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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플러스 20회] 아물지 않는 '총기 사고 트라우마'

입력 2014-06-29 23:18 수정 2014-06-30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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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저희 취재진은 이번 총기 사건을 취재하면서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임 병장의 총격에 희생된 장병들이 피격 상태에서 1시간 반 이상 그대로 방치됐다는 겁니다. 다음날 오전 유족들은 차디찬 바닥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아들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세월호 참사에 이어 이번에도 또 다시 ‘골든타임’을 놓친 건 아닌지, 손용석 기자가 들여다봤습니다.

[기자]

경기도 성남의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총기 사건 희생 장병 다섯 명의 영정들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진유호/고 진우찬 병장 아버지 : 8시경에 사고 났다는 건 들리고, 불안한 마음은 있었는데 (전화)벨 소리가 울리니까 너무 받기 싫었죠. 받기 직전엔 몇 발을 맞아도 좋으니 살아만 있어다오….]

[김경호/아버지 : 걔는 부상병을 구하려다가, 절뚝이며 내려오는 부상병을 구하려다가, 내무반에서 쉬다가 올라가버려서 총을 맞아버렸대요.]

조문을 하러 온 지인들도 이들의 죽음이 믿기지 않습니다.

[유족 지인 : 휴가 나왔을 때도 못 봤어요. GOP고 그래서 얼굴도 못 보고 더 미안하지.]

[이재복/김영훈 하사 지인 : (좀 많이 놀라셨겠어요?) 네, 할 말이 없었어요. 믿기지 않아서.]

애초 유족들은 장례식장 입구부터 언론 접근을 철저히 피했습니다.

[배석진/공보장교 : 촬영에 대해선 어렵다. 자제해주시면 좋겠다.]

장례식과 함께 희생 병들의 부검도 철저히 배일 속에서 이뤄졌고 언론 접근도 통제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취재진은 고 이범한 병장 외삼촌인 노봉국 씨를 어렵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미 군의관 출신으로 미국에서 치과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노씨는 조카의 부검과 장례식을 참관하기 위해 지난 25일 직접 한국을 찾았습니다.

[노봉국/고 이범한 병장 외삼촌 : 미국에서 있으면서 오기 전에 정말 그 얘기 듣고 조카 놈 생각에 울어가지고 지금 눈이 이렇게 튀어나왔어요. 여기가 원래 울면 눈이 튀어 오르더라고요. ]

이제 막 1차 부검을 마치고 온 그는 취재진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전했습니다.

조카 이범한 병장이 총상을 입은 신체부위가 즉사할 만한 곳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노봉국/고 이범한 병장 외삼촌 : 심장에서 혈관이 연결이 되면서 근데 이게 양쪽으로 올라가잖아요? 다행히 우리 범한이가 맞은 총상의 흔적 주위엔 거기에 중요한 장기가 없었어요. 폐에만 파편이 있어서 상처가 있는데….]

총상을 입은 후에도 이동한 흔적이 있었다고 강조합니다.

[노봉국/고 이범한 병장 외삼촌 : 21일 날 8시 10분에 임 병장이 총기사고로 슈류탄을 터트렸는데 우리 범한이가 맞은 시간은 8시 15분이었어요. 8시 15분이었는데, 맞은 그 때 찍은 사진들을 봤더니 범한이가 맞고 본인이 복도로 맞은 상태에서 이동을 했어요. 그래서 그 이동한 구간 동안 피가 흥건하게 그어져 있잖아요. 총을 맞은 순간에 움직였다는 거고.]

하지만 이후 아무런 응급 조치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노봉국/고 이범한 병장 외삼촌 : 군의관이 나와서 사망 판정을 할 때까지는 거기에 CCTV도 있고 하니까 어떤 구조 활동이 있었다든지, 어떤 의료 활동이 있었다든지 분명히 기록이 남아있을 거예요. 그러나 그러한 기록이 있다는 거는 못 들었습니다.]

도대체 사건의 범인 임 병장이 현장을 떠난 뒤 GOP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임 병장이 동료들을 향해 총격을 가한 건 21일 오후 8시 10분.

