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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플러스 10회] 세월호 침몰 사고, 그 진실은?

입력 2014-04-21 14:05 수정 2014-04-2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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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안산 단원고 2학년 : 잘 기억은 안 나는데 3층인가 4층에 있었던 것 같아요. 거의 4층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때가 아침 먹고 자유 시간이었어요. 하고 싶은 거 하고 있다가 친구들이랑 소파에 앉아 있다가….]

지난 16일 오전 8시. 인천에서 제주로 출발한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로 접어들었습니다.

평소 조류가 심하기로 유명한 맹골수도지만 이 날은 날씨가 맑았고, 파도도 잔잔했습니다.

[고 모 씨/세월호 갑판장 : 항로는 정상적으로 온 것 같습니다. (매일) 저 항로로 다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8시 40분 세월호는 갑자기 오른쪽으로 급선회를 하며 비극이 시작됐습니다.

[박용운/세월호 구조자 : 배가 한번 우당탕, 수 번 우당탕 하더니 제대로 넘어져버린 거예요.]

[최 모 씨/구조자 : 갑자기 배가 기울어져 버리니까. 넘어가니까 그 상황에서는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허웅/세월호 구조자 : 남들이 쿵했다 이렇게 얘길 많이 하는데..쿵 한다기 보다 한순간이었습니다. 뭐라 그럴까 우당탕 한 순간에….]

배가 기울기 시작한 지 약 15분. 세월호는 제주 관제센터에 구조를 요청합니다.

[세월호 : 세월호 감도 있습니까.]
[제주관제센터 : 세월호, 항무제주.]
[세월호 : 아, 저기 해경에 연락해 주십시오. 본선 위험합니다. 지금 배 넘어 가 있습니다.]
[세월호 : 지금 배가 많이 넘어가 있습니다.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빨리 와 주십시오. 지금 병풍도 옆에 있습니다. 병풍도.]

[이종범/안산 단원고 2학년 : 자판기가 있었거든요. 자판기도 밑으로 쓸려 내려오고. 여자애들이 막고 여자애들끼리 막았어요.(자판기가)못 내려가게. 몸으로 막았어요. 그리고 위 쪽에서 남자애들 떨어지고.]

[허웅/세월호 구조자 : (쏠리는 느낌?)쏠리는 정도가 아니고 서 있는 사람들은 다 내동댕이쳐질 정도로 한 순간에 그렇게 된 거죠.]

다급했던 세월호는 10분 뒤 다시 교신을 합니다.

[세월호 : 항무 제주, 감도 있습니까?]
[제주관제센터 : 네. 세월호 항무제주]
[세월호 : 해경, 어떻게 됐습니까?]
[제주관제센터 : 네. 지금 해경한테 통보했고요. 저희도 이제….]

두 차례의 배가 가라앉는다는 교신. 그런데 5분 뒤 안내 방송은 ‘제자리에 그대로 있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강 모 씨/세월호 승무원 : (객실 등에 남아 있으라고) 홀드 명령이 왔던 건 9시 10분 정도 쯤 되겠네요. 진정하시라는 의미에서 침착하시라고.]

[이종범/단원고 2학년 : 그렇게만 계속 방송해줬어요. 계속 버티고 있다가 30분 정도 지났을 때 방송 울리면서 조용히 하고.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그 말 밖에 안 했어요.]

워낙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승객, 특히 학생들은 안내 방송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허웅/세월호 구조자 : 애들이 너무 많이 탔는데 애들한테 뭔가 (탈출하라고) 해야하지 않나 얘기를 하니까. 애들이 너무 착해놓으니까 아무리 얘길 해도 그것이 안 들린다고….]

그런데, 승객들이 극도의 혼란을 겪는 사이 이를 수습해야할 선원들에게 선장은 퇴선 명령을 내립니다.

[오 모 씨/세월호 선원 : 선장님이 퇴선명령을 내려가지고. (원래) 마지막 한명이라도 있는지 확인하고 나중에 내렸어야지.]

[박용운/구조자 : 그건 모르지. 어디로 도망갔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9시 30분 첫 구조대가 도착했고

[허웅/세월호 구조자 : 전 방송에 동요를 안했어요.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살려고 하니까 행동한 거지. 옷 다 벗어놓고 있었는데 나도 신발도 안 신고 구명조끼도 없이 난 튀어 나왔어요.]

