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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안구단] 7년 전 "끌려와 일했다"더니…日, 사도광산으로 또 억지 펴나

입력 2022-01-28 20:18 수정 2022-01-2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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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온라인 기사 [외안구단]에서는 외교와 안보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들이 알찬 취재력을 발휘해 '뉴스의 맥(脈)'을 짚어드립니다.

일본 정부가 결국 조선인 강제동원의 현장인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기로 했습니다. 기시다 일본 총리는 오늘(28일) 오후 관저에서 기자들을 만나 2023년 등록을 목표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추천할 방침을 굳혔다고 말했습니다.

■ 7년 전 그 날…군함도 때와 '닮은꼴'

시계를 7년 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닮은꼴 상황이 펼쳐집니다. 2013년 9월 17일 벌어진 일입니다. 당시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오전 각의 직후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규슈(九州)와 야마구치(山口)의 '메이지(明治)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한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바로 미쓰비시그룹 탄광이 있던 하시마섬(군함도) 등 7곳의 조선인 강제노역 시설이 포함됐습니다. 5만7천900여 명의 조선인이 의사에 반해 끌려가 노동을 해야 했던 곳입니다.

이후 2015년 7월 군함도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오르기까지 2년간의 지난한 외교전이 있었습니다. 세계유산위원회(WHC) 권고에 따라 한국과 일본이 대화를 통해 '접점'을 찾아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양국 간 이견이 계속되자 WHC는 등재 심사 결정 자체를 하루 연기하며 합의를 종용했습니다. 결국 WHC가 제시한 '데드라인'에 맞춰 막판 합의를 이뤘고, 일본 대표단은 위원국을 상대로 이를 발표합니다.

 
2015년 7월 5일(현지시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있는 일본 사토 구니 주유네스코 대사. 2015년 7월 5일(현지시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있는 일본 사토 구니 주유네스코 대사.

현지시간 7월 5일 독일 본에서 열린 WHC 회의에서 일본의 사토 구니 주유네스코 대사가 영어로 한 말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Japan is prepared to take measures that allow an understanding that there were a large number of Koreans and others who were brought against their will and forced to work under harsh conditions in the 1940s at some of the sites, and that, during World War II…"

"일본은 1940년대에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하였으며…"

이 성명은 일본의 산업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문에도 나와 있습니다. 일본 정부에 대한 권고사항에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하라. (5일에 발표한) 일본의 성명에 주목한다"라는 말을 주석으로 붙인 것입니다. 가토 구니 일본 대사 성명의 원문도 따로 게재했습니다.

 
일본의 산업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WHC 결정문의 일부. ″토의 요록에 포함된 일본의 성명(사토 구니 대사의 성명)에 주목한다.″고 명시돼 있다. 일본의 산업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WHC 결정문의 일부. ″토의 요록에 포함된 일본의 성명(사토 구니 대사의 성명)에 주목한다.″고 명시돼 있다.

■ "억지로 끌려와 일했다"던 일본의 말장난

하지만 등재가 결정된 다음 날, 일본은 'forced to work'라는 표현의 해석을 달리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강제로 노역했다"고 해석했지만, 일본은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억지로 끌려와 일했다"라는 뜻일 뿐이라는 겁니다.

"강제 노동했다"와 "억지로 끌려와 일했다", 얼핏 듣기에는 같은 말처럼 보입니다. 일본이 이 표현에 민감한 건 2차 세계 대전 전에 가입한 국제노동기구(ILO)의 '강제노동 금지 협약(Forced Labour Convention)' 때문입니다. 이 협약은 강제노동(Forced Labour)을 행할 경우 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군함도 강제노동 사실을 인정하면, 국제법을 위반한 국가가 되는 셈입니다. 다른 한편으론 이 협약에 전시(戰時)의 노동동원은 국제법에 위반되는 '강제노동'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펴고 있습니다.

하지만 표현은 달라도 이 선언은 조선인 다수가 의사에 반해 끌려와 일한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노동 관련 협약 등 국제법 위반 여부를 따지는 건 다음 문제입니다. 그런 역사적 배경이 있는 곳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면 관련국과의 대화와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게 7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과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것입니다. 일본은 이번 사도광산과 관련해서도 지난해 4월 이뤄진 각료회의의 결정에 따른 의견, 즉 "일제 강점기에 모집, 관 알선, 징용 등은 강제노동에 해당하지 않는 걸로 생각한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 펼쳐질 시나리오도 7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번엔 그때처럼 등재에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유네스코에 회원국의 반대가 있을 경우 관계국의 대화를 촉구하고 등록 절차를 유보한다는 새로운 지침이 마련됐기 때문입니다. 기시다 총리는 "한국의 의견은 알고 있다. 냉정하고 정중한 대화를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얘기해도 "의사에 반해 끌려와 일한 사람들은 있었지만, 강제노동은 아녔다"는 일본의 주장은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일본 내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세계유산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따지는 논의의 장에선 억지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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