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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5주년 됐지만…후손들, 여전히 벌레 나오는 단칸방에|한민용의 오픈마이크

입력 2020-08-15 19:45 수정 2020-10-19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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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 독립투사들의 항일정신이 서려 있는 서대문 형무소입니다. 이곳에서는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잔혹한 고문이 자행됐고, 여기서 해방되기 전까지 약 10만 명이나 고초를 겪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재산도, 목숨도, 가진 것 다 바쳐 독립을 위해 싸운 이분들 덕분에 오늘(15일) 우리는 광복 75주년을 맞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이, 그 후손들의 삶은 어떻게 흘러왔을까요?

[기자]

어지럽게 얽힌 전선 아래, 다닥다닥 주택이 들어선 골목길.

그중에서 가장 작은 문을 비집고 들어가면 곰팡이 슨 벽에, 화장실도 없는 단칸방 하나가 있습니다.

경북 안동에서 3·1 만세 운동을 이끈 독립유공자 권영직 선생 후손이 사는 집입니다.

[독립유공자 후손 : 우리 할아버지가 만세운동에 참가해가지고, 일본 사람이 하는 주재소가 있었다고. 거기 가서 주재소 유리창을 깨고, 주재소 경찰들을 막 끌어내다가…]

그 뒤 할아버지는 감옥에 끌려가 모진 고문 끝에 숨졌고 당시 10대 소녀였던 고모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갈 처지가 되면서 온 가족이 만주로 도망가게 됐습니다.

[독립유공자 후손 : 일본군 위안부로 선발했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위안부를 해야 되는 거야. (독립운동가) 가족이니까 특히나 뽑았지, 그 자식들 위안부로 가야 된다고…]

그 이후 권씨는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아버지 유언에 따라 약 20년 전 홀로 한국에 정착했지만, 고국에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반지하방에 살며 공사장을 전전해야 했고 지금도 벌레들 때문에 편히 잠들 수 없는 처지입니다.

[독립유공자 후손 : 바퀴벌레가 이만한 게 막 내려와. 방 안 쓸면 개미가 수북이 보여요, 여기. 밤 되면 잠을 못 자.]

만주로 건너가 항일투쟁을 한 양승만 선생의 다섯째 딸 양옥모 할머니 역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지하방에 살다 볕이 드는 지금 집으로 이사 온 지 반년밖에 안 됐습니다.

[양옥모/독립유공자 후손 : 우리 집은 삼대가 다 독립운동했는데, 우리 증조할아버지는 중국에서 세상 떴는데 김좌진 장군하고 같이 청산리전쟁에도 참가했어요.]

하지만 양 할머니는 이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숨긴 겁니다.

해방 후 중국에 남아 동포들을 마저 귀환시키는 임무를 부여받았던 아버지는 귀국 시기를 놓쳐 40년 뒤에나 조국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양옥모/독립유공자 후손 : 독립운동한 사람들은 가정도 다 속이잖아요. 우리가 하도 어렵게 사니까 어떤 때는 우리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거든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이해하고, 아버지도 위대한 일 했다고 존경스럽고 이제 원망 안 하죠.]

알고 보니 '양평의 천석지기'로 부자였던 아버지.

양 할머니는 이런 아버지를 본받아 수년째 봉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근엔 기초수급비를 아껴 고생하는 의료진에게 50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양옥모/독립유공자 후손 : 저도 나라에서 수급으로 생계비를 도와서 생활하니까 나도 그만한 건 해야죠.]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유공 등급에 따라 매달 적게는 74만 원에서 많게는 230만 원까지 받지만 가족 중 단 한 명만 지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나마 2년 전부터는 보상금 못 받는 후손 중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생활지원금을 주곤 있지만, 독립운동을 하며 시작된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입니다.

[양옥모/독립유공자 후손 : (친일파) 그 사람들 부자여도…다 일본X 밑에서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부자이지요. 우리 아버지는 자기 집, 땅 팔고 재산 팔아서 독립운동한다고…]

(영상디자인 : 강아람 / 영상그래픽 : 김정은 / 연출 : 홍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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