[이종범/단원고 2학년 : 살 수 있다고 그런 이야기 했죠. 패닉 상태였죠. 엄마한테 전화하고 119에 전화했어요. 카톡도 했어요. 힘내라고 한게. 우리 배 침몰됐다고. 그런 식으로.]

[세월호 탑승객 : 아저씨, 여자애들 (있는) 이 루트 포기하면 안 돼요. 이 루트 포기하면 안 돼요. 저기 있다는데.]

배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해경 구조대원을 불러달라고 애원합니다.

[해경 관계자 : (여기 해경 좀 불러주면 안 돼요?) 가지마. 많이 잠겨서 안 돼.]

[세월호 탑승객 : 창문 깼나 봐요. 미끄럼틀로 내려간대요.]

이 시간, 선장과 일부 선원들은 구조선을 타고 제일 먼저 배를 탈출합니다. 배는 급속히 물에 잠기고 구조는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최 모 씨/구조자 : 구조대가 왔는데 밧줄이 없으니까 끌어당기지를 못했어요. 밧줄을 안 내줘 버리니까. 마음이 그냥….]

이젠 승객들과의 전화 연락도 문자도 모두 끊기기 시작합니다.

[단원고 학생 학부모 : 배가 50% 정도 기울어졌다고 침몰 중이라고 그러다가 (아들과) 전화가 끊겼어요.]

재난안전대책본부의 첫 브리핑.

[이경옥/안전행정부 2차관 : 대통령님께서 단 한명의 인명 피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해서 노력할 것과 객실, 엔진실 등 철저히 수색해서 누락된 인원이 한명도 없도록….]

11시 20분 하지만 이미 배는 머리 일부만 남긴채 대부분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세월호의 승선 인원은 476명.

이중 사망했거나 아직도 생사 확인이 되지 않는 경우가 300여명 이릅니다.

[단원고 학생 부모 : 애 전화는 불통이고 계속 전화를 했는데 통화가 안돼요.]

[김 모 양/구조자 : 남아있는 친구들 생각하면 너무 좋아할 수만도 없는 것 같아요.]

[단원고 학생 학부모 : 애들 살아있다고 했어. 살아있다고 했지. 분명히 6반이라고 했나. 나 헛소리 안 하는 거 맞죠.]

[단원고 학생 학부모 : 아빠가 기다리고 있다. 나와라. 보고싶어.]

[단원고 학생 학부모 : 엄마가 갈거야. 우리 혜선이 힘 내. 엄마가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보고싶다고 했잖아. 우리 혜선이 꼭 오지? 엄마가 사랑해. 꼭 와.]

시간이 흐르면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지만 기다림과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박세용/실종자 가족 : 누가 가장 친한 친구냐고 하면 아빠라고 합니다. 그렇게 스스럼없이 지냈는데 가장 좋은 치구가, 가장 친했던 아들이...인연이 여기까지라고 생각 절대 안합니다. 전 안에 갇혀있다고 믿습니다.]

[단원고 학생 할머니 : 아침에 가면서 잘 다녀오라고 챙겨서 보냈단 말이야. 00아 어디 있니. 할머니가 애타게 기다린다. 살아서 돌아와….]

도대체 무엇이 이런 비극을 초래했을까.

세월호는 지난 15일 밤 9시, 인천을 떠나 제주로 향했습니다.

당시 세월호 탑승객 476명 가운데 학생들은 모두 325명.

제주도로 수학여행에 나선 안산 단원고 학생들입니다.

세월호의 애초 출발 시간은 6시 30분이었지만 짙은 안개 때문에 2시간 이상 연기됐습니다.

[이 모 씨/안산 단원고 학생 학부모 : (어제 통화 때) 안개가 평소보다 많이 끼어서 '아빠, 출발 못 하면 집에 갈 수 있겠다' 그러더라고요.]

이날은 원래 세월호를 몰던 신모 선장이 휴가를 낸 바람에, 이준석 선장이 세월호의 함대를 잡았습니다.

[고 모 씨/세월호 갑판장 : 모든 선원이 한 달에 5일(휴가)입니다.. 전 일요일에 (휴가를) 나왔고, 선장님은 제가 휴가를 간 후에 15일인가, 14일에인가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이튿날 아침 7시 30분.

항해를 지시하던 이준석 선장 대신 3등 항해사 박모씨가 운항을 맡았습니다.

