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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무인도서관…텅 빈 서가, 뻥 뚫린 양심

입력 2016-09-05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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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시민들이 책을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한 '무인 도서관'이 서울시내 곳곳에 마련돼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이용객들이 쓸만한 책을 모조리 가져가는 통에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다고 하는데요. 밀착카메라가 살펴봤습니다.

안지현 기자입니다.

[기자]

이곳은 지하철 교대역 내에 있는 도서관입니다. 시민들이 기부한 도서로 운영되는 곳인데요. 우체통에 도서를 기부하게 되면, 바로 옆에 놓인 공중전화부스 책장에 책이 놓이게 됩니다.

자세히 보시면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문학과 비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 놓여 있는데요. 그런데 워낙 책 분실이 많다보니까 관리자가 없을 때는 보시는 것처럼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사실상 무인도서관이 아니라 유인도서관이 된 건데, 어쩔 수 없다는 게 운영기관 측의 설명입니다.

[심광일/교대역 무인도서관 관리자 : 근무자가 없으면 분실량이 상당하죠. 그래서 잠그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국방정환재단이 2년 전 설치한 이곳의 운영시간은 점차 줄어, 지금은 오전 9시부터 3시간만 문을 엽니다.

잠글 수 없는 어린이 서가 쪽에는 계속 책이 분실돼, 책장 한쪽이 텅 비어있습니다.

다른 지하철 무인도서관의 사정도 비슷해, 한때 13곳이었던 역내 도서관은 이제 절반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결국 남은 무인도서관은 종교단체나 외부 재단이 운영해 그나마 계속 책을 댈 수 있는 곳뿐입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도서관도 분실 때문에 위기에 처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엔 서울 석촌호수 옆에 마련된 무인도서관입니다. 이곳은 송파구청에서 기부된 도서로 운영하는 곳인데요. 규모가 크지 않은데 자세히 보시면 굉장히 낡은 도서들이 많이 보입니다. '컬러학습대백과'라는 제목의 책도 있는데요. 안에 살펴보니 굉장히 오래된 사진들이 보이고, 발간연도가 무려 1977년입니다.

새 책은 갖다놓는 대로 사라지고, 오래된 책만 남은 겁니다.

당연히 이런 책으로 시민의 발길을 잡기에는 무리입니다.

[백명호/서울 금호동 : 책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같고요. 요즘 사람들한테 구미가 당기는 그런 책은 없는 것 같아요.]

성동구청에서 운영하는 무인도서관에도 역시 남아있는 책은 온통 어린이 책뿐입니다.

최근에는 그나마 성과를 내고 있는 무인도서관도 있습니다.

이 열차는 파주와 양평을 잇는 경의중앙선입니다. 특히 제가 이번에 탄 열차는 하루에 단 세 번만 운행하는 '독서바람 열차'인데요. 말 그대로 열차 안에서 독서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열차 한쪽에 보시면 이렇게 서가가 마련돼 있는데요. 종이책뿐만 아니라 옆에 보시면 전자서적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시민들의 반응은 좋습니다.

[김학범/경기도 양평 : 저녁에 퇴근할 때 차에서 이렇게 졸지 않고 책이라도 보고 그러니깐 좋죠.]

한 달에 한 번 열차 내에서 북콘서트도 열립니다.

이곳은 코레일과 함께 파주시청,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열차도서관의 책 분실률이 높지 않은 건, 책꽂이가 열차 안에 설치된 데다가, 관리자도 세 번에 한번 꼴로 열차에 탑승하기 때문입니다.

[백송희/파주시청 교육지원과 주무관 : 분실이 우려가 됐었는데, 생각보다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책을 가져다주시는 것도 있고 해서 예상했던 것보다 (분실이) 많지는 않아요.]

오히려 돈을 내고 물건을 사야 하는 무인판매대의 경우에는 '양심 거래'가 잘 이뤄지는 편입니다.

서울 홍제동에 있는 한 무인 빵 판매대 앞을 관찰카메라로 살펴봤습니다.

3시간여 촬영시간 동안 돈을 내지 않고 간 손님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상미/무인빵 판매대 주인 : 각박한 사회 속에서 하나의 서로 흐뭇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주인이 없는 책은 슬쩍해도 된다는 무인도서관에서의 느슨한 시민의식과는 대비되는 장면입니다.

지켜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통 안에는 빵값이 모두 들어와 있었습니다. 이런 양심이 모이지 않으면 무인도서관은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확인하는 텅 빈 도서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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