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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마크 차두리의 마지막 120분…뜨거웠던 순간들

입력 2015-01-31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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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마크 차두리의 마지막 120분…뜨거웠던 순간들


국가대표 차두리(35·서울)가 태극마크를 달고 뛴 마지막 경기에서 맏형의 열정을 보여줬다. 비록 웃지 못했지만 값진 120분이었다.

울리 슈틸리케(61·독일) 감독이 이끈 한국은 31일 오후 6시(한국시간) 호주 시드니의 호주 스타디움에서 열린 개최국 호주와의 2015 호주아시안컵 결승에서 연장 접전 끝에 1-2로 패했다.

1960년 대회 이후 55년 만에 정상에 도전했지만 호주는 탄탄했다. 8만여 관중석을 가득 채운 호주 관중들의 광적인 응원도 대단했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국가대표를 그만두기로 한 차두리는 선발로 출전해 풀타임를 뛰었다. 마지막 120분이었다.

언제나처럼 몸을 사리지 않는 몸싸움, 적극적인 오버래핑, 폭발적인 스피드를 뽐냈다.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뛰며 동생들을 독려했다.

A매치 75경기(4골). 2001년 11월8일 세네갈과의 친선경기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른 차두리의 통산 국가대표 성적이다.

한국 나이로 서른여섯 살. 30대 중반인 그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현역 은퇴까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차두리의 경기력은 전성기 못지 않았다. 돌파와 몸싸움, 정확한 크로스는 만개한 기량을 대변했다.

결승을 앞두고 국내의 한 기관이 실시한 '아시안컵에서 최고 활약을 펼친 선수' 설문조사에서 차두리는 후배 손흥민(레버쿠젠), 기성용(스완지시티)을 따돌리고 1위에 올랐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그의 은퇴를 반대하는 청원운동이 일었다. 그만큼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능력이 대단했다.

이날도 전반 38분에 오른쪽 측면을 돌파해 손흥민에게 결정적인 패스를 선물했다. 골로 연결되지 못했지만 차두리다운 플레이였다.

처음 태극마크를 달 때만 해도 차두리는 '축구영웅 차범근의 아들'로 더 유명했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주위의 색안경이 있었지만 극복했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아버지도 하지 못했던 큰 위업을 달성하려고 했지만 아쉬움을 삼키게 됐다.

차범근은 1972년 방콕아시안컵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해 한국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결승에서 이란에 져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고려대 재학 시절에 국가대표가 된 그는 황선홍(47)·최용수(41)·안정환(39) 등 내로라하는 선배들과 함께 했다. 그때만 해도 공격수였다.

차두리는 2002년 한일월드컵을 통해 당당히 이름을 알렸다. 4강 신화의 일원이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며 기량은 일취월장했다. 붙박이 국가대표였다.

2004년 아시안컵, 2010년 남아공월드컵, 2011년 아시안컵, 2014년 브라질 월드컵 3차 예선 등 숱한 A매치를 통해 많은 감동을 안겨줬다.

2010년부터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포지션도 변경했다. 투박했던 플레이는 한층 유연하고, 안정적으로 성장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 이어 지난해 브라질월드컵에서도 최종엔트리에 들지 못해 마이크를 잡았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맏형다웠다. 그는 이운재(42) 현 23세 이하(U-23) 대표팀 코치가 보유하고 있던 34세 102일의 종전 아시안컵 최고령 출전기록도 갈아치웠다.

차두리는 대회를 앞두고 소속팀 FC서울과 1년 재계약을 맺었다. 대표팀은 떠나지만 그라운드를 떠나진 않는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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