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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플러스 20회] 총격 그리고 도주…임 병장의 43시간

입력 2014-06-29 22:58 수정 2014-06-29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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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한 주 시민들은 동부 전선 최전방 부대에서 일어난 총기 사건으로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우리 군은 무장한 탈영 병사 한 명을 잡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투입한 지 43시간 만에 생포할 수 있었습니다. 한 병사의 무차별적인 수류탄 투척과 총격에 장병 5명이 사명하고 9명이 부상 당한 뒤였습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군 당국의 허술한 초기 대응과 사건에 대한 은폐 시도까지, 각종 의혹들이 제기됐습니다.

탐사플러스 취재진은 유족들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당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되짚어봤습니다.

[기자]

지난 21일 오후 8시 10분.

강원도 동부전선 최전방 육군 22사단의 한 GOP 부대.

기상청에 따르면 당시 부대가 위치한 고성군 일대엔 옅은 안개가 끼어 있었지만,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았고 기온도 영상 18도로 선선했습니다.

당시 임모 병장을 포함한 부대원 10여명은 경계초소 근무 교대 후 소초로 이동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임 병장은 경계초소에 다녀오겠다며 무리를 빠져나왔고, 잠시 후 모여 있던 동료들을 향해 수류탄 1발을 투척했습니다.

현장에 있던 최대한 일병이 그 자리에서 바로 쓰러졌고, 임 병장은 도망치는 김영훈 하사를 따라가 등 뒤에서 추가로 총격을 가했습니다.

부상한 선임병을 부축하는 김경호 일병에게도 총을 쏘았습니다.

소초 내 생활관과 식당에 들어가 이범한 상병과 진우찬 상병에게도 차례로 총격을 가했습니다.

[노봉국/고 이범한 상병 외삼촌 : 지향성 사격이다. 지향성 사격이라고 하는 것은 총구는 정면을 향해서 조준을 하지 않은 채 가늠쇠로 총을 쏘는 것이죠.]

당시 임 병장은 소초 내에 있던 간이탄약고에서 실탄까지 추가로 챙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유족 관계자 : 생활관 안에 탄약고가 있다는 거예요. 그 탄약고를 총으로 쏴서 열쇠를 뚫어서, 그래서 탄약을 (꺼내) 무장을 했다는 얘기거든요.]

임 병장이 처음 수류탄을 던져 사건을 일으킨 지 18분이 지난 오후 8시 28분에 부대를 빠져나갔습니다.

어떻게 임 병장은 30명이 넘는 부대원들을 따돌리고 도주할 수 있었을까.

임 병장이 범행을 저지른 시간은 일몰 시간대로 GOP 경계근무가 가장 강화되는 시점입니다.

[이모 씨/육군 22사단 예비역 병장 : GOP 경계근무 자체가 주간과 야간이 교대될 때 전원이 다 들어갔다가 (초소에) 남는 거죠. 그런 식으로 이뤄져 있거든요.]

더 많은 병력들이 경계초소로 빠져나간 사이, 함께했던 경계 근무자들과 내무반 동료들을 향해 범행을 저지른 겁니다.

실제 임 병장이 범행을 저지른 지난 21일 일몰 시간은 오후 7시 57분.

취재진이 부대 인근 지역에서 직접 확인해 본 결과, 일몰 시간이 지나자 순식간에 어둠이 내려 주변 사물을 식별하기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유족들에 따르면 당시 부대원들은 수류탄과 총격 소리에 놀라 경계근무를 서던 일부 대원들은 벙커로, 내무반에서 쉬고 있던 대원들은 침상 밑으로 대피했습니다.

[진유호/고 진우찬 상병 아버지 : 폭탄 소리가 나면 내무반에서 방공호로 피하는 게 매뉴얼이었다고 합니다. 포 공격이 항상 병사들이 집결해 있는 지역이라 한두 번 지나면 바로 떨어지는 상황이라….]

당시 소대장은 생활관에서 취침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유족 관계자 : 소대장은요, 잠을 잤대요. 그 시간에 소대장이 잠을 자야 할 시간인지 근무를 해야 하는 시간인지….]

[김모 씨/GOP부대 예비역 중위 : 그 시간은 간부들이 제일 많을 시간이야. 그때는 자는 간부가 아무도 없는 시간이야. 간부들이 저녁 먹고 난 뒤에 지휘통제실에서 회의하고 끝날 시간이라, 가장 눈 뜬 사람이 많을 시기다….]

