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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시인' 할머니들의 추석 "올라믄 마스크 단디 쓰고…"

입력 2020-09-30 10:21 수정 2020-09-3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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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코로나19의 재확산 우려 때문에 귀성을 포기하신 분들 많죠. 고향에 계신 부모님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자녀와 손주들을 보고싶지만 선뜻 오라는 말씀은 못하시고 코로나19를 그저 원망할 뿐입니다.

멋진 시에 마음을 담은 지리산 산골 마을 할머니들을 김나한 기자가 소개해 드립니다.

[기자]

매일매일이 다를 것 없는 고즈넉한 산마을에도 시가 익어갑니다.

[시 '아파요' - 박옥영 : 자주 오던 손자놈도 코빼기도 안 보이네 다 코로나 뭐이단가 죽일 놈 내 손에 죽이삐야 하는데]

여든다섯 인생에도 전 세계가 아프다고 아우성인 건 본 적이 없는데, 답답하고 걱정되는 마음을 또박또박 옮겼더니 한 편의 시가 됐습니다.

[시 '농사짓기' - 박순자 : 글농사는 밤이고 낮이고 마음 쓰니 잘 지어지는데 깨농사는 마음이 주저앉아버리네]

올해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 사무총장상, 행복글상 수상작들입니다.

지리산골 할머니 시인들이 일으킨 작은 돌풍입니다.

[깨농사를 짓는다…]      

멋 부릴 마음 없이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시는 할머니들의 삶을 그대로 담았습니다.

2, 3년 전 군청에서 연 문해교실을 다니며 겨우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글자,

[박순자(74)/경남 산청군 : 아무 학교 문 앞에도 안 가봤어. 못 먹고 살아가지고,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나…]

내친김에 끄적여 본 시인데, 시인이란 말은 뿌듯하면서도 쑥스럽습니다.

코로나로 여러 달째 만나지 못하는 요양원 간 남편도, 군것질 줄이시라 타박하는 아들도, 이젠 나보다 젊은 모습으로 꿈에 나오는 엄마까지, 할머니들의 시는 늘 가족을 따라갑니다.

마을 학교에서 뛰노는 아이들만 봐도 손주들 생각이 나서, 지리산의 가을을 다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데 코로나로 모이지 말라는 명절, 나라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은 잘 감춰지지 않습니다.

[박옥영(84)/경남 산청군 : 오기 싫으면 안 와도 된다. 올라믄 마스크 단디 쓰고 오이라.]

(영상그래픽 : 이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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