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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권 비판 불편?…창작지원 '정치검열' 의혹

입력 2015-09-10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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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번에는 문화계에 미치고 있는 정치검열, 탐사플러스에서 단독 보도로 전해드리겠습니다. 정부가 매년 수백억원을 들여서 순수예술창작을 지원하고 있는데, 주관기관인 문화예술위원회가 지원자에게 작품을 포기할 것을 종용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정치적이유였습니다.

강신후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연극 작품에 최대 2억 6000만 원까지 지원하는 '창작산실'. 이를 주관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문화예술위원회는 5명의 심사위원들을 통해 지난 4월, 8개의 작품을 선정했습니다.

그런데 선정자 가운데 연출자 박근형 씨가 돌연 제작을 포기했습니다.

박 씨는 2010년 대한민국 연극대상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쟁쟁한 작품으로 주목받아왔습니다.

그런데 박 씨의 포기가 짜여진 각본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심사위원들이 박근형 씨를 포함해 8명을 선정했는데, 문예위에서 박 씨를 빼달라고 했다는 겁니다.

[창작산실 심사위원 : 문제는 세 작품이 문제인데 박근형만 빼주면 나머지는 봐주겠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심사위원 전원이 그건 말도 안 되고, 우린 그렇게 할 수 없다….]

문예위가 문제 삼은 건 박 씨가 2년 전 연출한 작품 '개구리'.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극 중 인물 풍랑이 한 대사입니다.

대사에서 '수첩공주'는 대통령을 '시험 컨닝'은 국정원 대선개입을 빗대며 현 정권을 비판한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국립극단이 기획한 작품이어서 논란이 더 커졌습니다.

[김기란/연극평론가 : 굉장히 날 것 그대로 드러난 작품이 '개구리'였다고 생각하고요. 그 외 다른 작품들은 그렇지는(정치적이지) 않습니다.]

심사위원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문예위 직원들이 박 씨를 직접 찾아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근형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 저보고 사실은 먼저… 제가 자진해서 그만두면 안 되겠냐고.]

해당 직원들은 박 씨를 만난 건 인정했지만 포기를 강요한 것이 아니라 심사위원의 의사를 전달했을 뿐이라고 밝혔습니다.

심사위원들이 박 씨를 탈락시키고 싶었지만 연극계 주요 인사인 박 씨의 작품을 배제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과연 어느 쪽 말이 진실일까요.

창작산실 당선작 발표가 두 달 가까이 지연되자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지난 6월 18일 오전 10시 이곳 예술가의 집으로 심사위원 전원을 소집합니다. 문예위 직원 2명도 배석했습니다.

취재진은 당시 직원들과 심사위원들이 주고받은 녹취파일을 입수했습니다.

이 USB에 바로 당시 오고간 대화가 담겨져 있습니다. 한번 들어보시죠.

[심사위원 A : 어쨌든 그(박근형) 작품을 뽑았단 말입니다. 근데 이제 어떤 이유로 우리가 안 뽑는 걸로 한다. 저는 그게 제일 견딜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문예위 직원 A : 박근형 연출가의 개구리라는 연극. 그 작품이 포함된 발표를 할 수가 없는 것이죠.]

박 씨의 예전 작품을 문제 삼자 심사위원들의 한탄은 계속됩니다.

[심사위원 B : 우리는 그러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심사위원 C : 그러니깐 5공화국도 아닌데 우리가….]

[직원 A : 5공화국 때나 유신 때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문예위 직원도 정치적인 이유라고 인정합니다.

[직원 B : 정치적인 이유일 것이다 하는 것은 다 알고 있을 거예요.]

박 씨가 탈락되지 않으면 다른 당선작들도 지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직원 A : 제가 아는 위원회의 생각은 계속 (다른 작품도 지원 못 받고) 11월 달까지 갈 겁니다.]

결국 심사위원을 설득하지 못한 문예위 직원들이 박 씨를 만난 셈입니다.

박 씨는 문예위 직원들이 윗선이 있다고 털어놨다고 말합니다.

[박근형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 청와대에서 하는 거예요. 그 직원들이 저한테 다 이야기했어요. 저는 그 사람들이 불쌍해요. 공무원들. 문화예술 공무원들]

비단 연극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심사위원/문예위 지원사업 : 문화관광부 그리고 내부적으로 그 위에서부터 이미 기본적인 어떤 것들이 전해져 내려온대요. 그런 일들이 지금 연극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더라고요.]

우리 근대사에서 부끄러운 유산으로 남은 사전검열, 그 그림자가 다시 문화계에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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