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이희호 여사는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생소하던 시절부터 여성의 권리를 찾기 위한 운동을 해왔습니다.
1세대 여성운동가로서 평생을 노력해온 '페미니스트 이희호'의 삶을 조익신 기자가 정리해드립니다.
[기자]
"나는 페미니스트였다."
여성과 남성이 인격적으로 동등한 사회, 이희호 여사가 평생 꿈꾼 세상입니다.
이 여사는 일제시대에 태어났지만 사회 의식은 누구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여성이라며 한국전쟁 때 여성단체를 조직했습니다.
전쟁 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본격적인 여성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고 이희호/여사 (2015년 7월) : YWCA 연합회 총무로 혼인신고를 합시다는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가족법 개정 등 여성 인권운동을 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결혼하고 나서는 정치로 발을 넓혔습니다.
1971년 대선 때는 여성들의 주권 행사를 촉구하는 찬조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여사의 신념은 자연스럽게 김 전 대통령에게 스며들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게 된 것은 아내 덕분"이라며 "인류의 나머지 반쪽을 찾았다"는 고백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 여사의 오랜 꿈은 김대중 정부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여성부가 만들어지고, 헌정 사상 첫 여성 총리가 탄생했습니다.
'내조자'에 불과했던 영부인의 전형도 허물었습니다.
단독으로 5차례 해외 순방에 나섰습니다.
유엔 아동특별총회에 의장국으로 참석해 회의를 주재하고 기조연설도 했습니다.
괄목할 만한 여권 신장을 이뤄냈지만, 이 여사의 눈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고 이희호/여사 (2015년 7월) :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지만 유리천장과 같은 제약이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평등을 위해 노력하신 선배들의 노고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더 단호하고 당당하게"
이 땅의 여성들에게 남긴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