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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밤에는 촛불로"…전국 25개 마을은 아직도 '깜깜'

입력 2020-10-20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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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아직도 밤에 불을 마음껏 켤 수 없는 마을이 있다면 믿어지시나요? 냉장고도 잠시 켰다가 꺼놔야 하고 세탁기는 엄두도 못 냅니다. 계절이 바뀌면서 이들의 밤이 더 길어지고 있는데요. 이런 마을이 전국에 25곳, 100가구 가까이 됩니다.

어떤 사정이 있는 건지, 서효정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기자]

운문골로 가는 길은 시작부터 험합니다.

[김태연/운문골 주민 : 작은 저수지가 하나 있거든요? 쭉 올라오시다가 보면 아스팔트 끝나는 지점이 있는데 아마 내비게이션이랑 휴대전화가 다 안 될 거예요.]

우체부도 오려고 하지 않아 마을 초입엔 대표 우편함 하나만 세워놨습니다.

여기서도 풀이 무성한 비포장도로를 2km 정도 올라가야 합니다.

운문골에 들어온 지 4년 된 김태연 씨, 어두워지기 전 군불을 때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장작을 아궁이에 넣고 태워야 오늘(20일) 밤 난방을 할 수 있습니다.

지자체가 지원한 태양광 발전 시설이 있지만 용량이 작아 충전한 전기를 최대한 아껴 써야 합니다.

[김태연/운문골 주민 : 맨 처음에 세탁기를 돌리려고 막 했어요. 그랬더니 모든 전기가 나가 버리더라고.]

여섯 가구가 살고 있지만 지속적으로 전기를 사용할 수 없는 겁니다.

[박모 씨/운문골 주민 : (음식도) 다 썩어 버려. 그러니까 그게 사는 게 아니라니까.]

오래전부터 여기 산 박 할머니,

[박모 씨/운문골 주민 : 내가 여기 와서요, 열아홉에 우리 큰애를 낳고 또 작은애 낳고 애들은 다 여기서 다 낳았어요.]

정착한 지 오래지만, 집을 임시로 지어 두었습니다.

[박모 씨/운문골 주민 : 양초, 촛불 쓰다가 촛불이 넘어가가지고. 불이 나가지고 집이 홀딱 타 버렸어.]

빨래도 개울가에서 직접 합니다.

[박모 씨/운문골 주민 : 전기 들어오면 천생 세탁기 놓아야지, 뭐. 빨래하기 힘드니까. 겨울이 제일로 힘들어.]

운문골의 해는 겨울이 되면서 점점 짧아집니다.

지금 시간이 6시를 조금 넘겼는데, 주변이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로 캄캄합니다.

전기가 없는 마을에서의 생활은 날이 저물면 더 어렵다고 하는데, 제가 오늘 직접 머물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화장실도 플래시를 켜고 가야 되죠? (거기 안에 초가 있어요.)]

해가 저물자마자 꺼내는 것은 양초입니다.

촛불을 켜자 조금 나아졌지만, 밥과 반찬만 구분될 정도입니다.

[이게 뭐지? 이게 뭔가요? 이건 버섯, 버섯이다.]

식사를 마치고 머리를 감아보려 하지만, 난관에 부딪힙니다.

[드라이기도 있어요? (드라이기는 없는데요? 그게 전기 얼마나 많이 먹는데요. 어떻게 해요, 그러면?) 못 감죠, 뭐. 머리를 못 감겠는데?]

전화도 터지지 않습니다.

[긴급전화만 연결할 수 있다는데요? (그렇게밖에 안 돼요. 휴대전화 켜 보는 게 소원이다, 진짜.)]

[김태연/운문골 주민 : 전기가 들어와야 통신시설을 설치해 준다고 그러더라고요.]

주민들은 농사를 짓는 가구가 있어야 전기를 깔아줄 수 있다는 한전의 말에 농사도 지어봤습니다.

[김태연/운문골 주민 : 보시면 알겠지만 여기가 돌땅이에요. 농사를 지어 봤어요. 결국에 포기한 게 파도 파도 돌만 나오니까.]

결국 자비를 들여 전기 시설을 깔아야 한다는 이야기, 하지만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이동근/운문골 주민 : 시설비가 2억 정도 들어간다고. 손을 못 대는 거지.]

태양광 패널과 발전기를 더 확보하면 해결되는 문제일까.

또 다른 전기 없는 마을에 가봤습니다.

역시 날이 저물자 칠흑 같은 어둠에 잠깁니다.

[김명필/캠핑객 : 진짜 놀랐죠, 요즘 전기 안 들어오는 세상 없잖아요. (선생님은 들어와 살라고 하면?) 어우, 못 살죠. 힘들어요.]

농사를 짓고 살고 싶어 6년 전 이 마을에 들어온 조복인 씨 부부, 들어올 때만 해도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물도 안 나오고 음식도 다 상하는 생활을 견디다 못해 태양광 배터리와 발전기를 샀습니다.

[조복인/석탄리 주민 : 이게 7200만원 들여서 해놓은 거예요.]

하지만 먹고 살 길이 없었습니다.

태양광으론 역부족이었습니다.

[조복인/석탄리 주민 : (농사를 지어도) 전기가 없으니까 다 얼어서 썩어서 내버리는 거야, 고구마가 됐건 밤이 됐건. 한 해 2천만원씩 손해날 때도 있고.]

조씨처럼 농사짓기 위해 4가구가 들어와 살고 있지만, 당국은 묵묵부답입니다.

[신순호/석탄리 주민 : 지자체에서 인원을 흡수하려고 이쪽으로 들어온다고 할 때는 좋다고 해놓고 나쁜 말로 이야기하면 책임을 회피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한전은 전국 곳곳의 전기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도 해마다 10가구 안 되는 작은 마을에 전기를 까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박충재/충북 단양군 배골마을 (7년 전 전기 공급) : 환하고 편하고 다 그렇지. 전기 없을 때는 여기 사람들 이사도 안 들어왔어. 전기 들어오고 나서야 이제…]

하지만 운문골과 석탄리 마을 주민들처럼 이런 작업에도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은 지금도 많습니다.

[김태연/운문골 주민 : 모든 세금은 다 내는데 저희는 이 나라 사람이 아니냐고. 외국에서 온 사람들도 이렇게 천대 받지는 않을 거라고.]

쭉 내려온 전선과 통신선은 바로 이 지점에서 끝납니다.

아직도 이렇게 전기가 원활하지 않은 마을이 전국에 25개라고 합니다.

날은 추워지는데 설치비용이란 벽 앞에 주민들의 밤은 점점 길어질 걸로 보입니다.

(VJ : 박선권 / 인턴기자 : 김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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