하지만 임 병장을 제지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해당 사단 본부에 상황이 접수되고 군의 작전반경이 설정된 것은 임 병장이 빠져나간 뒤인 오후 8시 36분이었습니다.

동료들에게 수류탄과 총을 발사한 뒤 실탄까지 추가로 챙겨 달아났지만 군 당국이 최고경계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한 것은 사고 발생 2시간이 지난 밤 10시 12분이었습니다.

[신인균/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 일단 군 당국의 상황 판단에 오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임 병장이 충분히 민가 지역으로 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주한 임 병장이 수색대에 처음 발견된 건 사건 발생 18시간이 지난 다음날 오후 2시 민통선 인근 제진검문소에서였습니다.

제진검문소의 경우 문제의 GOP 부대에서 동쪽으로 10km 가량 떨어져 있습니다.

임 병장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산길을 따라 18시간 동안 이동한 겁니다.

[황모 씨/육군 22사단 예비역 병장 : 사고 당시 시야 확보가 어려운 야간이었고 산 능선을 따라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10시간 이상은 계속 걸어야 가능한 거리입니다.]

군에선 임 병장이 도주한 즉시, GOP 경계병력을 전원 경계초소에 투입했고, 사건 발생 이튿날인 22일부터는 9개 대대 3500여명이 검거작전에 나섰지만 18시간 동안 임 병장을 발견하지 못한 겁니다.

[신인균/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 군에서는 포위망을 좀 더 넓게 구축해서 좁혀가는 방법을 취했어야 되지 않느냐….]

특히 임 병장이 이동한 지역은 동부전선에서도 지뢰가 가장 많은 곳으로 손꼽힙니다.

최근 민간인 거주 지역에서도 지뢰들이 잇따라 발견돼, 인근 군부대에서 대대적인 지뢰 제거작업을 벌일 정도입니다.

[쾅!]

임 병장은 어떻게 지뢰와 수색대를 피할 수 있었을까.

[김모 씨/GOP부대 예비역 중위 : GOP가 철책근무만 하는 게 아니라 비가 엄청 많이 오고 그러면 도로 보수공사도 하고…. 0924 GOP 인근에 있는 사계 감시를 위해서 수풀도 제거한다고 한단 말이지. 그렇다고 하면 도주로도 다 알고 있지, 병장이라면 다 안다….]

임 병장은 자신을 발견한 동료들에게 소지한 실탄으로 다시 사격을 가했습니다.

[탕! 탕! 탕!]

이후 40분 동안 격렬한 총격전이 이어졌지만 임 병장 체포엔 실패했습니다.

[탕 탕 탕]

오히려 임 병장을 추격하던 소대장이 팔에 관통상을 입고 헬기로 후송됐습니다.

군은 현장에 도착한 임 병장의 아버지와 함께 지속적으로 투항을 권유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임모 병장 아버지 : 여기서 끝내자, 이제. 더 이상 너는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어. 여기서 벗어나는 게 불가능해. 그리고 네가 억울한 게 있으면 얘기해야 돼. 그러니까 내려와. 그래야 네가 살 수가 있지. 여기서 네가 이렇게 계속 있으면….]

[신인균/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 투항 권유 방송을 한 이후에 벌써 만 하루가 지나고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투항을 안 하고 있다는 것은 임 병장의 심리상태가 보통 사람들과는 완전 다른 상태다.]

군 당국이 임 병장과 대치를 벌이는 사이 인근 주민들은 체육관으로 대피해야 했습니다.

[명파리 방송 (대진초등학교) : 주민 여러분께 안내방송 드립니다. 지금부터 대피를 하겠습니다. 우리 주민들 전부 다 대피를 하셔야 되오니 전부 준비를 하셔서…]

[명파리 주민 : (절뚝거리며) 천천히 가요, 천천히. 다리 망가져.]

[명파리 주민 : 처음이라니까. 명파리에 처음이라니까. 내가 46년을 살았는데 47년짼데 이렇게 대피하라는 건 처음이에요. 몇 년 전에 불났을 때 마을에 불이 내려 덮힐까봐 이제 대피를 해라 하다가 말았거든. 이런 일이 처음이라고요. 지금. 어우, 큰일 났네.]

