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취재설명서] 아시아나엔 왜 바지입은 여승무원이 없을까

입력 2018-03-09 15:55 수정 2018-03-12 14:24

봇물터진 직장인들의 '미투' #박영우 기자 #취재설명서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봇물터진 직장인들의 '미투' #박영우 기자 #취재설명서

[취재설명서] 아시아나엔 왜 바지입은 여승무원이 없을까

미투 운동이 번지면서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피해사례를 증언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위계 질서가 분명한 기업 내에서 쉽게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기만 하다 봇물터지 듯 드러내놓기 시작한 겁니다. 주로 활용되는 건 블라인드 등 익명게시판입니다.

가장 파장이 컸던 건 지난달 아시아나항공 박삼구 회장과 관련된 사례였습니다. 박삼구 회장이 회사를 방문할 때마다 승무원들이 강제로 동원되거나 부적절한 신체 접촉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사 역시 익명 게시판을 통해 처음 공론화되었습니다.
 

기사가 나가자 박 회장의 '일탈'에 대한 지탄이 빗발쳤습니다. 이후 박 회장의 회사 방문도 중단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박 회장만 마음을 고쳐먹으면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요.

취재를 통해 들여다본 우리 기업의 현실상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기업내 수많은 방조자, 그리고 이를 넘어선 '조력자'의 문제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근무하는 굴지의 대기업에서 오랜 기간 일어났던 일이 이제서야 알려진 것도 그런 영향이 큽니다.

"회장님 보면 눈물을 흘려라"   

기사에는 전부 담을 수 없었지만 승무원들은 그 '조력자'들의 이해하기 힘든 행태를 생생하게 전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바로 간부들이 "회장님을 보면 눈물을 흘려라"라고 했다는 겁니다. 회장님 방문 행사에 동원된 승무원에게 기쁜 표정을 보여주며 눈물을 흘리라고까지 했다는 겁니다. 또 어떤 간부는 출산휴가에서 복직한 승무원들은 아이들 사진을 사진첩으로 만들어 선물까지 하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시아나에는 시대에 맞지 않는 암묵적인 복장 규정이 존재합니다.  여승무원은 바지를 입어선 안되고, 단발머리처럼 짧은 헤어스타일을 해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에서 마주치는 아시아나 항공사 승무원들 중 바지를 입은 경우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건 이때문입니다.

이유는 박 회장이 이런 복장을 싫어한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숨은 방조자와 조력자들이 톡톡히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바지 못입는 아시아나 승무원들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들의 복장 문제는 지난 2012년부터 시작됩니다. 당시 노동조합에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합니다. 인권위는 2013년 2월 아시아나항공이 치마 외에 바지를 선택해 착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을 권고합니다. 하지만 인권위의 권고 뒤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회사에 바지를 신청하면 팀장 등 간부로부터 곧바로 전화가 와 "정말로 입을 거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상사들의 이런 압박에 결국은 신청을 취소할 수밖에 없다는 게 승무원들의 공통적인 답변입니다. 바지를 입거나 머리를 짧게 자르기라도 하면 회사에선 노조에 가입한 승무원이거나 회사에 반항하는 승무원으로 인식한다고 말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성 승무원의 복장 자유를 확대하려면 회사가 바지 유니폼을 일괄적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 아시아나항공을 제외한 대한항공이나 다른 저가항공사에서는 여성 승무원이 입사하면 치마와 바지 유니폼을 기본으로 지급합니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은 비용 문제를 이유로 바지 유니폼은 희망자에 한 해 지급하고 있습니다.

복장과 관련한 논란은 비단 아시아나항공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해에는 증권사 가운데 하나인 하이투자증권이 여직원 복장 지침을 공지해 큰 논란이 됐습니다. 치마 길이는 무릎선 정도, 정장용 힐 높이는 4~7㎝, 메이크업은 색조까지 꼼꼼, 10개 항목 19개 세세한 지침이 내려졌습니다. 논란이 되자 회사 측은 권고 사항일 뿐 강제성은 없다고 해명했지만, 한동안 논란은 지속 됐습니다.

숨은 방조자, 조력자들

이처럼 기업의 '미투'는 비단 충격적인 성폭력, 성추행 폭로에만 그치진 않습니다. 늘 벌어지는 일상의 '성차별', 그리고 불합리한 성역할 강요에 대한 증언도 넘쳐납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늘 이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수많은 방조자, 그리고 한발 더나간 조력자들이 있습니다. 

어제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습니다. 1908년 미국의 1만 5천여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정치적 평등권 쟁취와 노동조합 결성,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날을 기념해 제정한 날입니다.

하지만 100여년이 지난 이땅에는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복장 규제 같은 게 존재합니다.

뉴스에 등장하는 유명인들에 대한 폭로에만 관심갖지 말고,  내주변을 한번 돌아보면 어떨까요.

관련기사

"성폭력 만연했다" '안희정 캠프' 사람들이 말하는 실상은… 여성의 날, '하얀 장미' 들고 거리로…"미투는 이제부터" [팩트체크] "아내 외 여자는 NO" 미투 대처법은 '펜스룰'? [밀착카메라] 개강 맞은 대학가…'미투 2라운드'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