진실 규명해야"

고유정 의붓아들 사망 "가해자 밝히지 못한채 영구미제 가능성"

고유정(37)이 항소심에서도 의붓아들 살해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2심 재판부는 왜 고유정에게 의붓아들 살해 죄를 물을 근거가 없다고 했을까.

광주고법 제주재판부 형사1부(재판장 왕정옥 부장판사)는 15일 제주지법 201호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살인과 사체손괴·은닉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유정에게 1심과 같은 무기징역을 선고하면서 의붓아들 살해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만으로 살인죄를 인정할 수 있을지가 문제가 된 이 사건에서는 범행 동기, 범행수단의 선택, 범행에 이르는 과정, 범행 전후 피고인의 태도 등 여러 간접사실로 봐 피고인이 범행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할 만큼 압도적으로 우월한 증명이 있는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고유정이 지난해 3월 2일 오전 4∼6시께 충북 자택에서 잠을 자던 네살 의붓아들의 등 뒤로 올라타 손으로 피해자의 얼굴이 침대 정면에 파묻히게 머리 방향을 돌리고 뒤통수 부위를 10분 가량 강하게 눌러 살해했다고 기소했다.

검찰 측은 의도치 않게 다리 등에 의해 눌려 죽음을 당하는 포압사 가능성이 낮다는 법의학자들의 의견과 이 사건 전후 고유정의 증거 인멸 행위를 비롯한 의심스러운 행적 등 간접사실들을 종합해 고유정이 의붓아들을 고의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간접 증거의 증명력을 하나하나 검토했다.

재판부는 제3자의 출입이 없던 자택에서 사망한 의붓아들의 사인이 질식사라는 법의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에 따라 '포압사' 또는 고유정이나 현남편의 고의적 행위에 의해 질식사가 발생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의붓아들이 현남편의 신체에 눌려 질식사했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법의학자들의 의견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여러 사정이 함께 뒷받침되지 않는 한 감정 결과나 법의학자들의 의견만을 근거로 바로 고유정이 의붓아들을 살해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검찰은 사망 원인에 대한 1천500만여건의 의학논문 전수조사를 근거로 만4세 어린이가 성인의 몸에 눌려 포압사한 경우가 단 한 건도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통계일 뿐"이라며 포압사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법의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의붓아들의 사망시각에 대해 정확한 추정이 어렵고, 그 시각 고유정이 깨어 있었다고 검찰 측이 제시한 인터넷 검색 기록도 잘못된 것이어서 이를 바탕으로 검찰이 내세운 정황이 살해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결론지었다.

현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범행을 했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수면제 복용 시기가 모발 채취일부터 약 4.5개월 이전까지의 기간으로 대략 추정되었을 뿐이어서 고유정이 수면제 가루가 섞인 차를 마시게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근거로 삼기에 부족하다"고 봤다.

이어 더해 재판부는 "고유정이 수면제 성분이 들어있는 약에 관하여 사전에 특별한 지식이나 정보가 있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고유정으로서는 현남편에게 얼마만큼의 수면제를 투약해야 하는지, 약의 효과가 언제부터 발현되고 언제까지 지속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고유정에게 2007년 벌금형 선고 이후 범죄전력이 없는 점과 고유정에게 의붓아들을 살해하고 그 누명을 씌울 만큼 심리적, 정서적 위험 요인이 있었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특별한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재판부는 "살해할 만한 뚜렷한 범행동기가 인정되지 않는 이상 고유정이 현남편에게 적개심을 표현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거나 메모를 작성한 사실만으로는 고유정이 의붓아들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는 없다"며 고유정의 손을 들어줬다.

이 사건이 대법원으로 갈 경우 고유정에게 의붓아들 살해 혐의가 인정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대법원 상고심은 법정 변론 없이 검찰과 피의자 측이 2심까지 제출한 증거와 증언을 담은 서류만으로 법리적 쟁점을 검토해 법률이 제대로 적용됐는지 만을 보게 된다.

따라서 의붓아들 사망 사건에 대해 고유정에게 다시 책임을 물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이번 사건이 이른바 '밀실살인'에 해당해 고유정의 고의 살해 또는 전남편의 과실치사 두가지 경우의 수 밖에 없음에도 1·2심 재판부는 결과적으로 '포압사'와 '살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판단을 피해갔다.

항소심 첫 공판에서 검찰이 "사망원인이 가장 핵심인데 1심은 그에 대한 판단을 우회하고 회피했다"며 "항소심에서 아이 사망원인이 살해인지에 대해 판단이 명확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2심 재판부도 이에대해 명확한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수많은 말들이 오가게 된 이유다.

현남편 측의 이정도 변호사는 16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대법원 재판이 '사실심'이 아니라 '법률심'의 특성을 갖기 때문에 항소심 판결에 명확하게 법리오해 부분이 없다면 쉽게 재판 결과가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이 변호사는 "상고 이유로서 제시되는 것이 사실관계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일지라도 사실관계의 인정 역시 법리에 기초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증거의 채택, 심리가 법리에 충실했는지에 대한 검토가 이뤄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변호사는 "법리오해 측면에서 대법원 역시 0에 가까운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법리를 만들어서라도 의붓아들 살해사건의 실체적 진실(가해자)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법원이 항소심의 결과를 뒤집지 않을 경우 의붓아들 살해 사건은 가해자를 밝히지 못한 채 영구미제가 될 전망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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