코앞에서 벌어진 총격전에 주민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명파리 주민: (선생님은 총소리 들으셨어요?) 3발은 처음에 난 소리고, '다르르'하고 최소 20발은 넘은 거 같아.]

[이옥진/명파리 주민 : 무섭지, 왜 안 무서워. 그렇지만 어떡해. 가만히 들어앉아 있었지.]

군인들은 놀란 주민들을 안심시킵니다.

[오종화 중령 : 현재 작전이 진행 중에 있고, 이중에선 총소리 들으신 분도 계실 텐데, 이 총알이라는 것이 사람을 보고 날아오는 것도 아니고 바로 가서 잡을 수 있는게 아니라 큰 울타리를 쳐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끝날 것 같았던 임 병장의 도주 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임 병장이 다시 종적을 감춘 겁니다.

군 당국은 일대 4개 마을 주민들까지 긴급 대피시킨 뒤 매복에 나섰습니다.

사라진 임 병장이 수색대와 마주친 건 다음날 오전 8시 20분, 남쪽으로 4km 떨어진 야산이었습니다.

임 병장을 포위한 군은 휴대전화를 던져줬고, 아버지와 통화가 시작됐습니다.

오후 2시 30분, 임 병장은 수색대에게 펜과 종이를 달라고 요구했고 이를 건네받은 후 유서 형식의 메모를 남깁니다.

[유족 관계자 : 브리핑할 때 아버지가 녹음했는데 그대로 읽었대요. 읽어주는 거 보니까 그 얘기가 나와요. 사람이 개구리한테 돌을 던지면 상처를 받듯이, 그러니까 무심코 던지는 말들이 자기한테 상처로 남았다. (아, 그렇게 얘기를 했다는 거예요?) 그런 얘기가 나오고 원래도 무심코 행동하는 게 그 사람은 상처를 받는 거고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제 하는 얘기가 나도 책임이 있지만 그 사람들한테도 책임이 있었다고….]

눈물을 흘리며 심경의 변화가 생기는 듯 했으나, "이미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데 돌아가 봐야 사형"이라며 결국 총으로 자신의 가슴을 쐈습니다.

[정유성/명파리 주민 : (오후) 3시쯤 총소리가 한 번 나요. 자해 행위를 한 것 같았어요. 10분 뒤에 의무차가 와서 뒤에서 밀어넣고,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있고….]

결국 5명이 희생되고 9명이 부상을 당한 총기 사건이 막을 내렸습니다.

임 병장이 스스로 쏜 총탄은 자신의 왼쪽 가슴 위쪽으로 뚫고 들어가 어깨를 관통했습니다.

[강릉아산병원 관계자 : 폐 위쪽이 조각이 나면서 폐출혈이 있고 그랬던 상태입니다. 그래서 폐 일부가 손상됐기 때문에 그 부분을 절제술을 시행했습니다. 1차로 수술이 끝났고 환자는 굉장히 안정된 상태라서 아마도 2차 수술은 없을 것 같습니다.]

군 당국은 43시간 만에 임 병장을 생포했지만, 초동 대처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쏟아졌습니다.

특히 사건 발생 사흘째인 23일 오전 임 병장과 수색대가 두 번째로 대치한 곳은 민통선을 벗어난 민간인 거주 지역인 금강산콘도 부근이었습니다.

임 병장이 애초 대치했던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에서 남쪽으로 4km나 이동한 겁니다.

주민들은 군 포위망이 다시 뚫린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윤모 씨/인근 주민 : 여기 참호가 왜 있겠어요. 이게 돌아서 저 바닷가까지 나가 있는 거라고요. 남쪽으로 못 내려가게 하기 위한 참호거든요, 이게. 저쪽은 도로 점령하면 끝이고.]

취재진이 해당 지역을 직접 가본 결과, 임 병장 도주로로 추정되는 길목 곳곳에서 경계소초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윤모 씨/인근 주민 : 분명히 여기서 (작전을) 했을 텐데. 여기 발자국 봐. 이번 작전에 군인들 들어왔네요. 발자국인데. 그런데도 (포위를) 못했으니, 그게 답답하다는 거지.]

주민들은 임 병장이 민가로 넘어올 수도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윤모 씨/인근 주민 : 그럼 최초에 발견이 됐을 때 이곳이 먼저 차단이 됐어야 하는데, 또 차단을 했을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뚫려서 금강산콘도 인근 지역까지 탈영병이 내려왔다는 것은 차단이 안 되고 작전이 실패했다는 거죠.]

