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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배·침략 사죄 거부한 아베 "종지부 찍고 싶었다"

입력 2020-10-15 10:11 수정 2020-10-15 10:27

"위안부 합의 때 국제사회가 증인…최종적·불가역적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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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합의 때 국제사회가 증인…최종적·불가역적 해결"

식민지배·침략 사죄 거부한 아베 "종지부 찍고 싶었다"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 등 제국주의 일본의 가해 행위에 대한 직접 사과를 거부했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는 재임 중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로 논쟁을 끝내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아베 전 총리는 전후 70년 담화(2015년 8월)에서 "그 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우리들의 자식이나 손자, 그리고 미래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할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그것으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다"고 15일 보도된 산케이(産經)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한 연설에서는 사죄가 아닌 '회오'(悔悟·잘못을 인정하고 후회함)라는 단어를 썼다"며 "70년 담화 전후로 호주 의회와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 이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나의 진주만 방문이 이어졌다. 거기서 전후(戰後)를 끝내는 것이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아베는 총리 재임 중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에 대한 사과의 뜻을 밝힌 '무라야마(村山) 담화(1995년 8월 발표)를 계승한다고 했으나 무라야마 담화의 핵심적인 대목을 공개된 자리에서 직접 말하는 것을 한사코 회피했다.

인터뷰 내용에 비춰보면 아베의 관심은 사죄가 아니라 사죄에서 벗어나는 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베는 "100년 전의 세계는 소수의 독립국과 많은 식민지가 있었고 그 속에서 일본은 독립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세계적인 관점에서 일본의 70년 전 일을 돌아봤다"고 말했다.

그의 시각은 전후 70년 담화에도 반영됐고 이는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을 정당화하는 시도라는 비판을 낳았다.

아베 전 총리는 2015년 한일 외교장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에 관해서는 "국제사회가 증인이 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확인했다. 정부로서는 고노(河野)담화 검증도 했다. 많은 사람이 역사의 진실에 더 다가섬으로써 역사 문제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고 인터뷰에서 주장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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