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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올해 특별히 취재하는 목적이 있나요?"…현대제철 사망산재 취재 후기

입력 2020-06-18 11:07 수정 2020-06-1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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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올해 특별히 취재하는 목적이 있나요?"…현대제철 사망산재 취재 후기

JTBC 뉴스룸은 지난 10일 현대제철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뜨거운 작업장에서 쓰러져 목숨을 잃은 산업재해를 보도했습니다.
 
 

열나고 쓰러지는 분들은 매년 계신데 올해 특별히 (취재)하시는 목적이 있나요?


현장 취재를 하던 중 현대제철 당진공장 인근 병원 관계자가 한 질문입니다. 그는 "매년 여름, 제철소의 뜨거운 작업 환경에 쓰러져 수많은 노동자들이 실려 오고, 가끔은 목숨을 잃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병원 직원과 공장 노동자들에게는 매년 반복되는 일상인데, 관련 취재를 하겠다고 느닷없이 기자가 나타나자 악의 없는 질문을 던진 겁니다. "사람 목숨이 달린 문제인데 그동안 소홀했다면 앞으로라도 잘 다뤄야하지 않겠냐"고 답하곤 돌아섰습니다. 뒤통수가 뜨거웠습니다.

9일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는 외주업체 일용직 노동자 박모씨가 공장 내 크레인 냉장 장치를 고치다 쓰러져 사망했습니다. 박씨가 일한 곳은 쇳물을 고체로 만드는 작업장인데, 동료들은 "기온이 50℃를 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고 직후 측정한 현장 온도는 43 도, 발견 당시 박씨의 체온은 40℃도가 넘었다고 합니다.
 
[취재설명서] "올해 특별히 취재하는 목적이 있나요?"…현대제철 사망산재 취재 후기 지난해 7월 현대제철 현장 작업장 온도


일각에선 "사망한 박씨의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았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박씨 사인에 대한 국과수 1차 부검소견은 '관상동맥에 의한 심근경색 급성 심장마비'였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의 사인이 지병에 의한 심근경색인지 고온 작업에 의한 온열 질환인지 특정하기 위해서는 최종 부검 결과가 나와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박씨의 건강에 이상이 있었다고 해도, 당일의 수리 작업이 사망에 영향을 준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현대제철의 외주사 안전관리 방안에 따르면, 노동자의 건강에 이상이 있을 경우 높은 곳이나 밀폐된 곳에서 위험한 작업을 하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지침은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박씨가 일하다 사망한 곳은 30m 높이의 크레인 위였습니다. 현대제철은 "박씨가 치료를 받았고 직업의 자유가 침해될까봐 현장에 투입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10일 박씨와 비슷한 환경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외주업체의 수리나 설치 작업이 끝나야 라인을 가동시키고, 생산을 재개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뜨거운 작업환경에서 일해도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없는 구조를 꼬집은 겁니다.
 
[취재설명서] "올해 특별히 취재하는 목적이 있나요?"…현대제철 사망산재 취재 후기


인터뷰 도중 또 다른 외주업체 노동자가 무더위에 쓰러져 응급실로 옮겨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급히 병원으로 가봤습니다. 다행히 이 노동자는 심폐소생술을 통해 의식을 되찾았고, 바로 퇴원했습니다. 병원에서 만난 그의 동료는 "작업 중 더워서 쓰러졌다"고 했습니다. "휴식을 잘 취했고, 물과 식염수가 구비되어 있었는데도 그랬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무더운 작업 현장에서는 휴식 시간이 보장되고 물과 식염수가 준비되더라도 노동자가 정신을 잃고 목숨까지 잃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깁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4일부터 9월 11일까지 폭염 대비 노동자 건강보호 대책을 시행한다고 밝혔습니다. 열사병을 예방하기 위해 3개의 기본수칙(물, 그늘, 휴식)을 각 사업장이 잘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건설 현장 등 노동부의 관리 감독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다. 매년 여름 사람이 쓰러지고 목숨을 잃는데 대책은 연례 캠페인 같다"는 볼멘소리가 나옵니다.

박씨가 세상을 떠난 다음날인 10일 전남 여수 해저터널 공사 현장에서는 외국인 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11일에는 울산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에서 일하던 하청노동자가 작업도중 안전장치가 작동하지 않아 기계에 끼어 사망했습니다. 일부 언론이 현대자동차 생산 중단을 걱정한 기사를 쏟아낸 그날입니다. 12일에는 안산의 환경미화원이 쓰레기를 정리하다가 차량 뒷부분 회전판과 바닥 사이에 끼어 사망했고, 세종시에선 외국인 노동자가 아파트 공사장에서 추락해 숨을 거뒀습니다.

"우리 사회 부유층이나 권세 높은 집의 도련님이나 아가씨들이 그렇게 계속 떨어져 죽고 깔려 죽었다 하면, 수십 년 동안. 그러면 한국 사회는 이 문제를 진작 해결할 수 있었을 거예요." 김훈 작가는 지난달 JTBC와의 인터뷰에서 '일터에서 죽음이 멈추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내일도 모레도 어떤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죽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안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결국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몬 기업들은 무거운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이렇게 매일 죽음이 계속되어도 안전을 지켜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국가의 역할은 잘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그 역할이 희미해진 사이 우리는 죽음에 무뎌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언론도 정부도 국회도 기업도 이미 죽음에 무뎌졌기 때문에 병원 관계자가 "올해 특별히 취재하는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는지도 모릅니다. 노동자의 죽음이 일상인 나라에선 사람의 죽음도 마치 부품이 닳아 없어진 것처럼 인식되는 것 같습니다.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고, 또 죽음을 막아야할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매일 일하다 다치고 죽는 이들이 있는데, 특별히 그렇게 가만히 있는 이유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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