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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막말이 폭주하는 시대…'나쁜말 상자'

입력 2015-04-23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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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2부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이준익 감독이 2003년에 내놓은 영화 황산벌의 한 장면입니다. 백제와 신라의 병사들이 맞서기 전에 욕대결을 벌이는데 백제 쪽 병사들이 말 그대로 걸지게 욕을 쏟아붓지요. 물론 상대 병사들은 초토화됩니다.

지금도 볼 때마다 배꼽을 잡을 수밖에 없는, 제가 개인적으로 우리영화 장면 중에 몇 손가락 안에 꼽는 나름의 명장면입니다.

욕하는 걸 보는데 웃음이 난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욕은 해학이고 풍자입니다. 재작년에 작고한 민속학자 김열규 교수는 세상을 떠나기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욕은 백년 체증쯤은 쉽게 내리게 하는 약한 자들의 약이자 칼이다"

그렇게 우리 조상들의 욕은 삶의 고통을 흥으로 풀어냈는데 요즘 욕은 더럽기만 한 쌍소리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다반사가 되어있다는 게 문제겠죠.

그래서일까요? 요즘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교실에 '나쁜 말 버리기 상자'를 갖다 놓았습니다.

사용방법은 이렇습니다. 나쁜말을 하고 싶을 때 상대방에게 내뱉는 대신 종이에 적어 이 나쁜말 상자에 버리는 겁니다. 그러고는 일주일에 한 번 상자를 열어보고 다 같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는군요.

아이들도 이러는데 어른들은 어떨까요? 주워담을 막말들을 상대방의 귓전에 내던져서 낭패를 본 사람들이 요 며칠 사이에도 수두룩 나왔습니다.

"근로자는 사실상 노예다"

밀린 임금 좀 해결해달라며 찾아온 인터넷 설치기사들에게 지역 고용노동청 근로감독관이 되돌려준 막말이었습니다. 논란이 되자 이 사람은 직위해제됐습니다.

"가장 피가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내가 (목을) 쳐줄 것"

한 대학의 이사장도 막말 파문으로 자진사퇴했지요.

초등학생 제자에게 입에 담기도 민망한 욕설을 날린 선생님은 학부모에 의해 결국 고소를 당했습니다.

'실록 막말시대'를 펴낸 원로언론인 정경희 선생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말과 글의 폭력은 몽둥이나 채찍보다 무서운 공포의 흉기다"

온 사회가 분노조절장애에 걸린 듯 막말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몽둥이와 채찍보다 더 무서운 흉기가 허공을 날아다니는 셈이지요. 여기에는 그 어떤 해학도 풍자도 없습니다. 그냥 흉기일 뿐입니다.

다시 나쁜말 상자를 꺼내봅니다. 이른바 막말이 나오려고 할 때 꽁꽁 싸매서 상자에 버린다는 것인데 어떤 말들을 넣어두시겠습니까?

하긴 요즘 나라 사정을 보면 제법 커다란 나쁜말 상자가 필요하긴 하겠지요? 사퇴한 총리, 돈을 둘러싼 추문, 우리들의 세금을 마구 써버린 위정자들. 그런데도 누구하나 사과하지 않는 나라. 그래도 흉기 같은 욕설은 차라리 상자에 넣어두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안 그래도 해학과 풍자가 담긴 패러디들은 넘쳐나니까요.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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