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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오스카 트로피 품에…"전 세계가 윤며들었다"

입력 2021-04-26 19:06 수정 2021-04-27 02:37

정치부회의 #청와대 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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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회의 #청와대 발제

[앵커]

정말 기분 좋은 소식이죠. 영화 데뷔 50주년을 맞은 일흔 네살의 배우 윤여정씨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한국 배우 최초이자, 아시아 배우로는 두 번째 아카데미 연기상 수상입니다. 오늘도 멋진 수상소감을 보여줬고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전세계가 윤여정에게 스며든, 이른바 '윤며든' 날이었습니다. 관련 소식을 신혜원 반장이 정리했습니다.

[기자]

[영화 '화녀' (1971) : (서울엔 31층 빌딩이 있대 너나 나나 헤어져도 그거 쳐다보고 살자) 31층? 떨어져 죽기 편리하겠다 이것도 닭 먹이 되죠? 동물성이니까요 애는 살려고 악착같이 붙어있는 걸요 아무도 손 못대요, 하느님도요]

고 김기영 감독의 1971년작 영화 < 화녀 > 입니다. 그리고 한 대배우의 데뷔작이기도 하죠. 때로는 깜찍하고, 때로는 끔찍한 연기로 충무로에 윤여정 이름 석자를 각인시켰습니다. 그로부터 꼭 50년 뒤, 이 배우는 한국 영화 역사상 첫 오스카 연기상을 거머쥡니다.

[브래드 피트/배우 (현지시간 지난 25일) : 여우조연상 수상자는 윤여정 씨입니다.]

예상하셨죠. 오늘은 특집 < 윤여정회 > 발제입니다. 시상은 영화 < 미나리 > 의 제작자이기도 한 브래드 피트가 맡았습니다. 브래드 피트의 호명을 받은 윤씨는 동료들의 뜨거운 박수와 함께 무대위에 섰는데요. 많은 이들을 '윤며들게(윤여정에게 스며들다)'한 위트 넘치는 수상 소감이 이어졌습니다.

[윤여정/배우 (현지시간 지난 25일) : 브래드 피트 씨, 드디어 만났네요. 너무 반갑습니다. 저희가 영화를 찍을 때 어디 계셨나요? 아시다시피 저는 한국에서 왔고 제 이름은 윤여정입니다. 유럽인들 대부분은 저를 '여영'이나 또는 '유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하지만 오늘만큼은 여러분 모두를 용서하겠어요.]

영화 < 미나리 > 를 이끈 정이삭 감독과, 함께 연기를 펼친 스티븐 연, 한예리 등 배우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언급하며 수상의 영광을 나눴습니다. 같이 후보에 오른 배우들에 대한 찬사도 잊지 않았는데요.

[윤여정/배우 (현지시간 지난 25일) : 저는 경쟁을 싫어합니다. 제가 어떻게 글렌 클로스를 이기겠어요? 저는 그녀의 영화를 수없이 많이 봤습니다. 5명 후보가 모두 각자 다른 영화에서의 수상자입니다. 오늘 밤 제가 여기에 있는 것은 단지 조금 더 운이 좋았을 뿐이죠.]

가족을 빼놓을 순 없죠. "나의 두 아들은 항상 저에게 '일하러 나가라' 종용한다. 그 잔소리 덕에 열심히 일했더니, 상을 받게 됐다"며 공을 돌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데뷔작인 '화녀'를 연출한 고 김기영 감독을 향한 감사 인사를 전하며 소감을 마무리했습니다. 감히 상상컨데, 이 순간 윤씨의 머릿속에 지난 50년간의 연기 인생이 필름처럼 스쳐가지 않았을까요.

[변영주/감독 (JTBC '방구석1열' / 지난 24일) : 화녀로 시체스국제영화제, 대종상, 청룡영화상에서 그니까 영화 데뷔작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으신. 엄청난 거죠. 그리고 그 이후에 충녀, 어미로 당시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던, 독보적인, 악녀와 순수한 여인 사이를 왔다, 갔다 하신 거죠. 그리고 2000년에 들어서 바람난 가족, 여배우들, 하하하를 거쳐서 하녀로 다시 국내 여우조연상을 휩쓰시고, 그 이후에 돈의 맛, 장수상회,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계춘할망, 죽여주는 여자, 그리고 이제 오늘 우리가 언급할 미나리까지.]

윤씨는 영화 < 미나리 > 에서 손주를 돌보러 미국으로 건너간 할머니 순자 역을 맡았는데요. 사실적이면서도 전형적이지 않은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으며 아카데미 전까지 무려 38개의 트로피를 휩쓸었습니다.

