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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플러스] 기업 이익만…국민 안전 사안까지 '규제 무력화'

입력 2016-05-23 21:52 수정 2016-05-27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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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앞서 뉴스룸 1부에서도 전해드렸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은 들여다볼수록 충격과 분노의 연속입니다. 정부는 지난 2012년, 그러니까 이명박 정부 말기에 뒤늦게 문제를 알고 법적 장치 마련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법안 내용이 여러 번 수정되면서 유명무실해지고 말았습니다. 껍데기만 남았다는 것이죠. 이처럼 국민건강을 보호하자는 법안을 누더기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게 바로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입니다. 결과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지금도 흡입독성 등의 위험이 있는 화학물질을, 비전문가가 수입해서 이를 가습기 살균제로 만들어 판매해도 이것을 막을 법적근거가 사실상 없다는 겁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죠. 실생활에 맞지 않는 규제철폐. 반대한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규개위의 규제 철폐가 중소상인이나 대다수 국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업계 이익만 대변하는 쪽으로 흐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희 탐사플러스는 규제개혁위원회의 손톱 밑 가시빼기가 어떻게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 정보공개를 청구해 집중점검해봤습니다.

먼저 이호진 기자의 보도를 보시겠습니다.

[기자]

2014년 세퓨 가습기살균제 원료로 사용된 PGH 독성 실험 결과입니다.

화학물질 PGH를 쥐가 흡입하자 폐 색깔이 바뀌고 중독 증상이 생겼습니다.

사람 피부 체외독성 실험에서는 3ppm 농도에 세포 절반이 사멸했습니다.

화학적 지식이 없었던 세퓨 대표 오모 씨는 2009년, 자신의 동업자가 공업용으로 수입한 이 PGH를 가습기 살균제로 만들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가 인기를 얻자 PGH를 직접 덴마크로부터 수입했고, 인터넷에 나온 정보를 토대로 청주의 한 콩나물 공장에서 본격 생산에 들어갔습니다.

오씨가 2011년 중단 때까지 수입한 PGH만 700kg으로 14만 병을 만들 수 있는 양입니다.

[오모 씨/'세퓨' 대표이사 : (전문지식 없이 만든 것 많습니까?) 죄송합니다.]

환경부는 제2의 옥시와 세퓨를 막겠다며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 화평법 제정에 나섰고, 그 법안은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출됐습니다.

2012년 8월 7일 환경부 초안에선 세퓨처럼 화학물질이 기존과 다른 용도로 쓸 경우 '변경등록'을 하지 않으면 아예 제조·수입하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심사한 규개위는 "업계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며 삭제를 권고했고 결국 용도와 다르게 사용한 뒤에라도 등록을 하면 되는 것으로 완화됐습니다.

규개위는 2014년 열린 하위 시행령에 대한 심사에선 위해성이 낮다고 알려질 경우에는 사용량과 용도 등 매년 해야하는 보고 의무까지 하지 않도록 완화시켰습니다.

[김신범 실장/노동환경건강연구소 : 크게 국민의 건강에 필요한 항목들은 기업들이 다 손을 봐요. 큰 구멍들이 뚫려 있는 거죠.]

규개위는 화학물질 수입시 해외업체가 선임하는 대리인 요건도 없앴습니다.

환경부는 '화학지식과 3년 이상의 화학물질 관리 실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제한했지만, 규개위는 '해외 사업자가 판단할 일'이라며 대한민국 국적이라면 누구나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충분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자'를 조건으로 정한 EU는 물론, "관련 분야에 처벌받은 적이 없어야 된다"고 규정한 중국보다 완화된 겁니다.

올해 3월 옥시 레킷벤키저와 같은 외국계 유한회사들의 책임 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감사보고서를 공시하도록 추진된 법안도 규개위에서 무산됐습니다.

당시 회의록을 보면 "감사보고서를 공시할 경우 경쟁회사에 원가정보 등 영업비밀이 공개되는 문제가 생긴다"는 업계 입장을 그대로 앞세웠습니다.

[정선섭/재벌닷컴 대표이사 : 미국·독일·일본 경우에는 유한회사로 전환한 경우라도 매출이나 자산이 일정 기준을 넘을 경우에는 의무적으로 공시를 하도록 하는 강화책이 있죠.]

국민 안전을 위해 추진된 법안들이 규개위에 가로막힌 건 이뿐만이 아닙니다.

2014년 환경부는 어린이 운동장에서 납·카드뮴·수은 등 중금속이 일정량 이상 나올 때 검사를 거쳐 지속적 관리를 받는 안을 추진했습니다.

그런데 규개위는 "운동장이 일반 토양보다 중금속이 더 많나", "과잉규제", "개방된 공간이어서 오염물질 흡수가 어렵다"며 이를 막았습니다.

당시 이 법안은 국내 어린이 혈중 중금속 농도가 외국보다 두 배 가까이 높게 나타나는 등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추진됐지만 무산된 겁니다.

같은해 이뤄진 국민체육진흥공단 조사에서도 전국 1037개 초·중·고 인조잔디 운동장의 중금속 점검서 8곳 중 1곳인 133곳이 기준치를 초과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서울시 등에서 인조잔디 철거에까지 나섰지만 정작 법령에선 규개위 반대로 빠진 겁니다.

미세먼지 절감을 위해 추진되던 규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해 6월 환경부는 대기오염 절감을 위해 그 원인으로 볼 수 있는 업종을 17개 추가해 집중 관리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규개위는 그 중 의약용화합물, 합성섬유 등 3개 업종을 "배출량이 적다"며 제외하라고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규개위는 배출량만 고려했을 뿐, 배출되는 물질이 얼마나 유해한지에 대해선 검토하지 않았습니다.

또 미세먼지 원인으로 꼽혀온 비산먼지 배출 업종으로 추가하려던 제철·철강업을 제외시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의 한 연구진이 발표한 환경성과지수 2016에서 한국은 공기 질 부문 조사대상 180개 국가 가운데 173위 차지했습니다.

규제개혁위원회측은 "이해 관계가 첨예한 만큼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각 부처와 협의해 부적절한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

[규제개혁위원회는 "유한회사 외부감사 공시 의무에 대한 법안을 철회 권고한 심사와 관련한 보도에서 '미국, 독일, 일본 등도 매출과 자산이 일정기준을 넘으면 의무적으로 공시한다'는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 인터뷰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며 "미국과 일본에서는 유한회사가 외부감사 대상이나 공시 대상이 아니"라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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