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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여러분들은 교도소 가지 마시오'

입력 2019-03-07 21:23 수정 2019-03-07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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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1997년 12월 22일.

그가 안양교도소에서 나와 취재진 앞에 섰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여러분들은 교도소 가지 마시오, 그것만 내가 얘기하고 싶습니다"
- 1997년 12월 22일

국민 대통합을 이유로 단행된 특별사면.

그의 목소리는 힘 있고 당당했습니다.

하긴 그 당당함은 감옥 안에 있을 때도 재판을 받는 와중에도 심지어 지금까지도 여전하지요.

"기업인들은 내게 정치자금을 냄으로써 정치 안정에 기여하는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
 - 비자금 사건 첫 공판, 1996년 2월 26일

자택 인근에 걸린 환영 현수막과 측근들의 들뜬 표정은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부대끼게 만들었고 텔레비전을 통해서 그 상황을 지켜보던 작가 박완서 선생은 따뜻한 '두부 한모'를 떠올렸습니다.

"그를 좀 더 쓸쓸하고 외롭게 출옥하게 할 수는 없었을까.
문기둥 뒤에 오롯이 모여있던 가족과 이웃들이 그를 눈물로 반기며 두부를 먹일 수는 없었을까.
내가 정말로 보고 싶었던 것은…한 모의 두부를 향해 고개 숙인…그였다"
- 박완서 < 두부 >

두부란, 단단한 콩이 풀어져 하얀 액체가 되고 그 액체가 간수를 만나 보드랍게 굳어진 음식.

콩으로부터 풀려난 상태이나 다시는 콩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니…

감옥을 나온 이들에게 두부를 먹이는 것은 두 번 다시 죄지은 그 순간으로 돌아가지 말라는 당부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때 이른 출소에는 두부에 담긴 그 마음이 생략되어 있었으니…

우리는 지금까지도 청산하지 못한 낡은 유물과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재판은 현재의 피고인이 과거의 피고인과 대화하는 과정"
- 이명박 전 대통령 항소심 재판부

잠시 그를 풀어주기로 결정한 재판부 역시 당부했습니다.

아직 두터운 혐의가 벗겨지지 않았고 단지 감옥을 다른 장소로 옮기는 것뿐이니 확대하여 해석하지 말라는 의미겠죠.

그러나 그의 반짝 출소에도 두부는 생략되어 있었던 것일까…

"(황제보석 비판은) 아주 한심한 소리…법원 결정이 고맙긴 하나 썩 달가운 건 아니다"
- 이재오, 자유한국당 상임고문

"(박 전 대통령이) 오랫동안 구속돼…건강이 나쁘다는 말도 있다…국민의 의견을 감안한 조치가 있으면 좋겠다"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무언가 승리한 듯한 측근들의 들뜬 표정은 물론이고 일각에서는 수감된 또 다른 전직 대통령마저 풀어달라는 요구마저 나오고 있다 하는데…

어느 결에 사라진 두부 한모의 마음과 20여 년 전 사람들을 허탈하게 했던 그의 당당한 목소리…
 

여러분들은 교도소 가지 마시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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