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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뉴스] 허위 자백 논쟁? 심재철-이해찬, 38년전의 '순서'

입력 2018-10-09 22:11 수정 2018-10-09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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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9일)의 비하인드 뉴스 시작하겠습니다. 박성태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열죠.
 

[기자]

첫 키워드는 < 38년 전의 '순서' > 로 잡았습니다.

[앵커]

38년 전, 1980년?

[기자]

그렇습니다. 오늘 자유한국당의 심재철 의원이 보도자료 하나를 냈는데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악의적인 보도에 대해서 법적 대응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심재철 의원이 문제 삼은 보도는 한겨레의 이틀 전 보도입니다.

당시 제목은 "이해찬이 심재철 사태 언급 꺼리는 이유" 이렇게 돼 있는데요.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이른바 심재철 문건 의혹에 대해서 별다른 언급을 안 하는 것은 아예 입에 올리기조차 꺼리기 때문이다", "심재철 의원 관련된 문제를 꺼리기 때문이다"라고 밝혔고요.

당시 보도 내용을 보면 1980년 당시 신군부에 이해찬 대표, 심재철 의원 등이 체포됐었는데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신군부가 조작했을 때인데요.

당시 심재철 의원이 거짓자백을 하면서 이 신군부의 조작이 완성됐기 때문에 심재철 의원 얘기를 꺼내기를 이해찬 대표가 싫어한다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심재철 의원은 이 보도가 '악의적이다'라면서 법적 대응하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앵커]

근거는 뭔가요?

[기자]

심재철 의원은 보도자료에 당시 검찰의 증거 목록 등을 들어서 본인뿐만 아니라 당시에 기소됐던 15명이 다 거짓 자백을 했다라고 얘기를 했고요.

그다음에 여러 진술의 근거가 되는 것이 94년에 심재철 의원이 썼다는 하나의 진술서입니다.

2005년에 보도된 바도 있는데, 당시 이제 94년에 1980년을 회상하면서 폭력에 무너지는 자신을 보고 상당히 부끄럽게 느꼈다라는 심재철 의원의 진술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역시 당시에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관련해서 고문에 못 이겨 허위 자백을 했다라는 그런 맥락이었는데요.

심재철 의원은 그 맥락이 아니고 그냥 폭력을 못 이기는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반박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실 고문에 못 이긴 것도 자신보다 이해찬 의원이 먼저였다", 당시 대표가 먼저였다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먼저 자백을 했다?

[기자]

날짜도 했는데 이건 검증할 수 없지만 1980년 6월 26일날 이해찬 대표가 자백을 했고 본인은 30일날 구속됐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구속과 체포는 다른 얘기여서 제가 확인하려고 심재철 의원에게 몇 번 통화하려고 했는데 통화 연결 상태가 고르지 못해서 답은 듣지 못했습니다.

[앵커]

그런가요? 이해찬 대표가 다시 반박할 수도 있는 내용입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제가 이해찬 대표 측으로부터도 얘기를 들었는데.

당시 신군부가 그 사건을 조작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서 여러 가지 고문이 언제 있었냐, 이런 것들을 빼더라도 나중에 당시에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피고인들이 모두 법정에서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이었다라고 진술을 했는데 심재철 의원만 그 사실이 맞다라고 인정해서 신군부가 해당사건을 조작할 수 있었다"라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앵커]

심재철 의원이 부끄러웠다고 말한 진술서는 2005년에 보도된 바도 있다면서요.

[기자]

2005년에 당시 한겨레신문이 보도를 했는데요.

그러니까 이 진술서는 94년에 써서 제출했던 진술서가 2005년에 보도가 됐는데.

[앵커]

그런가요?

[기자]

당시 보도에서도 심재철 의원이 고문에 못 이겨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관해서 허위 자백을 했고 이 부분이 부끄럽다라고 보도가 됐는데 나중에 심재철 의원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반박하지 않고 그 진술서의 유출 경위만 문제 삼은 바가 있습니다.

[앵커]

38년 전 일이니까 얘기가 좀 복잡하기는 합니다.

[기자]

오래전 얘기여서 또 여러 번 시대가 나와서 좀 복잡하기는 합니다.

[앵커]

두 번째 키워드는요?

[기자]

두 번째 키워드는 < 바른미래당 '바미했다'? >로 잡았습니다.

[앵커]

이것은 뭡니까?

[기자]

어제 바른미래당이.

[기자]

'바미했다'가 무슨 동사가 되는 것인가요?

[기자]

동사로…일단 술어로 보입니다.

형용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좀 더 검토를 해 봐야 될 것 같고요.

[앵커]

어렵게 시작합니다. 알았습니다.

[기자]

어제 바른미래당이 판문점 선언 비준 문제를 두고 의총을 열었는데 원래 지도부가 생각한 결론, 즉 바른미래당은 비준 동의를 하자는 것은 결론을 못 냈습니다.

비준 동의는, 판문점 선언은 지지하지만 국회가 비준동의할 권한이 없으니 청와대가 그건 알아서 해라 이런 결론을 냈는데요.

이에 대해서 한 언론에서 바른미래당 출입기자가 바른미래당은 결국 바미했다라는 술어로 이를 표현한 바가 있습니다.

[앵커]

바미했다 그러면 무슨 뜻입니까?

[기자]

물론 이제 바른미래당의 이름을 따서 바미했다라고 했는데, 물론 사전에는 없는 말입니다.

