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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런던올림픽 태극기 둘러싼 미스터리

입력 2012-07-1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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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런던올림픽 태극기 둘러싼 미스터리


64년 전 1948년 영국 런던올림픽 당시 한국 선수단이 들고 간 태극기는 정말 남아 있을까.

1948년 런던올림픽에 농구 대표로 참가했던 고(故) 안병석 선수의 후손이 보관해온 당시 선수단의 태극기와 페넌트(삼각기), 선수단복 가슴에 부착된 휘장 등 유물 3점이 최근 한 언론매체를 통해 공개됐다.

이 태극기가 런던올림픽 선수단의 태극기가 맞는다면 체육사적인 가치가 상당하지만 고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6일 문화재청 홈페이지와 고려대 박물관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1948년 런던올림픽 때의 태극기 모양은 안 선수의 후손이 보관해 온 태극기와는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태극기의 사진을 보면 4괘(掛)의 위치가 지금의 태극기와 같다.

그러나 같은 대회에 가져갔다는 페넌트는 감(坎ㆍ5)과 리(離ㆍ4)의 위치가 반대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검색되는 1948년 런던올림픽 참가 페넌트(등록문화재 492호) 역시 감ㆍ리의 위치가 거꾸로다.

고려대 박물관이 소장한 1948년 7월 한국 선수단의 런던 선수촌 입촌식 사진에 나오는 태극기도 감ㆍ리의 위치가 지금과 뒤바뀌어 있다.

런던올림픽보다 앞선 1947년 미국 보스턴 마라톤대회에 참가했다가 귀국하는 한국 선수단 사진에서도 괘의 위치는 반대다.

2007년 언론에 공개된 1948년 1월 스위스 생모리츠 동계올림픽 당시 한국 선수단 사진을 봐도 감ㆍ리의 위치가 바뀌어 있다.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은 동·하계를 통틀어 해방 이후 태극기를 들고 출전한 첫 올림픽이다.

1947년부터 정부 수립 직전인 1948년 7월까지 이들 태극기 가운데 괘의 위치가 다른 것은 안 선수 후손이 보관한 태극기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동일하게 감과 리가 지금의 반대 위치에 있다.

국가상징 관리를 담당하는 행정안전부 의정담당관실에 따르면 태극기의 도안은 1948년 8월15일 정부 수립 전까지 통일된 규격이 없기는 했다.

정부 수립 이후인 1949년 10월 정부가 '국기제작법 고시'를 확정, 발표하고 나서야 왼편 위 건(乾·3), 오른편 아래 곤(坤·6), 오른편 위 감(坎·5), 왼편 아래 리(離·4)라는 규격이 공통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학계의 한 관계자는 "도안이 통일되지 않았더라도 국가 차원에서 국제 스포츠경기, 더구나 같은 경기에 출전하면서 다른 도안의 태극기를 썼으리라고 보긴 어렵다"며 고증 필요성을 제기했다.

대한체육회는 이와 관련, 과거 기록이나 자료가 전혀 남아 있지 않다고 밝혀 '64년 전 태극기'를 둘러싼 의문이 풀릴지는 미지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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