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취재설명서] 조폭과는 다른 범죄집단 '팀 박사'?…N번방 재판 '범죄집단' 요건 따져보니

입력 2020-08-15 12:03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취재설명서] 조폭과는 다른 범죄집단 '팀 박사'?…N번방 재판 '범죄집단' 요건 따져보니

지난 6월 22일, 서울중앙지검은 텔레그램 박사방의 운영자 '박사' 조주빈과 '부따' 강훈 등 8명을 범죄집단 조직·가입·활동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이른바 '박사방 조직', 즉 범죄집단으로 인정되면 가담자들이 받을 수 있는 형은 더 무거워집니다. 법정에선 어떤 공방이 오가고 있을까요? '범죄조직'하면 쉽게 떠오르는 게 조직폭력배죠. 그래서인지 재판 초기에 피고인들은 혐의를 부인하며 박사방을 '조폭'으로 볼 만한 내부 구조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대법원 판례상 범죄단체가 되려면 4가지 요구가 있어야 합니다. 대법원은 ①범죄 실행의 목적이 있어야 하고, ②다수 자연인의 결합체여야 하고, ③범죄 목적하에 다수자가 동일 장소에 집합하거나 조직 형태를 이뤄야 하고, ④수괴-간부-가입자를 구분할 수 있는 결합체가 되어야 범죄단체가 된다는 취지로 설시했습니다" (7월 14일 '부따' 강훈 2차 공판, 강훈 변호인 변론)

범죄단체에 대한 우리 판례가 '조폭'에 집중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변호인이 간과한 건 검찰이 '조폭'을 다루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이하 '폭처법')에 따라 이들을 기소한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형법에도 범죄단체를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있거든요. 둘은 뭐가 다를까요?

◇범죄단체? 범죄집단?

우선 앞서 인용한 변호인 주장대로 폭처법상 범죄단체는 구성원들이 수괴와 간부, 가입자로 구분돼야 합니다. 구성원들 간 관계도 형이나 아우 등으로 뭉쳐져 통솔이 이루어지는 특징도 있죠.

형법상 범죄단체 또는 범죄집단은 보이스피싱 조직을 생각하시면 쉽습니다. '조폭'에 비해 의사결정 구조가 수평적이고 내부규율도 강제력이 약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구성원들에게 규율을 요구하고 지키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는 정도이지, '조폭'처럼 폭력을 수단으로 삼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지난 2013년 형법이 개정되면서, '범죄단체' 뿐 아니라 '범죄집단'이 추가돼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당시 법이 개정된 이유를 살펴보면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범죄단체에는 이르지 못하였으나 그 위험성이 큰 범죄집단을 조직한 경우에 대한 처벌이 미비해 이를 처벌하도록 함.'

검찰은 '박사방 조직'을 '범죄집단'으로 보고 재판에 넘겼습니다.

①사형, 무기 또는 장기 4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를 공동의 목적으로 하면서 ②여러 사람의 결합체이고 ③조직 내에 일정한 구조가 있지만, '범죄단체' 보다는 통솔 체계가 느슨한 특성을 가지는 거죠.
 
[취재설명서] 조폭과는 다른 범죄집단 '팀 박사'?…N번방 재판 '범죄집단' 요건 따져보니 형법 114조 조문 (캡쳐)

◇'팀 박사'

검찰은 박사방이 조주빈을 중심으로 38명의 조직원이 모인 범죄집단이라고 봤습니다. 핵심 조직원은 '박사' 조주빈, '부따' 강훈, '김승민' 한 모 씨, '랄로' 천 모 씨, '도널드푸틴' 강 모 씨, '태평양' 이 모군, '오뎅' 장 모 씨, '블루99' 임 모 씨, 이렇게 8명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또 피해자를 물색하고 유인하는 역할,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하는 역할, 수익금을 인출하는 역할 등으로 역할 분담을 했다고 봤습니다. '부따' 강훈이 검거된 뒤에는 '태평양' 이 모군을 가입 시켜 대체하는 등 이들의 분업 체계가 이미 확립돼 있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입니다. 또 단순한 음란물 공유를 넘어 이익 배분 시스템을 만들어 홍보하고, '박사 절대적 지지' '적대 그룹방 활동 금지' 등 각종 규율을 만든 것도 특징적입니다.

