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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일본 폐기물 세슘 수치도 몰랐던 환경부

입력 2014-10-02 18:24 수정 2014-10-02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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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일본 폐기물 세슘 수치도 몰랐던 환경부


일본산 수입 폐기물에 대해 처음 취재를 한 건 2012년 초였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난 지 1년쯤 지났을 때였죠. 굴양식을 하는 지인에게 받은 한 제보로 시작됐습니다. 굴 양식을 할 때 굴의 포자(유생)를 키우는데 가리비의 패각(껍데기)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패각을 일본 후쿠시마 인근에서 수입한다는 거였습니다.

확인해보니 실제 일본 동북 미야기현과 이와테현에서 패각들이 대거 수입되고 있었습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일본산 가리비 패각 수입이 2010년엔 91톤에 그쳤지만 원전사고가 터진 2011년엔 3238톤으로 껑충 뛰어올랐습니다. 원래 중국산 가리비 껍데기를 사용했는데 원전 폭발 이후 일본산 가격이 폭락하다보니, 수입이 수십배로 늘어난 겁니다. 방사능 때문에 일본산 수입 수산물에 대한 우려가 높았는데 가리비 껍데기는 어떻게 수입이 됐을까요.

비밀은 바로 가리비 껍데기가 '쓰레기'였기 때문입니다. 일본 내에서 '산업폐기물'로 분류돼 수출업자의 경우 현지 지자체에 신고만 하면 수출이 가능합니다. 쓰레기를 수출하겠다는데, 그것도 '쓰나미 쓰레기' 처리로 고민 많은 일본 지자체로선 수출업자가 고마운 존재죠. 국내 수입업자도 환경부에 신고만 하면 수입이 가능합니다. '쓰레기'로 분류되면 농수산물도, 가공식품도 아니다 보니, 농림부나 해양수산부, 식약처, 원안위로부터 방사능 규제를 받을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겁니다.

당시 취재를 하면서 가리비 껍데기보다 더 놀라운 건 우리가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는 각종 폐기물들이었습니다. 가리비 껍데기는 그나마 '깨끗한' 쓰레기더군요. 시멘트 원료로 사용되는 석탄재와 철강 부산물(slag), 소각 연료로 사용하는 페타이어 조각들, 납산과 수은을 함유한 폐배터리 등. 2012년 기준으로 폐납산배터리, 슬러지, 광재, 분진 등 유해 폐기물의 수출량은 275톤에 불과하지만, 수입량은 25만5천톤으로 거의 1000배에 달합니다. 더 큰 문제는 폐기물 대부분이 일본에서 들어온다는 거죠. 지난해 일본이 수출한 폐기물 165만톤 중 161만톤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쓰레기가 자원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원 재활용 강국으로 꼽히는 일본이 왜 우리나라 시멘트회사들에게 운반비는 물론, 톤당 15달러씩 처리비까지 쥐어주면서 석탄재 수출에 열을 올리는 것일까요. 일본에선 환경 문제를 야기시키는 유해 폐기물의 매립부담금이 그만큼 높기 때문입니다. 실제 가까운 대만은 일본산 쓰레기를 수입하지 않습니다. 중국도 최근 수입을 줄이고 있는 상황이고, 폐타이어와 같은 일부 유해 폐기물들은 아예 수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서론이 길어졌는데요. 일본산 수입 폐기물에 취재를 위해 지난 9월 중순 직접 일본 센다이와 후쿠시마로 현지 취재에 나선 결과 방사능 오염 우려 지역의 폐기물들이 국내에 들어오고 있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와 관련해 취재한 내용은 저희 뉴스룸에서 연속 보도했습니다.

애초 정보공개로 요청했던 폐기물 방사능 오염 검사서들도 받았는데,동일본 대지진 이후 폐기물에 대한 방사능 검사는 4번밖에 하지 않았고 그것도 샘플 조사에 그쳤더군요. 특히 조사 때마다 세슘이 검출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취재수첩] 일본 폐기물 세슘 수치도 몰랐던 환경부


세슘은 원전사고가 아니면 이 세상에 나올 수 없는 인공 방사능 물질입니다. 검사 때마다 시료에서 검출됐다면 검사하지 않고 수입된 폐기물들도 이미 오염됐을 확률이 높습니다. 특히 폐기물의 경우 소각과 매립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환경적으로 더 심각한 문제를 불러 일으킵니다. 세슘은 소각한다고 사라지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폐기물 부피가 줄어들면 남아있는 세슘 농도는 그만큼 높아집니다. 실제 도쿄 한 소각장에서 세슘 50베크렐에 불과했던 쓰레기를 태우자 농도가 5000베크렐까지 올라가 현지에서도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폐기물 수입량도 문제입니다. 지난해 일본에서 수입된 가공식품은 8만여톤에 불과했지만 폐기물은 160만여톤이 들어와 20배에 달합니다. 석탄재의 경우 한번 수입될 때 2000톤씩 들어옵니다. kg당 1베크렐이 오염됐다면, 단순 계산으로 한번 수입될 때 200만 베크렐의 세슘이 들어오게 됩니다.

국내 한 시멘트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일본산 석탄재 수입에 대해 '경제적인 논리'라고 밝혔습니다. 돈을 주는데 왜 국산을 사용하냐는 거죠. 실제 경제 논리가 환경과 국민 안전에 앞설 수 있게 만든 건 수입업자의 책임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매립부담금을 턱없이 낮게 설정해, 우리 유해 폐기물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땅에 묻고, 수입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황당한 상황은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요.

보도가 나간 후, 다행스럽게도 환경부가 수입 폐기물에 대한 방사능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폐기물 수입시 방사능 오염 신고서를 제출하도록 했고, 1년에 두번 그쳤던 방사능 검사도 4번으로 늘렸습니다. 그리고 폐기물에 대한 방사성 검사 결과는 환경부 홈페이지에 공개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애초 환경부가 공개한 폐기물 방사능 검사 결과에 따르면 세슘이 kg당 최대 20베크렐이 나온 것으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오전 환경부 담당자가 한 검사 결과가 20베크렐이 아니라 30베크렐 정도인데 담당자 실수로 잘못된 수치가 공개됐다고 전해왔습니다. 올 상반기 일본산 수입 수산물에서 세슘이 검출된 것 중 가장 높은 수치가 kg당 3베크렐에 불과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저희가 같은 자료를 해당 지방환경청에도 요청했는데 오늘 오전에 공개 결정이 났습니다. 받아보니 기존 환경부가 저희에게 줬던 자료와 다르더군요.
[취재수첩] 일본 폐기물 세슘 수치도 몰랐던 환경부

환경부의 경우 은폐를 했거나, 아니면 아예 모르고 있다가 해당 지방환경청 자료를 받고 관련 수치를 정정해 알려준 것 같습니다. 은폐를 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모르는 것은 더 심각하다고 여겨집니다.

일본에선 원전 사고 이후 도쿄전력을 믿지 못하겠다는 일본인이 전체 70%에 달한다고 합니다. 사실을 계속 은폐하고 넘어가려고 했기 때문이죠. 환경부가 폐기물 방사능 검사를 강화하겠다며 발표한 조치들, 그리고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약속들이 구호에만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도 더이상 관련 자료를 찾기 위해 일본 환경성 홈페이지를 들어갈 필요가 없을테니까요.

사회2부 손용석 기자 sonc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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