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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무대서 사라지는 북한 군부 신실세 리영호

입력 2012-07-16 09:05

2009년 이전엔 무명수준…후계체제서 급부상


`운구차 호위 8인' 중 우동측 이어 두번째 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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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이전엔 무명수준…후계체제서 급부상


`운구차 호위 8인' 중 우동측 이어 두번째 실각


권력무대서 사라지는 북한 군부 신실세 리영호

북한이 16일 '신병관계'로 해임했다고 밝힌 리영호(70) 정치국 상무위원 겸 인민군 총참모장은 김정은 체제에서 군 권력의 핵(核)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인물이다.

김정은 후계체제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리영호에 대해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나온 것으로 알려진 그는 1959년 군에 들어가 2002년 중장, 2003년 상장 계급장을 달고 평양방어사령관을 지냈다. 군작전국에서 오래 근무했다는 설도 있다.

리영호는 김정은 후계체제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2009년을 전후해 북한군부의 권력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9년 2월 김영춘 국방위 부위원장을 남한의 국방장관에 해당하는 인민무력부장에 임명하면서 리영호를 합참의장격인 총참모장으로 발탁했다.

당시 리영호의 총참모장 발탁은 김영춘의 인민무력부장 임명과 함께 `장성택 라인'의 권력 전면배치라는 분석이 나왔다. 둘 다 장성택의 핵심 측근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리영호는 김정은 후계체제가 사실상 외부에 공표된 2010년 9월 제3차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신설된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함께 오름으로써 군부의 핵심실세로 두각을 나타냈다. 당대표자회에서 리영호는 당권력 중추인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도 꿰찼다.

그때까지만 해도 군실세라는 평가를 받은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과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은 두드러진 자리를 얻지 못해 그와 명암이 갈렸다

김 위원장이 중량감이 떨어지는 리영호를 하루아침에 군 실세로 만든 데는 장성택의 입김과 함께 어린 아들이 군부를 좀더 수월하게 장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의도가 담겼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세' 리영호는 김정은 체제에서 대표적인 강경파로 분류되기도 했다.

리영호는 총참모장에 오른 직후인 2009년 4월 인민군 창건 77주년 중앙보고대회에서 '이명박 역적패당'을 언급하며 "거듭되는 경고에도 감히 침략전쟁의 불을 지른다면 우리 군대와 인민은 강하고 무자비한 정의의 통일대전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또 올해 김 위원장 70회 생일행사를 맞아 생중계된 인민군 예식행사에서는 군수뇌부를 대표해 충성맹세를 하면서 "우리 대(代)에 기어이 미제와 남조선 괴뢰 역적패당을 총대로 쓸어버리고 민족 최대의 숙원인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반드시 이룩하고야 말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 영결식 때 운구차를 호위한 '8인' 가운데 한 명인 리영호가 현직에서 해임됨으로써 김정은 체제를 이끌 것으로 점쳐진 `8인' 중 우동측 전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에 이어 권력무대에서 사라지는 두번째 인물로 기록되게 됐다.

우동측은 부장이 공석이던 보위부의 우두머리로 여겨져 왔지만 지난 3월 중순 이후 그의 이름은 북한매체에서 자취를 감춰 경질·숙청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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