하지만 현장에 구조대가 도착한 건 사건이 발생한 지 1시간 30분이 지난 밤 9시 41분이었습니다.

이범한 병장을 비롯한 희생 장병들은 초기 응급조치는커녕, 다음날 가족들이 현장을 방문할 때까지 차가운 바닥에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는 겁니다.

[노봉국/고 이범한 병장 외삼촌 : 그렇죠. 시멘트 바닥에 그대로, 방치가. 피가 흐르는 상태에서 계속 그대로 방치가 되어 있었어요.]

할 말이 더 있어 보였지만, 일단 부검 결과를 놓고 이야기하자며 말을 아꼈습니다.

[노봉국/고 이범한 병장 외삼촌 : 일단은 이따가 내가, 지금도 부검을 하고 있거든요. 제가 정리를 해가지고, 부검을 한 결과를 가지고 좀 더 정확한, 좀 더 신빙성이 있는 자료를 근거로 해서….]

취재진은 노씨의 주장에 대해 군의 입장을 직접 물었습니다.

[육군본부 관계자 : 북한군이 우리에게 포탄 사격을 가해온다고 치면 그 때 당시엔 우리가 대피호에 피신하는게 1번 임무입니다. 당시 개네들이 대피호에 있었는지도 미지수입니다. 그걸 누가 압니까. 화장실에 있었는지 침상에 숨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결과가 안나왔기 때문에. (그런 경우엔 무조건 현장 보존이 원칙인가요?) 대개의 경우 사건 사고 발생시에 사망자가 있는 위치는 현장 보존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통사고도 마찬가지잖아요. 사고가 나면 사고 현장 보존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하지만 취재진이 만난 해당 GOP 부대 근무자들은 곧바로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최모 씨/해당 GOP 부대 지난 3월 전역 : GOP (경계근무) 투입하기 2달 전부터 투입 전 교육을 받고 상황 발생했을 때 어떻게 보고하는지 다 교육을 받는데, 1823 총격 소리하고 수류탄 폭발 소리가 들렸을 때 보고가 들어가는 게 원칙상으로 맞고 바로 대처를 해서 A형 투입을 해서 무장 투입을 했었어야 돼요.]

이날 저녁 취재진을 다시 만난 노씨는 부검 결과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습니다.

[노봉국/고 이범한 병장 외삼촌 : 원인은 과다 출혈이었죠. 동맥이 파열돼서. 군의관이 그 부분을 지혈만 해주면 살아납니다. 군의관이 됐든, 위생병이 됐든. 위생병이라고 해도 그 정도 상식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카의 사인이 치명적인 장기 손상 등이 아닌 과다 출혈이었고, 간단한 지혈만 했다면 살릴 수 있었다며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노봉국/고 이범한 병장 외삼촌 : 그것도 골든타임이 있는 게 아니겠어요. 시간과의 싸움에서 아무런 초동대처, 아무런 응급대처가 없었기 때문에…. 피를 흘리고 있는 병사를 그 누구하나도, 상부에서도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없었고.]

결국 노씨는 JTBC 뉴스9에 출연해 이같은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노봉국/고 이범한 병장 외삼촌 JTBC 뉴스9 6월 26일 방송본 : 실제 들었던 내용과는 달리 심장이 아니라 날갯죽지에서 쇄골 쪽으로 관통상을 입었습니다. (지금 나오는 저 엑스레이 사진이 고 이범한 상병의 엑스레이 사진입니까?) 네, 맞습니다. 쇄골뼈와 어깨뼈가 으스러지면서 나온 상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지혈만 하면 살릴 수 있었다는 말씀이네요.) 네, 그렇습니다.]

방송이 나간 다음날 군의 초기 응급조치 소홀에 대한 지적이 쏟아졌고,

[GOP 의무병 출신 : 의무병이 있었어도 지혈은 잘 안 됐을 겁니다. 실습 한 번 해보고 어떻게 지혈을 해요.]

