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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사 "등급 올려라"…신평사에 로비·협박

입력 2012-02-12 10:34

"그룹 평가계약 모두 끊겠다"…전방위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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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평가계약 모두 끊겠다"…전방위 압박

대기업들의 국내 신용평가사에 대한 등급 상향 압박 수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내 신평사들의 독립성과 신뢰도, 자존심은 '절대 갑'인 대기업의 고강도 압박에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경기 상황이나 실적 흐름과 무관하게 기업의 신용등급은 갈수록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12일 자본시장연구원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나이스신용평가와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034950] 등 국내 3대 신평사의 신용등급 '상향 대 하향 비율(UP/DOWN Ratio)'은 3.4로 집계됐다.

국내 신평사들의 신용등급 상향 조정 건수가 하향 조정보다 평균 3.4배 많았다는 의미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 피치 등 3대 국제 신평사들과는 차이가 크다.

국제금융센터 통계를 보면 이들 국제 신평사는 지난해 한국 기업의 신용등급을 모두 10차례 내렸다. 등급을 올린 건수는 7차례에 불과했다.

국내 신평사들의 평가 대상 기업 중에서 우량등급 비중은 최근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A등급 이상을 부여받은 발행사 비율은 2008년 54.8%에서 2009년 60.6%, 2010년 70.5%로 매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김필규 선임연구위원은 "국제 신평사는 기업에 절대 '갑'이지만, 국내 신평사는 반대로 '을'의 구조다. 발행기업이 우위를 점하는 시장 구조에 따라 국내 신평사들은 신용등급 강등에 상당히 소극적이다"라고 지적했다.

동양증권 강성부 채권분석팀장은 "죽은 기업을 '부관참시'하는 수준이다. 그동안 경기가 좋아지고 기업 경쟁력이 그만큼 강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신평사 관계자들은 기업들의 신용등급 상향 요구 강도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어 어려움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 전에 미리 접촉해 더 좋은 등급을 제시한 신평사를 찾는 이른바 '신용등급 쇼핑' 사례는 양호한 축에 속한다.

일부 대기업 재무담당자들은 읍소로 시작해 접대와 로비를 시도하고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계약을 끊겠다는 협박성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고 신평업계는 전했다.

대기업 계열 전체의 평가계약을 이용한 전방위적인 압박 사례도 등장했다.

신평사 출신의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그룹 계열회사 전체가 전방위적으로 신평사를 압박하고 제대로 응하지 않으면 계약에서 배제하는 때도 있다"고 말했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모그룹에 의해 우리 회사는 `왕따'가 됐다. 몇 년 전 일부 계열회사에 대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더니 그룹 계열사 대부분이 우리와 계약을 철회했다. 지금도 이 그룹과는 거래가 거의 없다"고 털어놨다.

회사채 발행 주관사인 증권사가 기업을 대신해 '로비스트'로 나서는 경우도 흔하다. 고객의 신용에 문제가 생겨 회사채 발행이나 인수에 차질이 생기면 결국 증권사가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한 신평사 애널리스트는 "증권사 IB담당 고위임원이 직접 접촉해올 때가 있지만, 뻔한 수순이어서 잘 만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신평사가 기업의 압박에 굴복해 객관적인 평가를 하지 못하면 지난해 대한해운이나 진흥기업[002780]의 사례처럼 투자자들의 막대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김필규 선임연구위원은 "신평사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신평사를 의무적으로 교체하는 순환평가제를 도입하고 기업이 전액 부담하는 현재의 수수료 체계도 어떤 식으로든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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