 
[취재설명서] 조폭과는 다른 범죄집단 '팀 박사'?…N번방 재판 '범죄집단' 요건 따져보니 출처: 서울중앙지검 보도자료 (200622) ``박사방 조직`, 범죄단체조직죄 등으로 기소`


하지만 조주빈은 물론 나머지 피고인들은 모두 범죄집단 조직·가입·활동 혐의는 부인하는 상황입니다. "조직이 있는지 몰랐다" "서로 협동했다기보다 조주빈 개인에게 지시받았을 뿐이다" 이런 주장을 해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법정에서는 '박사방 조직' 내 구조와 역할분담이 실제로 어땠는지에 관한 질문과 답이 오가고 있는데요.

"수사 표적이 되기 어려운 조직이다, 우리가 '팀 박사'인데 본사는 중국에 있다, 저에게 위력적인 부분을 과시하는 얘기를 (조주빈이) 했었습니다."
"(박사의 지시는) 거의 거절을 못 했던 것 같습니다"  (7월 14일 '부따' 강훈 2차 공판, '도널드푸틴' 강 모 씨 증언)

"조주빈이 부따(강훈)를 자신의 '오른팔'로 표현하는 채널 게시물이나 박사방 게시물을 본 적이 있습니다" (7월 14일 '부따' 강훈 2차 공판, '미희' 손 모 씨 증언)

"'삐라'라고 하는 이미지 파일을 부따에게 인증 시 점수 부여라는 문구가 있었기 때문에 부따가 (방을) 관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7월 14일 '부따' 강훈 2차 공판, '랄로' 천 모 씨 증언)

반면 변호인은 이런 질문을 주로 던집니다.

(변호인: 박사방 사람들이나 시민의회 방 사람들이 피해자들 성 착취 영상을 어떻게 만들자고 제안한 적이 있나요?) "없습니다"
(변호인: 시민의회 방 사람들이 서로 각각 어떤 역할 하는지 서로 아나요?)
"모릅니다"
(7월 14일 '부따' 강훈 2차 공판, '랄로' 천 모 씨 증언)

지난 13일에도 조주빈을 비롯한 핵심조직원 5명의 범죄집단 조직·가입·활동 혐의에 대한 첫 공판이 있었습니다. 피고인 조주빈이 이날은 증인석에 앉아 양측의 질문을 받았는데, 피해자 이름 등이 나올 수 있어 재판은 비공개로 진행됐습니다. 검찰은 '박사방' 등 텔레그램에 접속한 사람들이 이 핵심 구성원들을 어떻게 인지했는지, 또 이들이 서로의 역할을 어떻게 나눴는지 등을 토대로 '범죄집단'의 얼개를 밝혀나가려는 듯합니다.

반면 조주빈의 주장은 다릅니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마치 '박사방 조직'이 있는 것처럼 굴었단 논리입니다. 그의 공범들도 조주빈에게 1:1로 지시를 받았을 뿐이지 '서로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은 못 했다'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죠. '박사방' 가담자들은 텔레그램 방에서 제2의 인격으로 관계를 맺다 보니, 법정에서 증인과 피고인 등으로 재회하면 서로의 실명 대신 '닉네임'을 들어야 그 존재를 기억하기도 합니다. 온라인에서 시작돼 오프라인까지 각종 범행을 이어간 새로운 형태의 성착취 조직이었던 거죠. 그만큼 이들이 '팀 박사' 뒤에 숨어 만들고 유포한 성착취물은 피해자 74명에게 조직적인 가해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들의 '팀 박사'가 법리적으로는 어떤 판단을 받게 될지, 지켜볼 일입니다.

관련기사

청소년 유인해 '성착취물 1293개'…배준환 신상 공개 성착취물 제작·협박 혐의…조주빈 공범 '29세 남경읍'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