[양욱 군사전문가 : GOP와 같이 대한민국의 최전선에 의무병이 없었다고 하는 것, 분대 하나가 없었다고 하는 이런 점은 엄청나게 안타까운 것이며, 실제 교전이 일어났을 때 정말 큰일이 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언론을 기피했던 유가족들이 직접 기자회견을 자청했습니다.

[권선언/유족 대표 : 과다출혈 사망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사건 발생 당시 군 당국의 초동대처를 명확히 밝혀주십시오.]

다른 유가족들도 인터뷰를 통해 울분을 터트렸습니다.

[진유호/진우찬 병장 아버지 : 현장 보존이 잘된 건 자랑으로 알고 있었는데, 우리는 이게 자랑이냐. 병사들이 옆에서 피 흘리고 있으면 전문적인 지식이 없더라도 목이라도 막아주고…. 우리 아들을 딱 보니까, 혼자 외롭게 죽어갔을 생각하니까 너무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군 당국의 초동 구호조치 미흡에서 시작된 유가족들의 분노는 김관진 국방부장관의 왕따 발언으로 이어졌습니다.

[김관진/국방부장관 : 계급이 일ㆍ이등병일 때 주로 그렇게 사고가 나는 편인데, 전역을 3개월 앞둔 병장이 이렇게 사고자가 된 이면에는 여러 요인 중에서 바로 집단따돌림이라는 현상이 군에 존재를 한다…. 과연 그것뿐이냐, 여기에 대해서 더 수사하고 있습니다.]

유족들이 분개한 건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애초 국방부 측은 임 병장이 자살 시도 직전 작성했던 메모를 유족들의 의견에 따라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유족 측이 이를 부인하며 또다시 거짓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노씨는 이날 저녁 다시 JTBC 뉴스9에 출연해 군의 입장을 반박했습니다.

[노봉국/고 이범한 병장 외삼촌 JTBC 뉴스9 26일 방송본 : (유가족들이 반대했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다고 했는데요.) 그런 말이 어떤 경위를,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오게 됐는지는 저희도 조사를 통해서 알아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나 저희 유가족들은 메모지를, 임 병장의 메모 공개를 반대한 적은 전혀 없고 오히려 저희들은 공개를 원했습니다.]

노씨는 희생 장병들이 발견된 당시 상황을 언급해 주위의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노봉국/고 이범한 병장 외삼촌 JTBC 뉴스9 26일 방송본 : 진우찬 상병의 경우에는 주먹을 불끈 쥐고 그 얼마나 불끈 쥐었는지 아빠가 울면서 아들의 손을 잡고 싶어 했었습니다. 그러나 "얼른 가자, 집에 가야지, 네가 여기에 왜 누워 있냐" 이런 말을 하면서 손을 펴려고 했는데 손이 펴지지가 않는 거예요. 얼마나 손을 단단하게 쥐고 있었는지. 김경호 일병은 부상자를 돕기 위해서 어깨동무를 하다가 계단과 어떤 위치에서 넘어졌다든지 이런 형태로 해서 관통상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땅을 움켜쥐면서 어떻게 해서 움직여보고 싶은 그런 마음에서, 손바닥이 정말로 온갖 멍이 들고 손톱이 망가질 정도로 엄청난, 혹독한 장면을 저는 목격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방송이 나간 다음날, 국방부 측은 해당 부대의 초기 응급 구조 부실의혹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김민석/국방부 대변인 : 초기에 부상자 구급을 늦게 했다, 응급조치를 늦게 했다, 그것도 조사대상에 들어갑니다.]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든 총기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05년 경기도 연천 육군 28사단에서 김모 일병의 수류탄 투척과 총기 난사로 장병 8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듬해 2006년 10월엔 경기도 가평에서 이등병이 근무 교대 중 동료에게 총기를 발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특히 3년 전 강화도 해병대 2사단에서 부대원 4명이 숨진 총기 사건의 경우, 이번 임 병장 총기 사건과 유사합니다.

[임종인/변호사 : 강화도 GOP에서 일어난 사건이예요. 해병대 2사단이 맡고 있는데 거기에서는 상병이 쏘아서 4명을 죽이고 1명이 부상당한 사건입니다. 기수 열외입니다. 해병대에서 기수 열외라른 것은 동기 취급을 안해주는 겁니다 해병대는 지원병 제도라서 당연히 기수가 중요합니다.]

