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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토하고 가신 아버지…일본에 좋은 것만 쓰면 그게 역사인가"

입력 2022-01-06 20:35 수정 2022-01-06 22:23

사도광산 징용 피해자 가족들 만나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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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 징용 피해자 가족들 만나보니

[앵커]

군함도처럼 일본의 강제징용이 있었던 사도광산 얘기입니다.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리려 하면서 강제징용 역산 감추려 해서 논란인데요.

사도광산에 끌려가 일했던 피해자들의 가족을 안의근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미쓰비시 사도광산에서 1942년 태어난 김광선씨.

징용 간 아버지와 뒤따라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돌도 안 돼 갓난아기 때 아버지의 고향인 충남 논산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사도광산에서 일한 아버지는 계속 후유증을 앓았습니다.

[김광선/사도광산 징용 피해자 아들 : (아버님이) 돌아가실 적에는 폐에 돌가루가 꽉 찼다는 거예요. 돈 몇 푼 가지고 나온 거 다 약값으로 들어갔다고 해요.]

김씨는 아버지가 사도광산에서 발급받은 보험 수첩을 아직도 갖고 있습니다.

니가타현 사도광산과 이를 운영한 미쓰비시광업 주식회사, 금을 캤던 채광부란 아버지 직책까지 선명히 적혀있습니다.

그는 조선인의 강제징용 역사는 빼고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리려는 일본의 행태에 일침을 가했습니다.

[김광선/사도광산 징용 피해자 아들 : (조선인 징용 역사를) 빼면 안 되죠. 역사는 역사대로 정확하게 기록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일본에) 좋은 것만 한다면 그건 역사가 아니죠.]

함께 사도광산에 징용 갔다 온 아버지를 일찍 여읜 홍경일씨는 아버지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홍경일/사도광산 징용 피해자 아들 : 돌가루는 들어가면 폐에서 안 빠진다고 하더라고요. 석탄은 기침하면 꺼먼 게 나오는데. 이발하러 가셨다가 거기서 피를 토하시고 돌아가셨어요.]

갱내 작업을 하는 광부는 진폐증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일제는 이 인력을 대부분 일본인에서 조선인으로 대체했습니다.

사도광산에 다녀온 조선인 징용자는 최소 1140명에 달합니다.

미쓰비시에서 급여를 받아야 할 사람을 기록한 '공탁금 명부'에 포함돼 있는 조선인의 숫자입니다.

하지만 실제 징용을 간 조선인은 더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혜경/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 : (미쓰비시에서) 조선총독부에 돈을 냈어요. 두당 100엔씩. 회사가 돈을 먼저 내고 월급에서 (뱃삯·곡괭이값까지) 공제하는 거예요. 최소 1년 동안은 무급인 거예요.]

처음에 떠안은 빚을 갚지 못한 조선인 징용자는 이 공탁금 명부에서도 빠져있다는 겁니다.

(화면제공 :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 자료제공 :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VJ : 남동근 / 영상디자인 : 조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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