군 당국이 사건을 은폐,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됩니다.

사건이 일어난 지 두 시간이 지나서야 진돗개 하나를 발령한 이유도 석연치 않습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 : (김광진: 진돗개 하나 발령한 게 언제시죠?) 약 두 시간 뒤로…. (김광진: 두 시간 뒤입니다. 기본적으로는 탈영병이 외부로 나가지 못하게 검문소 설치하는 게 중요한데, 설치된 게 언젭니까?) 전방에서 무장탈영병이 발생하면 현지 지휘관은 진돗개 하나에 준하는 조치를 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언젭니까?) 약 한 시간 반 뒤로 알고 있습니다.]

군 당국은 사고 내용을 입수한 JTBC가 사실 확인을 요청한 이후에야 언론에 내용을 알렸습니다.

2시간 넘게 경찰들은 물론 지역 주민들도 임 병장의 무장 탈영 사건을 몰랐던 셈입니다.

[인근 주민 : 우리 동네 이장님이 새벽에 방송을 했대, 5시에. 사람들 방 안에서, 집에서 나오지 말라고….]

군 당국은 총상을 입은 임 병장을 병원으로 후송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어처구니 없는 일을 벌였습니다.

모포로 덮은 '가짜 임 병장'을 동원해 언론을 속인 겁니다.

[나와, 나와, 나와!]

진짜 임 병장은 일반 앰뷸런스에 태워 지하로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의혹이 제기되자 국방부는 "강릉아산병원 측이'가상의 환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병원 측은 군 해명을 정면 반박해 논란이 커졌습니다.

[강릉아산병원 관계자 :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진짜 임 병장이) 수술실로 올라갔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저희가 그때서야 '이게 가짜구나' 이렇게 안 거죠.]

연극이 탄로나자 국방부는 임 병장 상태가 위중해 벌인 일이라고 해명했지만, 정작 현장에선 기자들이 질서를 지켜가며 취재해 가짜 임병장은 잠시의 지체도 없이 병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철희/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 국방부의 해명은 (임 병장이) 위독해서 그렇다고 얘기하는데 만약에 위독해서 그랬다면 들어간 후에 기자들한테 밝혀야 되는데. 그런 얘기를 안 했다는 건 그것만의 이유는 아닌 것 같고요. 임 병장이 어떤 얘기를 하는 가에 대해서 굉장히 국방부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자들은 지나갈 때 그냥 안 보내잖아요. '왜 그랬습니까?' 막 이렇게 물어보니까. 그랬을 때 엉뚱한 단어 나올까봐….]

그렇다면 임 병장은 어떤 사람일까.

지난 2012년 12월 17일 입대한 임 병장은 올해 9월 16일 전역할 예정이었습니다.

제대가 석 달도 안 남은 '말년 병장'이었지만, 그의 군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부대 전입 직후인 지난해 4월 인성검사에서 보호관심병사 A급으로 분류된 겁니다.

보호관심병사란 심리적ㆍ정신적 문제로 군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 지휘관의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병사를 말합니다.

특히 A급 보호관심병사는 자살 징후까지 나타나는 특별관리 대상으로 실탄과 수류탄이 지급되는 GOP 경계근무가 제한됩니다.

하지만 임 병장은 A급을 받은 지 7개월만인 같은 해 11월 검사에서 B급 판정을 받았고, 한 달도 안돼 GOP 근무에 투입됐습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 : 작년 11월 인성검사 결과 괜찮은 걸로 나타났고, 다시 검사했을 때 B급 정도 나와서 투입했습니다.]

[임태훈/군 인권센터 소장 (24일 JTBC '뉴스9') : 관심병사로 일단 지정이 되면 부대 내에 소문이 다 퍼지게 됩니다. 사실상 낙인을 찍거나 주홍글씨가 되게 마련입니다. 관심병사가 없다 하더라도 지휘관이 '당신 부대는 왜 관심병사가 없느냐', '상담을 하지 않은 건 아니냐'라는 추궁을 듣기 싫어서 관심병사를 낮은 등급으로라도 억지로 이렇게 만드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사건이 터지자, 인터넷과 SNS에선 임 병장에 대한 각종 이야기들이 올라왔습니다.

