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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의사면허 미스터리…불사신이 된 '하얀 거탑'

입력 2020-10-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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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의사면허 미스터리…불사신이 된 '하얀 거탑'

2년 전 < 뉴스룸 >은 성범죄를 저지르고 진료실로 돌아간 의사들을 추적했습니다. 마취된 환자를 수차례 성폭행한 의사는 여전히 병원에 있었습니다. 동료 의사는 "알고 보면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강력 범죄를 저질러도 의사 면허는 '이상 무'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취재설명서] 의사면허 미스터리…불사신이 된 '하얀 거탑'
한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2011년 세상을 경악케 한 대학병원 의사의 '만삭부인 살인사건'. 만삭의 부인을 목 졸라 숨지게 한 사건입니다. 물론 아이도 숨을 거뒀습니다. 1심과 2심은 징역 20년 선고. 그런데 대법원이 사건을 되돌려 보냈습니다. 증거가 충분치 않단 이유였습니다.

법정 공방은 2년을 넘겼습니다. 의사 백모 씨는 "아내 혼자 욕조에 넘어져 질식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드물지만 그런 사례가 있긴 했습니다. 백 씨 측은 캐나다의 유명 법의학자를 증인으로 불렀습니다. 국과수 법의학자들과 세기의 대결이 펼쳐졌습니다.

 
[취재설명서] 의사면허 미스터리…불사신이 된 '하얀 거탑'

하지만 고등법원은 다시 징역 20년을 선고했고, 대법원은 확정했습니다. 백 씨 손톱엔 아내의 피부 조직이 남았고, 팔에는 긁힌 상처가 있었습니다. 아내의 몸 곳곳에도 상처가 있었습니다. 부부싸움 중 목을 졸랐다고 본 겁니다. 게임과 판타지 소설에 빠져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시험을 등한시하던 남편. 자신을 질책한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하고, 유유히 도서관으로 갔습니다. 출근하지 않은 딸을 찾는 장모님의 연락을 받고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갑니다. 119에 신고합니다. 출동한 경찰에겐 "아내 스스로 넘어져 죽은 것 같다"고 말합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구체적으로 설명까지 합니다. 아이까지 잃었지만 너무나 태연했습니다. 장례식장서도 판타지 소설 삼매경에 빠져 보는 이들이 경악했단 소문도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사건은 잊혀졌습니다.

 
[취재설명서] 의사면허 미스터리…불사신이 된 '하얀 거탑'

법적으로 백 씨 면허는 유효해야 했습니다. 의사는 의료와 관련된 법을 어겨 금고형 이상을 받아야만 면허가 취소됩니다. 국회 강병원 의원실을 통해 보건복지부에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대답이 없었습니다.

독촉하고 채근하자 "면허 취소자 중 백ㅇㅇ란 이름은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백 씨는 출소 후 곧바로 병원으로 갈 수 있습니다.

 
[취재설명서] 의사면허 미스터리…불사신이 된 '하얀 거탑'

한 가지 사건이 더 떠올랐습니다. 유명 강남 산부인과 의사의 내연녀 시신유기 사건입니다. 2012년 7월, 의사 김모 씨는 한밤중에 내연녀를 병원 진료실에서 만납니다. 미다졸람 등 13가지 약물을 섞어 주사하고 성관계를 한 걸로 조사됐습니다. 그러던 중 여성이 숨졌습니다. 약물 중엔 전신마취제인 '베카론'도 있었다고 합니다. 마취과 의사도 조심스럽게 다루는 약물입니다. 김 씨는 숨진 여성을 휠체어에 태우고 병원을 나옵니다. 여성이 타고 온 차에 시신을 싣고, 한강공원에 버렸습니다. 법원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습니다.

 
[취재설명서] 의사면허 미스터리…불사신이 된 '하얀 거탑'

김 씨는 면허가 취소됐습니다. 의료 관련인 마약류 관리법을 어겼으니까요. 김 씨는 출소 후 보건복지부에 의사 면허를 다시 달라고 신청했습니다. 2017년 이었습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통계를 먼저 봤습니다. 지난 10년간 의사가 취소된 면허를 다시 달라고 신청하면 정부가 거의 다 재발급해줬습니다. 재발급률이 97%에 이릅니다. 음주운전을 해도 다시 시험을 봐야 하는데, 반성문 등 서류 몇 가지를 내면 됩니다. 재발급 심사의 기준은 '개전의 정'입니다.

저도 보건복지부 행정처분심사위원회가 재교부를 거부했을 줄 알았습니다. 그게 아니었습니다. 재교부는 올해 3월에야 최종 거부됐습니다. 2년 넘게 끌며 보류한 겁니다. 최종 거부 이유는 '사회적 분위기'였습니다. 마땅한 사유가 없던 겁니다.

김 씨는 억울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 7월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습니다. 정부와 의사는 면허를 두고 법정에서 많이 다툽니다. 통계를 보니 정부가 질 때가 많았습니다. 김 씨의 경우도 승소 가능성이 높단 얘깁니다. 면허 재교부를 하지 말라고 할 법적 근거가 딱히 없기 때문입니다.

 
[취재설명서] 의사면허 미스터리…불사신이 된 '하얀 거탑'

이쯤 되면 '취소'가 아니라 '일시정지'라고 해야 할 겁니다. 변호사, 세무사 등 다른 전문직은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금고 이상이면 면허가 취소됩니다. 유독 의사만 살인, 강도를 저질러도 면허에 문제가 없습니다. 2000년에 국회가 의료법을 바꿔줬기 때문입니다. 의사 백 씨의 경우도 99년에 범죄를 저질렀다면 면허가 취소됐을 겁니다. 취소 유형도 몇 개 안 됩니다. '면허 대여, 리베이트 수수, 마약류 위반' 등 서너 가지뿐입니다. 강력범죄라 보긴 어렵죠.

이를 무슨 면허라고 해야 할까. '방탄 면허', '아메바 면허', '좀비 면허', '불사조 면허', '강철 면허'. 고민 끝에 '불사조'란 이름을 붙이기로 했습니다. 포켓몬스터에서 가장 강한 카드가 '불사조'라고 아이가 말했던 게 생각났습니다. 하얀 거탑의 불사신들은 20년간 이런 특혜를 누려왔습니다. 국회가 뒤늦게 바꾸려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의료법 개정안이 나왔습니다. 2000년에 보건복지위 15명 위원 중 5명이 의사였습니다. 현재는 1명뿐이라고 합니다. 과연 이번 국회에선 바꿀 수 있을까요? 우리에겐 누구나 안심하고 병원에 갈 권리가 있습니다. 극소수 일탈 의사들이 문제입니다. 지금도 코로나19 방역 최전선에서 고생하시는 의사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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