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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퓰리즘'에 원칙 실종…휘청이는 금융권

입력 2012-02-1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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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과 저축은행 피해구제 특별법은 국회가 우리나라의 금융시스템을 뒤흔든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선거를 앞두고 `금배지'에 눈이 멀어 금융의 원칙과 상식을 깡그리 무시한 국회의 행태에 "도를 넘었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에선 국회가 우격다짐으로 법을 만들고 뜯어고치는 바람에 자칫하다간 국제적인 망신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휴대폰 요금, 주유소 기름값도 정부가 정하나

국회 정무위원회가 지난 10일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여전법 개정안과 저축은행 피해구제 특별법은 영세 자영업자와 저축은행 피해자 등 `경제적 약자'를 지원하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웠다.

당사자들로선 반가운 일이다.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는 12일 성명을 통해 "18대 국회의 마지막 노력에 환영의 뜻을 표명한다"며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의 강력한 개선의지에 따라 일정한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두 법안은 무시무시한 `독소조항'을 품고 있어 냉정하게 따져보면 오히려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세가맹점 수수료율을 정부가 정하도록 한 것(여전법 개정안)과 저축은행 피해자의 손실을 예금보험기금에서 메우도록 한 것(저축은행 특별법) 때문이다.

여전법 개정안처럼 정부에 가격통제권을 주면 휴대전화 요금이나 주유소 기름값 등 사회적으로 논란이 많은 가격 결정에 정부가 일일이 개입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

5천만원 넘게 맡긴 저축은행 예금자와 후순위채권 투자자에 예외를 두면 나중에 은행 예금자, 보험 가입자, 증권 투자자의 손실도 보상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칠 수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이재연 연구위원은 "국회의원들의 수준이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한 번이라도 조항을 제대로 검토했다면 이런 엉터리법은 나올 수 없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법치주의 흔든 저축은행법, 법 남용한 카드법

두 법안은 시장경제의 근본 원칙을 부정하고 법적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점에서도 공통분모를 가진다. `애매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회적 합의보다는 법을 들이대는 손쉬운 길을 택했다는 점도 문제다.

여전법 개정안은 정부가 정한 수수료율을 카드사가 의무적으로 따르도록 했다. 수수료율은 카드사와 가맹점이 계약을 맺은 가격이다. 결국 국회는 정부가 시장가격을 정하는 사상 유례없는 법을 만든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정부가 가격 결정에 개입하는 건 공공요금뿐이다. 공공요금을 제외하고 정부가 가격에 관여하도록 강제한 건 어느 법을 찾아봐도 없다. 심지어 정책기관인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이 중소기업에 적용하는 우대보증료율도 관련법에는 "(우대요율을) 적용할 수 있다"는 임의조항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수수료율을 내려도 업계의 합의를 유도하는 것과 법에 못박는 것은 천지차이"라며 "저축은행 피해구제 특별법과 마찬가지로 나쁜 선례를 남길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저축은행 특별법이 모든 예금자는 원리금 5천만원까지만 보호하는 예금자보호법에 부당한 예외를 두고 예보료를 제멋대로 끌어다 써 법치주의를 흔들었다면, 여전법 개정안은 시장의 가격결정 원리를 법으로 깨뜨린 법치 남용에 해당한다.

그만큼 위헌 소지가 있기 때문에 위헌법률심판청구가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여전법은 GE캐피탈 같은 국외 제휴사나 외국인 투자자로 등으로부터 국제 소송을 당할 공산이 매우 크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정순섭 교수는 "시장 가격을 정부가 정하도록 한 여전법 개정안과 원금 일부보호 원칙을 특정 집단에만 예외로 해준 저축은행 특별법 모두 금융규제의 기본원칙을 명백히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포퓰리즘 비난 거세…정부 정책과도 상충

우대수수료율 문제를 다룬 여전법 개정안은 총선을 앞두고 표심(票心)을 의식한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정부의 정책 집행에도 심각한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우대수수료율은 영세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취지로 2007년께 도입됐다. 대형 가맹점과 같은 수수료를 내다간 남는 게 없다는 원성이 커지자 카드사들이 매출이 적은 점포의 수수료를 깎아주도록 정부가 협조를 구한 일종의 `업계 합의'였다.

애초 연매출 4천800만원 이하 가맹점만 깎아주던 우대수수료율은 9천600만원, 1억2천만원, 2억원 등으로 적용 범위가 3차례 확대됐다. 수수료율도 6차례 인하돼 현재는 대형마트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낮은 요율이 적용된다.

그럼에도 수수료율을 두고 논란이 그치지 않자 금융위는 지난해 말 `카드시장 구조개선 종합대책'을 내놓고 수수료율 체계도 전면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한국금융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 삼일PWC가 마련 중인 개편안은 이르면 다음 달 말 나온다.

금융위 관계자는 "그동안 수수료율 논란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했던 건 가격이 시장에서 결정되는 시장경제 원칙을 깨트릴 수 없어서였다"며 "법으로 수수료율을 정하게 한 여전법 개정안은 수수료율 개편안과 상충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수수료율을 정하면 요율 인하 요구가 계속될 게 뻔하다. 합리적 범위를 벗어난 요율이 정해지면 카드사로선 아예 가맹점 계약을 해지할 가능성도 있다.

이재연 연구위원은 "곧 수수료율 개편안이 나오는데도 정무위가 부작용을 무릅쓰고 속전속결로 여전법 개정안을 처리한 건 자영업자들의 표심을 의식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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