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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도 무너뜨릴 '충격적 무장'…실제 얼마나 사용됐나

입력 2017-08-28 22:24 수정 2017-08-29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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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뉴스룸 1부에서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투입된 중화기 현황을 당시 자료를 통해서 확인해봤습니다. 수류탄이 4900여 발, 고층빌딩을 무너뜨릴 만의 양의 TNT, 심지어는 로켓포까지 동원됐습니다. 이것이 자위권이냐, 방어용이냐. 그렇지 않다. 전문가들은 전쟁용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집단살상용 무기가 바로 광주에 투입됐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희가 1부에서는 투입된 무기가 무엇무엇이었다 이렇게 설명을 드렸는데 이게 얼마나 쓰였는가 이것도 상당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죠. 좀 살펴보겠습니다.

유선의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1부에 다뤘던 TNT 200kg. 100kg 정도면 큰 고층빌딩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것도 그냥 폭약의 형태의 경우. 그러니까 이게 폭탄일 경우에는 그 위력이 훨씬 강한데 폭약인지 폭탄인지는 구분하기가 어렵다면서요, 문서상으로 보자면.

[기자]

그렇습니다.

[앵커]

그런데 이게 쓰였습니까?

[기자]

실제로 얼마나 쓰였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문서상으로는 확인이 되지 않았는데요.

하지만 문서를 좀 자세히 살펴보면 단서는 있습니다. 단지 TNT만 지급된 것이 아니라 밑에 보면 전기뇌관도 사용할 수 있도록 지급이 같이 돼 있습니다.

[앵커]

이 뇌관은 터뜨리는 데 사용하는 거죠?

[기자]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계엄군이 전남도청에 재돌입하기 바로 전날입니다. 9월 26일에 사용된 문서를 보겠습니다.

야전공병단에 추가 TNT 그리고 뇌관, 도화선, 도폭선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지급이 됐는데요.

전문가들은 이제 이런 장비들만 있으면 터뜨리면 된다. 바로 직전의 단계라고 평가를 했습니다.

[앵커]

도화선은 뭐 우리가 흔히 아는 도화선인데, 도폭선은 어떤 것입니까?

[기자]

도화선은 불을 붙이게 되는 선이고 도폭선은 불을 사람이 붙이는 것과 폭탄을 연결하는 그 마지막 단계.

[앵커]

마지막 단계. 실탄은 이게 다른 언론에도 나왔습니다마는 51만 발이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러니까 51만 발이 지급된 것입니까, 실제로 발사가 된 것입니까?

[기자]

오늘 경향신문이 계엄군이 지급된 130만 발 가운데 51만 발이 사용이 됐다, 이렇게 보도를 했습니다.

[앵커]

실제로 발사가 됐다는 얘기잖아요.

[기자]

맞습니다. 당시 문건을 저희도 확인해 봤는데 실제 51만 발이 사용됐다. 그러니까 발사가 됐다라고 기록된 문건이 있었습니다.

[앵커]

놀랍습니다. 다시 한 번 얘기를 들어도. 상상이 잘 안 되는 그런 수량인데… 사실 광주민주화운동 그 시기가 한 달도 아니고 두 달도 아니고 발포 시기는 며칠에 지나지 않는데 그 며칠 동안에 51만 발이 발사됐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그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자]

그와 관련해서 좀 다른 문건을 비교를 해보겠습니다. 그러니까 5·18 당시 광주에 주둔하던 보안부대 문건입니다. 유사시에 발포를 좀 해라. 그러니까 발포를 하라, 문제가 있으면 시민에게 발사해라 이렇게 명령이 내렸다는 문서가 공개돼서 굉장히 충격을 줬었는데요.

[앵커]

여기에 대한 설명은 어저께 유선의 기자가 뉴스룸에서 자세히 해드렸죠, 시청자 여러분께.

[기자]

그렇습니다. 여기에 보면 1인당 실탄을 20발씩 지급하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20발, 이게 이제 방어용 혹은 전두환 씨가 주장하는 자위권행사용으로 상식선에서 지급될 수 있는 보통의 수량입니다.

[앵커]

그런데 51만 발이 사용됐다는 거잖아요.

[기자]

그렇습니다. 단순히 계산을 해봐도 20발씩 2만 5000번, 자위권행사로는 도저히 생각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수치입니다.

[앵커]

수류탄은 어떻습니까? 이것도 수천발이던데.

[기자]

수류탄은 사용된 것으로 또 문서상에 확인이 됐습니다. 문서상에 4900여 개가 지급이 됐고요. 이 가운데 194개. 그러니까 194개가 사용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적혀 있는 세열 수류탄의 경우에는 우리가 통상 생각하는 조각조각 금이 가 있는 그런 수류탄을 말하는데요. 파편을 이용하기 때문에 한 개만 던져도 여러 명을 살상할 수 있는 그런 수류탄입니다.

[앵커]

실제로 200개 가까운 수류탄이 폭발했다는 얘기잖아요, 서울에서.

[기자]

맞습니다. 그리고 클레이모어도 사용된 것으로 나와 있는데 클레이모어의 경우는 매복을 하면서 매복지 앞에 설치를 해놓고 있다가 상대방이 다가오면 터뜨리는, 일종의 지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앵커]

아무튼 충격적인 내용들이 이렇게 담겨 있는데 지급현황은 이전 조사 때는 이 문제는 조명이 안 됐습니까? 어떻습니까? 세 차례 조사가 있었다고 했잖아요.

[기자]

그 당시에도 이 문서가 제출은 됐고 확인은 됐습니다. 제출은 됐었지만 1995년 검찰조사 당시에는 전두환 씨 등 신군부에 대한 기소가 조사의 중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5·18 당시의 진실규명 그리고 5·18 당시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고요.

또 과거사위 때는 5·18뿐만 아니라 군의 과거사 전체를 다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 부분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기가 어려웠습니다.

[앵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내용들이 그 당시에 조명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좀 놀랍기도 합니다, 그 사실 자체만을 놓고 볼 때도. 그런데 이 정도의 군화기 동원이면 이게 뭐 현장에서 결정할 만한 그런 수준은 아니지 않나요, 상식적으로 놓고 볼 때.

[기자]

이 정도의 군화기 동원을 비롯해서 집단발포 역시도 현장에서 결정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은 아니다, 이런 것이 지금의 군 지휘부를 거친 분들의, 전문가들의 판단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군 최고 수뇌부 수준에서 결정이 내려지고 명령이 내려갔다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라는 것이 아까 말씀드렸던 합참 그 당시 육군의 지휘부였던 분들 그리고 또 공군에 당시 장성, 이런 분들의 공통된 입장입니다.

아까 말씀하셨듯이 이런 부분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과거에 이루어지지 않은 게 안타깝지만 이번 조사는 전투기 출격 대기명령 그리고 증언, 각종 정황들이 또 이렇게 새롭게 나오고 있는 만큼 발포 명령 또 이런 전시에 준하는 무기 동원을 도대체 누가 지시한 것인가 이런 것에 대해 이번에는 확인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일단은 높아진 상태입니다.

[앵커]

최종 목적지는 역시 발포 명령자는 누구냐에 있는 것이겠죠. 문재인 대통령도 바로 오늘 그 얘기를 했고요. 알겠습니다. 유선의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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