해당 기자는 표현하기를 몇 시간씩 논의하면서도 결론을 못 낼 때가 많고 또 애매할 때가 많아서 과거 바른미래당 출입기자들끼리 이런 상황을 바미했다라고 얘기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앵커]

일종의 은어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물론 표준어는 아니고요.

그래서 바른미래당을 오래 출입한 JTBC의 류정화 기자에게 실제 바른미래당 출입기자들은 그런 얘기를 하냐라고 묻고 뜻의 정리를 부탁했는데 '바미했다'를 출입기자들끼리 '기대와 달리 명확한 결론이 없다', 또는 '상황이나 결과가 애매해서 무언가 할 일이 남았다'라는 상황에서 '바미했다'라는 말을 종종 썼다고 합니다.

[앵커]

주관적인 표현이기는 하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바른미래당에서는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어서 제가 입장을 물어봤는데 바른미래당이 의원 수가 아무래도 여야, 야의 일당보다는 숫자가 적기 때문에 몇몇 의원만 이견을 나타내도 이게 부각돼서 마치 애매한 것으로 보이기가 십상이다라고 얘기를 했고요.

[앵커]

바른미래당은 여기에 전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어떤 정황 같은 것은 좀 얘기를 했는데요.

"3당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1, 2당으로 의원들이 이탈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지도부가 결론을 내는 데 조심스러운 측면도 있다", "그러다 보니 조금 애매한 상황, 출입기자들이 바미한 상황들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얘기했고요.

다만 "민주당도 결론을 못 낼 때가 많은데 그러면 민주당은 '민주한 것'이냐"라고 반문했습니다.

[앵커]

알았습니다. 유행어처럼 되겠습니다, 잘못하면. 민주했다, 한국했다 이런 것도 나옵니까?

[기자]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당 출입기자들끼리 한국했다라는 표현은 쓰지 않고요.

보통 의원 이름을 빗대서 비슷한 표현을 쓰고는 했습니다.

[앵커]

그것은 무엇인지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세 번째 키워드를 볼까요?

[기자]

세 번째 키워드는 < 굿모닝! K팝스 > 로 잡았습니다.

[앵커]

아주 옛날이지만 '굿모닝팝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죠.

[기자]

그렇습니다.

[앵커]

요즘도 있나요? 잘 모르겠지만.

[기자]

지금도 하고는 있습니다.

[앵커]

그런가요?

[기자]

1988년에 처음 시작한 라디오 프로그램인데요.

잠깐 사진과 음악을 좀 보면.

지금 해당 오성식 씨가 진행할 때 좀 인기가 많았고요.

[앵커]

요즘도 하는군요.

[기자]

저건 50주년 기념으로, KBS 라디오 50주년 기념으로 했던 것이고, 여러 진행자가 있었습니다.

80~90년대 팝송도 듣고 영어도 배우는 프로그램이었고 또 몇몇에게는 영어를 배운다고 팝송을 들을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음악이 종종 언어의 전도사가 됐는데 지금 한류스타, 특히 방탄소년단이 한글의 전도사가 되고 있습니다.

[앵커]

그런가요. 그렇겠죠, 당연히.

[기자]

그렇습니다. 한 외국팬이 한글날을 맞아서 소셜미디어에 한글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올렸는데요.

일단은 가사를 따라 적는 것이 기본입니다. Trivia Seesaw라는 방탄소년단의 노래인데요.

앞의 All right은 원래 영어로 All right으로 돼 있었고요.

그 다음에 본인은 한글을 모르지만 저렇게 가사를 한글로 따라 쓰면서 배우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한 인도네시아 팬은 "나는 한글 공부를 하고 있다"라면서 자신의 공부하는 노트를 저렇게 갖다 올리기도 했는데.

잠깐 일부만 보면 "나는 너무 행복해요, 오빠. 진짜, 하하." 이렇게 돼 있고요.

"BTS가 포기하지 말라고 가르쳐줬지 때문에" 이렇게 돼 있습니다.

[앵커]

조금 맞춤법이 틀리기는 합니다마는 무슨 뜻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기자]

너와 오빠를 혼용하기도 해서 외국인인 것은 분명한 것 같고요.

저희가 소셜미디어 계정으로 들어가봤는데 인도네시아 사람이 맞았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오늘 한글날이고 해서 이런 글들이 많이 올라온 것일까요?

[기자]

그렇습니다. 해시태그로 한글날이라고 붙여서 방탄소년단의 해외 팬들이 이런 많은 글을 보냈는데.

한 해외 팬은 저렇게 노트에 한글을 아주 자세히 공부하는 것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앵커]

대단하네요.

[기자]

'커피 좋아해요'라고 영어 발음기호로 '커피 좋아해요' 이런 것까지 써가면서 상당히 성실하게 한글을 공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싸이 이후에 한류가수들의 해외 진출이 많아지고 특히 방탄소년단 덕분에 한글의 붐이 많이 늘었는데요.

한국어능력시험이라는 토픽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토픽 응시자 수가 올해는 30만 명이 넘을 것으로 보이고 해마다 꾸준히 크게 늘고 있는데 한류 열풍, 특히 방탄소년단 등 이런 가수의 도움이 크다고 합니다.

[앵커]

훈장도 준다면서요?

[기자]

문화훈장을 최연소로 받게 됐습니다.

[앵커]

알았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박성태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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