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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바구니 물가 치솟는데 '저물가'라니…왜?

입력 2016-09-1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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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바구니 물가 치솟는데 '저물가'라니…왜?


"배추 한 포기 8000원, 시금치 한 봉지 6980원, 애호박 1개 2830원."

주부 이경진(34)씨는 지난 주말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불과 지난달만 해도 3000원대였던 배추가 8000원, 900원대였던 애호박은 3000원에 육박한 가격표를 붙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채소코너에서 한참을 망설이던 이 씨는 결국 빈 장바구니채로 발걸음을 돌렸다.

추석 연휴가 시작됐지만 최근 한 달 새 3배 가까이 오른 가격 탓에 '금호박' '금시금치' '금배추'라는 말이 절로 나오고 있다. "장보기가 무섭다"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올 정도다.

실제 지난 7일 한국은행 강원본부가 발표한 '최근 배추가격의 급등 원인 및 전망'에 따르면 8월 중 가락시장 배추(10㎏ 기준) 도매가격이 1만5250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24% 증가했다. 이에 따라 소매가격은 지난 6일 기준 1포기당 8035원으로, 전달(3904원)에 비해 106% 뛰어올랐다.

이처럼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날마다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지만, 정부 안팎에서는 '저물가'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지난 1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0.4% 올랐다. 이는 최근 1년4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농산물 및 석유류 등 공급요인을 제외한 근원인플레이션율도 전월 1.6%에서 1.1%로 크게 감소했다. 이는 지난달 누진세로 인한 여론의 비판이 커지면서 정부가 전기요금을 한시적으로 인하한 것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가운데 국제유가가 낮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고 기업구조조정,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시행 등 하반기 국내 경기를 둔화시킬 요인은 산적한 상황이어 앞으로의 물가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이에 물가를 관장하는 한국은행엔 비상이 걸렸다. 당장 다음달 국민들을 상대로 물가설명회를 열어 이주열 총재가 직접 설명을 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이 총재는 지난 7월 한은 설립 후 최초로 물가안정목표제 설명회를 열었다. 지난 1~6월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9%로 6개월 이상 물가안정목표치인 1.5%를 밑돌았기 때문이다. 이후 3개월 마다 같은 기준으로 후속 설명책임을 이행키로 했는데, 7월(0.7%)에 이어 8월까지 넉 달째 0%대에 머물면서 다음달 물가설명회 개최는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다.

이처럼 한은 안팎에서는 '저물가 고착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치솟은 장바구니 물가에 신음하는 국민들에게 저물가는 '딴 세상' 얘기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한은이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매달 조사하는 물가인식은 8월 2.3%로, 실제 물가상승률(0.4%)과 차이가 컸다. 이는 지난 1년 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나타내는 지표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물가'와 정부가 말하는 '공식물가'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회 예산정책처의 보고서 '소비자물가지수와 체감물가의 괴리 원인 및 보완 방향'에 따르면 ▲체감물가의 심리적 특성 ▲상품의 질적인 변화 반영 여부 ▲소비자물가지수의 대표성 문제 등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소비자의 물가에 대한 인식은 개인의 체험과 정보를 바탕으로 하다 보니 기억력 및 다양한 심리적인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가격의 하락보다 가격의 상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저소득층일수록 물가상승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이 더 크기 때문에 체감물가를 소비자물가지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높게 느낄 수 있다.

또 소비자들이 상품의 가격 상승분 중 질적 변화가 차지하는 비중을 판단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가격상승분 전체를 물가상승으로 받아들이는 경향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예컨대 고등어와 같이 질적 변화가 거의 없는 제품의 가격이 올랐을 때 소비자가 가격 상승률을 판단하기 쉽지만, 새로운 기능을 갖춘 제품이나 전혀 새로운 제품이 판매될 경우 그 가격에서 순수한 인플레이션 기여분이 얼마인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표 산정기준에서도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는 상품 및 서비스 481개 품목의 가격변동을 가중평균해 산출한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구입하는 품목 종류, 구매 비중 등은 가계 특성별로 다르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느끼는 물가는 공식 물가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현대경제연구원의 '저물가의 가계 특성별 영향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가구주연령이 40대인 가구는 교육 물가에, 60세 이상 가구는 식료품과 주류․담배 물가 영향을 상대적으로 크게 받는다.

실제로 주류 및 담배의 물가 기여도는 전체 0.6%포인트인 반면, 60세 이상 가구는 0.8%포인트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또 교육의 물가 기여도는 40~49세 가구는 0.3%포인트인 반면, 여타 가구는 0.0~0.1%포인트에 불과했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체감물가와 공식물가간 차이 좁히기에 나서고 있다.

통계청은 2010년 기준인 현 소비자물가지수를 2015년 기준으로 바꾸고, 현행 5년인 개편주기를 3년으로 앞당기기로 했다. 또 조사품목에 현미, 낙지, 블루베리, 파스타면, 휴대전화수리비 등 2010년 이후 소비지출 비중이 높은 품목을 추가할 예정이다.

백다미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현행 소비자물가지수는 보조지표로 생활물가지수, 전월세포함 생활물가지수, 채소·과실·생선 등을 대상으로 한 신선식품지수 등을 공표하고 있으나 가계 특성을 반영한 지수는 부재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공식 물가와 괴리되는 높은 체감 물가는 소비 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에 물가 지수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저출산 고령화 1인 가구화 등 사회 변화를 반영한 다양한 물가지수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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