이번 총기 사고가 일어난 육군 22사단은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부대라는 오명을 얻어왔습니다.

지난 2012년 10월 이른바 '노크 귀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당시 한 북한군 병사가 북한 철책과 비무장지대를 넘어 우리 측 동부전선 경계망을 뚫고 내려와 귀순한 사건입니다.

북한군 병사는 22사단 생활관까지 아무런 제지 없이 들어와 똑똑 문을 두드리고 귀순 의사를 밝혔다고 해서 '노크 귀순' 사건이라고 불립니다.

2009년 10월엔 한 민간인이 22사단 철책을 자르고 월북했지만, 당시 사단 측은 북한 TV를 보고 해당 사실을 파악해 물의를 빚었습니다.

[조선중앙TV(2009년 10월) : 남조선의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에 살고 있던 강동림 30살, 강동림이 26일 전선 동부 군사분계선을 넘어 공화국 북반구로 의거해 왔습니다.]

[육군 22사단 예비역 : 저희 사단이 산악이랑 해안이랑 동시에 맡기 때문에 제일 험악한데다 인원도 적기 때문에 솔직히 말이 경계근무지, 이거는 뭐 저희가 로봇도 아니고, 터미네이터도 아니고. 저 같은 경우는 영창 가니까 잠은 8시간 푹 잘 수 있으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사고 일주일째인 지난 28일 국군수도병원 연병장.

총격 사건으로 숨진 희생 장병 5명에 대한 영결식이 22사단 장례로 엄수됐습니다.

[탕. 탕.]

떠나는 희생 장병들을 애도하며 발사한 조총이 하늘을 울립니다.

이윽고 유해가 담긴 관이 장의차로 옮겨집니다.

한 구, 한 구 이어지는 운구 행렬에 연병장은 눈물 바다가 됩니다.

차마 손주를 떠나 보내지 못하는 할머니, 눈물이 멈추지 않는 형제들, 아들의 위패를 놓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4성 장군도 울컥합니다.

[권오성/육군참모총장 : 국가 안보 최일선 GOP에서 묵묵히 소임을 완수했던 여러분의 열정과 헌신을 추모합니다. 여러분은 조국의 부름에 응해 그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복무한 멋진 군인입니다. ]

동고동락했던 한 장병이 이름을 부르자, 유가족들은 다시 눈물을 쏟아냅니다.

[이준/중사 : 마지막 작별인사도 하지 못했기에 그저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름을 부르고 싶습니다. 영훈아, 우찬아, 범한아, 대한아, 경호야.]

꼿꼿했던 장관도 결국, 고개를 떨굽니다.

마침내 아들의 유골이 차가운 땅속으로 들어가자,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아들을 목놓아 불러봅니다.

모두를 피해자로 만드는 병영 내 총기 사건, 전문가들은 국방부부터 철저한 진상 규명을 통해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임종인/변호사 : 이번 사고의 경우 사고 현장에 있었던 CCTV의 내용을 다 밝혀야죠. 세월호 사건에 있어서도 다 밝혀야 하듯이 다 밝혀야죠. 군사 보안이란 이유로 군대는 접근을 못하게 해서 이렇게 어처구니가 없는 큰 사건이 계속 발생했다고 보여집니다. 햇빛에 드러나지 않으면 모든 것은 곰팡이가 나게 마련 아닙니까.]

미국에서 세월호 참사를 지켜봤던 노씨는 이번 사건도 다를 바 없다고 말합니다.

[노봉국/고 이범한 병장 외삼촌 : 총성 사인이 너무 간단명료하기 때문에 살릴 수 있는 그것도 골든타임을 놓친 거예요. 정말 세월호와 너무너무 유사해요. 이준석 선장 같은 군 체계에서 있을 수 있던 것이고, 그게 어떤 그 부상자가 발생했다면 (구조해야죠.) 상식이, 상식이 통하지 않았던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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