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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20년만의 뒤늦은 폭로…체육계 '미투'에 답을 던지다

입력 2018-03-26 14:50 수정 2018-03-2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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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20년만의 뒤늦은 폭로…체육계 '미투'에 답을 던지다

기사를 쓰고 있는 순간에도 기자의 전화벨이 계속 울렸습니다. 또 다른 '피해자'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5명째입니다.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들은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20년이 흘렀는데 각인된 고통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태권도장 사범에게 당했던 불쾌했던 기억들이었습니다. 몸무게를 재기 위해 옷을 벗으라 했고, 선수로 대회에 나서기 위해선 가슴이 어느 정도 나왔는지 알아야 한다며 만지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같았습니다. "태권도를 잘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였습니다.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해당 사범을 만나봤습니다. 짓궂은 행동을 하긴 했지만 아이들의 가슴을 만진 적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도를 넘어선 신체 접촉은 일부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모두 아이들을 위한 것, 그러니까 훈육 차원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20년 전의 사범은 현재 대한태권도협회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피해자들은 아이를 둔 30대 주부가 됐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성폭력 피해 사실을 잊지 못하며 고통받고 있습니다.
 


#성폭력을 알기엔 너무 어린 나이에 시작한 운동

피해자 중 한 명인 주부 A씨는 한 때 태권도 국가대표를 꿈꿨습니다. 그러나 태권도는 악몽을 남겼습니다. 사범의 불쾌했던 손길과 느낌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그 것이 성폭력인지 알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거부해야 하는 이유도 몰랐고, 거부할 힘도 없었습니다. A씨의 부모는 사범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당부했고, A씨도 사범처럼 태권도를 잘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습니다.

사범의 손은 훈육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부터 A씨의 고통과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직접 당사자를 찾아가 항의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흘렀고, 사범의 사과를 받아낼 자신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주저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을 줄 알았는데, 20년이 흘러 아이를 둔 주부가 된 뒤에도 그 수치스러움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각계에서 쏟아지는 '미투' 운동에 뒤늦게 용기를 냈습니다. 피해 사실을 주위에 공유하면서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당했던 친구, 그리고 후배들의 폭로도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체육계 '미투', 왜 잠잠한가 했더니…

스포츠는 대개 몸을 움직이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선수와 지도자간 신체 접촉도 빈번합니다. 훈련, 그리고 지도라는 이름으로 몸으로 말하고 몸으로 듣습니다. 그 때문에 스포츠에선 무엇이 훈육인지, 추행인지 경계가 애매할 때가 많습니다. 때론 그 분명치 않은 경계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 어린 아이들은 그 모호함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태권도의 성폭력 피해도 그와 비슷합니다.

더구나 스포츠에선 상하간 권력관계가 뚜렷합니다. 선수와 지도자, 선배와 후배간 명령과 복종, 그리고 서열 문화가 강합니다. 위계가 너무 분명해서 성폭력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도 쉽게 묻혀버리곤 합니다. 성폭력 피해를 폭로할 경우 도리어 역공을 당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상급자의 잘못을 폭로했을 경우 진로가 막혀 버릴 수도 있습니다. 지도자와 선배의 말을 거스르거나 이에 대항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걸어야 할 정도로 어렵습니다. 성폭력을 당한 학생들이 선수 생활에 불이익을 당할까, 혹은 자신으로 인해 동료들이 피해를 볼까 두려워하며 신고하길 꺼리고 있습니다. 모든 게 체육계 권력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태권도 선수를 꿈꿨던 피해자들이 20년이 지나 뒤늦게 용기를 낸 이유를 전하고 싶습니다. 한 피해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습적인 성폭력을 당하고도 그때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외면했기에 또다른 피해자가 나왔던 게 아니냐"고 자책했습니다. 폐쇄적이고 경직된 권력 구조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 어찌보면 그게 체육계 '미투'의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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