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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열사 담합해 신평사 거부…재벌이 왕따 만든다

입력 2012-02-1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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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신용평가사들의 대기업 눈치보기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은 구조적인 `갑을(甲乙)관계' 탓이다.

발행사를 고객으로 모셔야 하는 신평사는 공정성을 놓치기 십상이다. 또 외형과 영향력이 작은 편이라 더 좋은 등급을 달라는 발행사 요구를 뿌리치기 어렵다.

투자 결정의 척도가 되는 신용등급은 발행사 입김이 들어가면서 상향 평준화되는 추세다. 투자자들이 손실을 볼 수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대기업 등쌀에 신용등급 상향 평준화

신평사들은 공식적으로 외부 압력으로부터 안전한 시스템을 갖췄다고 주장한다. 위원회 형식을 갖추고 상호 토론을 거쳐 공동으로 신용등급을 매기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신평사 관계자는 "재벌 그룹이 계열사를 봐달라고 압력을 넣는 일이 종종 생긴다. 한 계열사를 평가하면서 밉보이면 아예 그룹의 모든 계열사 평가를 일절 안 맡기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신평사 관계자는 "신평사를 교체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강압적으로 신용등급 조정을 요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기업마다 강도나 방식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더 높은 등급을 달라고 하는 것은 똑같다"고 말했다.

회사채 발행사는 높은 신용등급을 받기 위해 신평사를 돌아다니며 다른 신평사보다 더 좋은 평가를 요구하는 `등급쇼핑'을 하는 것이 다반사다. 이 과정에 주관업무를 맡은 증권사가 끼어들기도 한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발행사 마케팅을 대행한 적이 있다. 증권사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코스닥 상장사가 회사채를 처음 발행할 때 신평사를 돌며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 신평사들이 제시한 신용등급은 갈수록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신용평가 제도가 사실상 무의미해진 셈이다.

12일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나이스신용평가,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034950] 등 국내 3대 신평사의 신용등급 상향 조정 건수는 하향 조정보다 평균 3.4배 많았다.

이 결과 A등급 이상을 받은 발행사 비율은 2008년 54.8%, 2009년 60.6%, 2010년 70.5%로 매년 증가했다.

◇수수료 체계 변화·순환평가제 도입이 대안

기업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투자자의 올바른 선택을 돕는 신평사의 역할이 갈수록 무력화하는 것은 `갑을 관계'로 요약되는 구조적인 한계 때문이다.

한 신평사 직원은 "계약서상 신평사는 발행사에 을이다. 굳이 따지면 기업들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껄끄러운 을' 정도 된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신평사 신평사 관계자는 "대기업이 거래하던 신평사를 갈아치우는 것은 매우 손쉬운 일이다. 그래서 신평사 소속 실장급 애널리스트가 지방에 불려다니며 발행사 직원에게 훈시를 듣는 황당한 일도 벌어진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신평사가 힘이 너무 약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채권을 발행하는 과정에서 무게 중심이 발행사 쪽으로 기울어 있다 보니 양심을 지키며 신용등급을 결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세계 시장을 무대로 하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나 무디스 같은 신평사들은 대기업 한 두 곳과 거래가 틀어져도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국내 3대 신평사들은 시장규모가 적은 탓에 대기업 한 곳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이런 원인은 대책을 모색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수수료 체계를 바꾸거나 발행사를 상대로 한 신평사의 영업 경쟁을 차단하는 것이 대표적인 해결 방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강성부 동양증권 채권분석팀장은 "수수료 지급을 위한 기금을 발행사 공동으로 운영하든지 발행사가 아닌 투자자들이 대표 주관사를 통해 수수료를 신평사에 직접 내도록 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신평사의 영업 부담을 덜어주는 방법으로는 순환평가제가 있다. 발행사가 정해진 기간마다 신평사를 의무 교체하도록 하는 제도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신평사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순환평가제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이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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