[고 모 씨/세월호 갑판장 : 아마 8시 이후에는 (3등 항해사) 운항이 맞습니다. (3등 항해사) 당직 시간이 8~12시니까.]

3등 항해사인 박모씨가 세월호의 키를 잡은 건 불과 4개월.

[고 모 씨/세월호 갑판장 : 나이가 27살인가? (입사한지) 4개월 정도 되는데 상선 경력이 있으면 여객선이랑 (항해법이) 같으니까.]

문제는 박씨가 사고가 일어난 맹골수도를 단 한 번도 항해해 본 경험이 없다는 겁니다.

'맹골수도'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조류가 센 곳.

명량대첩이 치러진 울돌목 다음으로 물살이 가장 빠릅니다.

전남 진도군 조도면의 맹골도와 거차도 사이에 있는 이곳은 물살이 최대 6노트, 시속 11km에 달합니다.

6시간에 한 번씩 밀물과 썰물이 바뀌는 이 뱃길은 선원들 사이에서도 대표적인 위험 항로로 꼽힙니다.

거센 물살뿐만이 아닙니다.

맹골수도는 제주도로 향하는 국내 여객선들이 항로를 바꾸는 곳입니다.

급회전 바닷길인 이른바 ‘변침구간’.

베테랑도 힘들다는 이 구간을 초보 항해사는 수 십 분 동안 좌우로 급회전을 반복했습니다.

무리하게 꺾다가 화물과 승객이 한쪽으로 쏠렸고 이 때문에 배가 넘어졌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조 모 씨/세월호 조타수 : 평소보다 많이 (세월호가) 돌아갔습니다. 제가 실수한 부분도 있지만 타가 유난히 빨리 돌았습니다.]

급하게 조타키를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

사고 직후 일부 전문가들은 암초로 인한 좌초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장창두/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 빠른 속도로 가다가 어딘가 걸려 갑자기 큰 충격으로..가장 높은 가능성은 좌초, 암초에 걸린 게 아니냐.]

구조자들은 큰 충격과 함께 배가 기울어졌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맹골수도를 운항해 온 항해사는 그런 가능성을 일축합니다.

[세월호 전 항해사 : (암초라면) 뾰족한 데가 먼저 부딪혀야 되는데 거긴 깨끗하니까, 그런건 전혀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구조자들이 느꼈던 충격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고 모 씨/세월호 갑판장 : 컨테이너가 화물을 실었거든요. 아마 그거 (쏠리며) 부딪히는 소리고. 제일 큰 것은 아마 상현 갑판에서 화물이 넘어지는 소리라든지.]

과연 16일 오전 8시 세월호 조종실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탐사플러스는 세월호를 몰았던 전 항해사를 통해 당시 상황을 분석해봤습니다.

당시 세월호의 평균 시속은 17노트.

[세월호 전 항해사 : 보통 18,19노트 나오거든요. 17노트 나오게 되면 맞바람 받았다는 얘기예요. 원래 내 속력보다 2노트가 죽는거죠.]

실제 사고 당일 주변 지역에 비해 물살이 거셌던 데다, 해류 방향도 반대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타수가 10도를 오른쪽으로 틀었을 때, 거슬러 올라오는 해류로 조타가 훨씬 더 오른쪽으로 꺾였을 거란 이야깁니다.

[세월호 전 항해사 : 나는 10도만 꺾으면 14~15도에 바로 서면 되는데 더 넘어가거든요. 옆에는 병풍도 있고. 거기 안되니까 막 돌리니까 딱 서면 되는데 안서요. 다다다다 또 넘어가. 또 우현으로 꺾고 그러다 보니까 좌우좌우 지그재그 되는 거예요.]

세월호가 서거차도와 맹골도 사이 좁은 해역으로 접어든 시각은 16일 오전 8시10분대.

세월호는 처음엔 왼쪽으로 이후 10여분마다 4번 넘게 방향을 바꿨습니다.

[합동조사반 관계자 : 8시 10분대부터 8시 반까지 네 번 (변침 결정을) 내놨던데요. 네 번이 다 선수 방향이 다르게 나와 있더라고요.]

물살이 쎈 짧은 구간에서 이처럼 자주 방향을 튼 건 상당히 이례적입니다.

그러다 8시48분부터 사고 시각인 8시52분까지 불과 4분 사이에 오른쪽으로 115도 각도로 급회전을 했고 결국 균형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좌우로 급하게 10도씩 움직이다, 결국 세월호가 균형을 잃고 전복한 셈입니다.