또 아카데미는 올해 홍보 영상에 윤씨를 등장시켰고, 오늘 공식트위터엔 지난해 트로피를 들어올린 봉준호 감독의 사진까지 올렸습니다. 수상은 따놓은 당상이란 전망이 우세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순 없었는데요.

[윤여정/배우 (지난해 2월 17일) :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상을 받은 걸 보고) 오래 살 길 잘했다. 그 옛날엔 꿈도 못 꿔봤죠. 세상에 오스카는 그 사람들끼리만 즐기는 거고… (전도연 씨가 선생님이랑 같이 아카데미 가는 꿈을 꾸게 됐다 이런 얘기를 인터뷰에서 또 하셨어요. 혹시 들으셨어요?) 못 들었는데, 걔가 오스카를 노리나. 자기는 주인공 하고 나는 단역 시키려고 그러는 거죠.]

그리고 마침내, 39번째 트로피 '오스카'가 그녀의 품에 안겼습니다. 한국 배우로는 최초, 아시아 배우로는 역대 두번째 아카데미 연기상이죠. 최근 아시아 영화의 약진과 할리우드의 다양성 확대 움직임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는데요. "무지개도 일곱 가지 색깔이 있다"며 "서로를 이해하고 끌어안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윤여정/배우 (현지시간 지난 25일) : 사람들은 흑인, 황인종, 백인 등으로 분류됩니다. 그렇게 나누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저는 우리가 모든 색깔을 합쳐 더 예쁘게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심지어 무지개에도 7가지 색깔이 있어요.]

요즘 청년들 사이에선 '윤며들다', 윤여정에게 스며든다는 신조어까지 생겼습니다. 꼰대스럽지 않고, 쿨하고 솔직하되, 어른의 통찰력까지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나이먹어도 몰라. 나도 67살은 처음이니까", ""내 마음대로 하는 환경에 있으면 괴물이 된다" 등등. 여러 예능에서 보여준 재치있는 화법은 덤이고요. 그녀가 보여준 '탈권위'와 '도전정신'에 청년들은 열광합니다.

[윤여정/배우 (JTBC '뉴스룸' / 2015년 3월) : '쟤 목소리 때문에 안 된다. 얼굴은 고사하더라도' 그래서 '내 손에 장을 지져라' 그러셨는데 그분들이 다 고인이 되셨어요. (열등의식을) 극복해야 하느라고, 애써서 지금 (연기를)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봤어요.]

[윤여정/배우 (현지시간 지난 25일) : 미나리 친구들은 선생님이 받는다고 막 그러는데 그거 별로 안 믿었어요. 저 요행수도 안 믿는 사람이고 인생을 오래 살아서 배반을 많이 당해봤기 때문에…]

방금 이 장면은 수상 후 진행된 한국 언론과의 기자회견 모습입니다. 우리 복국장이 워싱턴 특파원으로 있었다면 직접 저곳으로 달려갔었을텐데… 아님 저라도 보내줬으면 제가 기가막힌 질문 하나 던졌을텐데 말이죠. 현장에는 현 워싱턴 특파원인 김필규 기자가 함께 했습니다.

[김필규/JTBC 기자 (현지시간 지난 25일) : JTBC 김필규입니다. 다음 질문 드릴 텐데요. (우리 알잖아.) 배우 윤여정 선생님께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윤여정/배우 (현지시간 지난 25일) : 최고의 순간인지 난 모르겠고, 아카데미가 전부는 아니잖아요. 그냥 최중만 되면서 살면 되잖아. 우리 다 동등하게 살면 안 돼요? 그럼 나 또 사회주의자가 되나? 아 뭐 손들 거 없어 내가 대통령도 아닌데 뭘 손들어요. 빨리 말하세요.]

오늘 시상식에선 '감독상 시상자'로 돌아온 봉준호 감독의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요. 직접 참석하는 대신 서울에서 이원생중계를 통해 함께 했습니다. 봉 감독은 후보로 오른 다섯명의 감독에게 "길에서 어린 아이를 붙잡고 '감독이란 무엇인가'를 20초 안에 설명한다면?" 하고 다소 철학적인 질문을 던졌는데요. < 미나리 > 의 정이삭 감독의 답변도 한 번 들어볼까요.

[봉준호/영화 감독 (현지시간 지난 25일) : 정이삭 감독은 말합니다. '영화는 삶에 대한 응답이어야 합니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진정 사람들에게 가 닿을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서 스토리텔러는 늘 우리의 실제 삶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 삶에 뿌리를 둔 영화. 그 영화를 보며 위안받는 우리들. 그게 바로 예술이 주는 힘이겠죠. 앞으로도 윤씨를 비롯해 우리 영화인들의 뛰어난 활약, 기대해 보겠습니다.

오늘 청와대 발제 이렇게 정리합니다. < 윤여정,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전세계가 윤며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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