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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100년 된 근대산업 유산 '어이없는 철거'

입력 2017-06-01 22:17 수정 2017-06-01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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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 지방자치단체가 지어진 지 100년 된 건물을 철거하고 나섰습니다.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시설물들이 사라진 건 처음이 아니죠. 이번에는 관광객을 위한 주차장이 필요하다는 게 구청의 이유였습니다.

밀착카메라 손광균 기자입니다

[기자]

인천광역시 중구청사 앞입니다. 제 뒤로는 여러 시민단체들이 집회를 열고 있는데요. 팻말에는 "인천 근대산업유산을 상습 파괴한 구청장을 규탄한다"는 말도 보이고요, 옆으로는 "100년 역사 산업유산이 주차장보다 못하다는 소리냐"는 말도 있는데요. 과연 어떻게 된 일인지 직접 확인해보겠습니다.

[근대 산업 유산을 기습 파괴한 중구청은 각성하라!]

굴착기가 건드리기 무섭게 벽들이 무너지고 지붕은 위아래로 흔들립니다. 인천시 송월동에 있던 벽돌 건물은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사진과 영상에 담긴 현장에 나와 봤습니다. 원래는 2층짜리 벽돌 건물 3채가 있었지만, 지금은 철거가 사실상 완료돼 외벽만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안쪽으로 들어와 보면 이곳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는 자료들이 있는데요. 이 벽에는 벽지로 신문지를 붙여놨는데, 신문지 날짜를 들여다보니까 1986년이라고 적혀있고요. '서독 9회 연속 출전, 월드컵 56년', 즉 1986년도 월드컵을 앞두고 쓰인 기사였습니다.

시민단체들은 철거 직전에야 소식이 알려져 중단을 요청할 시간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희환/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공동대표 : 이쪽 주민들만 알았던 것 같아요. 4월부터 계획이 진행됐다고…그래서 저희는 공지가 안 됐으니까 우연히 알게 된 거죠.]

또 이 건물이 1902년에 만들어진 지도에도 나올 만큼 산업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민운기/스페이스빔 대표 : 어떤 곳이든 그 나름대로 역사와 사연이 있거든요. 특히 여기는 인천의 초기 산업 단지로서의 성격을 가졌던 곳이고…]

해방 이전에 세워졌지만 최근 들어 구청이 철거한 시설물은 또 있습니다.

1919년에 세워졌던 조일 양조장 자리에는 '남한 최초로 소주를 대량 생산하던 곳'이라는 설명만 남아있고, 인천 문화 황금기를 이끌었던 동방극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구청은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해당 건물들을 철거했다고 밝혔습니다. 주차장이 부족하다는 관광객들의 민원이 제기됐다는 겁니다.

[구청 관계자 : 거기 동화마을, 차이나타운 주민들이나 (관광객들이) 많은 주차장이 조성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시민과 관광객들의 반응은 엇갈립니다.

[김귀분/인천시 선화동 : 여기가 말도 못하게 지저분했어. 동네 사람들이 쓰레기 다 갖다 버릴 정도였고…]

[신미선/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 역사적인 부분을 철거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는 앞으로도 쭉 볼 수 있는 그런 곳으로 남아 있는 것이 더 낫다고…]

송월동 벽돌 건물 철거 작업은 문화재청 담당자들이 뒤늦게 현장을 방문하면서 중단됐습니다.

문화재청은 등록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는지 구청과 협의하겠다는 방침입니다.

현재 이 지역의 근대 건축물 복원은 개인에게만 의지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골목에 자리 잡은 이 카페는 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는 취지로 일제강점기 사무실 겸 주택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되살렸습니다.

[백영임/카페 사장 : 오히려 더 좋은 문화적인 공간으로, 그리고 시민들이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남겨서 역사문화 자산으로 활용해야 되는데…]

100년 넘은 건물이 자리만 차지하는 흉물로 방치될지, 관광자원으로 새롭게 태어날지는 그 지역 사회의 고민과 소통에 달려 있습니다. 지자체 등이 자신들의 입장만 내세우는 사이에 정작 지켜야 할 근대 문화재들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영상제공 : 스페이스빔)
(자료제공 : 도시자원디자인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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