입대 전 임 병장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고등학교를 자퇴한 임 병장은 고졸 검정고시를 통해 한국방송통신대에 다니다 입대했습니다.

하지만 학교 측은 한 학기만 등록했을 뿐 교류가 거의 없었다고 말합니다.

[한국방송통신대 관계자 : 실질적으로 학교를 안 다녔다고 보는 게 맞는 거 같고요. 교수님들도 당연히 본 적 없으시고요. 거의 수업을 안 들은 걸로….]

학창 시절 얘기도 듣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임 병장이 다닌 중학교 졸업 앨범입니다.

앳된 모습에 친구들과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눈길을 끕니다.

취재진이 만난 임 병장의 중학교 동창들은 대부분 그를 잘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이모 씨/임 병장 중학교 동창 : 네, 아예 들어본 적 없고 그냥 이름 듣고 찾아봤는데 제 주위 친구들도 아무도 아는 사람은 없었어요.]

임 병장의 중학교 담임교사는 그를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왕따는 아니었다"고 전했습니다.

[황모 씨/임 병장 학급담임 : 워낙 조용하고 내성적이고 그렇지만 거칠거나 이런 아이는 아니고, 누가 자기를 어떻게 한다고 해서 그 아이한테 해코지를 한다든가 그런 건 전혀 없었고 조용하고 내성적일 뿐이지, 공격적인 성향이 있거나 하진 않아서 저도 많이 놀랐거든요.]

취재진은 임 병장이 입대 전까지 운영했던 블로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선생님에겐 내성적으로 알려진 임 병장은 온라인에선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자주 올린 파워 블로거로, 각종 인터넷 게임과 이벤트에도 적극 응모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김관진 국방부장관 : 과거에 비해서 컴퓨터를 친구 삼아서 일부 고립된 상태에서 성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관리대상인 병사들이 과거보다 많습니다.]

실제 임 병장은 지난 27일 군 당국의 조사에서 "초소에 나를 놀리고 비하하는 내용의 글과 해골모양의 그림이 있는 것을 보고 격분,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동료들은 물론, 부대 간부까지 자신을 무시했다는 겁니다.

일각에선 임 병장이 치밀한 계획 하에 범행을 계획했을 가능성도 제기합니다.

[신인균/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 10여 발로 사람 5명을 사망시켰습니다. 이건 거의 신기에 가까운 사격술인데 그 말은 전혀 긴장하고 있지 않다, 심장박동이 아주 고른 상황입니다. 대치해 있는 상황해서도 정확하게 조준해서 소대장을 쐈고, 소대장의 팔에 관통을 했어요. 이거는 지금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아주 마음이 편한 상태예요.]

임 병장의 범행이 우발적이었든, 계획적이었든 전문가들은 군의 보호관심병사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신인균/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 GOP에 배치하는 것을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면 사실 취약한 정신을 가진 사람을 입대를 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군부대는 위험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22사단의 총병력이 1만4000명이고 그 중에 1800명이 관심병사입니다.]

취재진은 임 병장을 추적하던 도중 3년 전 보호관심병사 제도 때문에 아들을 잃었다는 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박모 씨 : (아들이) 초반에 관심병사로 판결이 났어요. 그런데 자대 배치 받고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더니 C급 관심병사인 일반 병사로 관리했어요.]

군 입대 당시 보호관심병사 A급이었던 아들이 자대 배치 후 C급으로 바뀌었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겁니다.

특히 아들이 군 상담관에게 휴가 중 자살을 시도했던 사실도 알렸지만 해당 부대에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박모 씨 : 군대생활에 적응을 못했는데, 그 상태에서 선임병들의 폭언이나 질책이 이어지자 우울증이 생기고 결국 사망한 겁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잃은 지 3년이 지났지만 술을 마시지 않으면 하루를 버티기 힘듭니다.

[박모 씨 : 자식 가진 부모는 다 똑같겠습니다만, 다 큰 자식을 잃은 부모 입장에서는 다 똑같을 겁니다. 지금 사망한 지 거의 3년이 다 됐습니다만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저같은 경우는 아들 사망하고 나서 매일 술을 안 먹으면 잠이 안 오는 입장이고, 집사람도 아들 영정사진 보면서 매일 웁니다. 퇴근해가지고 제가 애 엄마 우는 모습을 보면 가장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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