[합동조사반 관계자 : 115도 정도... 항적도하고 선수의 시간대 별로 방향이라든지 그런 자료를 받아 가지고.]

세월호는 위험 지역에서 왜 극단적인 급선회를 했던 걸까.

당시 세월호는 맹골도에 평소보다 500미터 이상 붙어서 운항하고 있었습니다.

맹골도 안전거리를 확보하려다 결국 전복됐을 수 있다는 겁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 : 변침을 하는 바람에 거기서부터 사태가 안 좋아진 것 같은데.]

세월호 전 항해사는 전형적인 운행 미숙을 꼽습니다.

[세월호 전 항해사 : 수동조타는 앞에 급박하게 무슨 상황이 생겼다던가. 근데 급박하게 일이 생길 이유가 없어요. 그 배는 절대 없어요.]

노련한 선장들도 맹골수도에선 자동항법을 이용한다고 토로합니다.

[세월호 전 항해사 : 절대 거기는 수동으로 하면 안돼요. 30년~40년 된 조타수들도 힘든 데예요.]

그렇다면 단순히 3등 항해사의 항해 미숙함만이 원인일까.

세월호의 전신은 1994년부터 일본에서 18년 동안 운항된 나미노우에호.

청해진해운은 2012년 이 노후 선박을 국내에 수입해 객실을 증축한 뒤, 세월호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하지만 리모델링 과정에서 무게가 늘어나 복원력 테스트를 다시 받아야 했습니다.

[선박검사기관 관계자 : (증축으로) 전체 선체 무게의 2%를 초과했기 때문에 결국 경사 시험을 하게 됐고, 경사 시험 자체가 복원성 검증이라고 보시면 되는데.]

선박 복원력이란 외부 충격으로 배가 기울어졌을 때 다시 평행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말합니다.

그런데 세월호가 복원력 문제로 두 차례나 검사를 받았다는 겁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습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 : 만약에 복원성에 문제가 있다면 배를 완전 엉터리로 만든 거고 처음 기항할 때부터 항해가 불가능하죠.]

검사를 실시한 해당 기관을 직접 찾았지만, 아무 답변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선박검사기관 관계자 : 저희는 방송국하고 얘기할 게 없는데요. JTBC하고 얘기할 그런 게 없는데요.]

계속된 답변 요구에 해당 검사기관은 복원력 테스트를 두 번 실시한 건 사실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선박검사기관 관계자 : 두 번 한 거 맞습니다. (첫 번째가) 불합격이 아니라 데이터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다시 해보자고 할 수 있는 걸로 판단됩니다.]

세월호의 한 선원은 복원력을 유지해주는 좌측 평행수가 예전부터 작동 불량이었다고 말합니다.

[세월호 전 선원 : (회전을 할 때는) 자동으로 펴진단 말입니다, 날개가…근데 좌현은 안 나오고, 다시 나오더라도 다시 들어가고.]

선원들은 지난해 이 부분 수리를 사측에 요청했지만 일본산 부품 공수가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결국 세월호는 이런 결함 때문에 급선회 때 원심력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청해진해운 측이 세월호 출항 전 화물 적재량과 승객수를 엉터리로 보고한 것도 추가로 드러났습니다.

세월호가 출항하기 전 해운조합에 제출한 안전점검 보고섭니다.

화물 657톤과 차량 150대를 실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사고 발생 나흘째인 어제 청해진해운은 사고 선박에 화물 1157톤과 차량 180대를 실었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보고서와는 달리 실제 화물은 480톤, 차량은 30대가 배에 더 실렸던 겁니다.

[청해진해운 부장 : 한 쪽으로 배가 기울면서 무게중심에 의해서 결박이 풀린 것으로 우리는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월호에 화물은 단순히 기울기 때문에 풀렸던 것일까.

전문가들은 세월호 승무원들이 안전 점검 규정을 어겼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세월호 전 항해사 : 포박을 제대로 못했다는 거죠. 그리고 출항해서 거기까지 11시간 왔는데 원래는 6시간에 한번씩 포박을 다시 한번 해야합니다. 그걸 안한 거잖아요.]

결국 총체적 부실을 안고 제주로 향했던 세월호. 아이들의 구조를 기다리는 가족들은 세월호의 의혹이 하나씩 벗겨질 때마다 기대감이 분노로 바뀌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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