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무장 출격 대기' 떨어진 그날 광주에선…어떤 일 있었나

입력 2017-08-23 21:25 수정 2017-08-24 01:48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앵커]

지금까지 나온 5·18 당시 공군 조종사들의 증언과 각종 정황을 종합해보면 1980년 5월 21일이 중요한 시점으로 보입니다. 이 날 광주와 공군부대 등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정치부 유선의 기자와 함께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1일이 당시 상황에서 중요한 시점인데, 이때부터 광주에 군 투입이 크게 늘어나지요.

[기자]

그렇습니다. 전교사 작전 일지. 그 당시에 있었던 일지를 먼저 보겠습니다. 보면 20사단 병력이 광주역이 아니라 광주송정역으로 오는 걸로 변경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기존에 광주에 있었던 3공수, 7공수, 11공수부대가 시민들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다. 이렇게 판단이 되니까 20사단 병력 전체를 투입하는 작전이 시행이 된 겁니다.

[앵커]

20사단은 경기도 지역에 있는 사단이죠. 그래서 전두환씨 등 신군부 세력이 북한을 얘기할 때 할말이 없는 부분이 이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북한을 신경썼다면 과연 그 전방 바로 밑에 있는 군을 빼서 광주로 투입시켰겠느냐… 이런 반론이 나온 바가 있습니다.

[기자]

시민단체에서도 그 부분을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앵커]

아무튼, 육군 항공여단에도 작전대기 명령이 떨어졌는데 그것도 이때입니까. 21일?

[기자]

네, 새벽에 도착한 20사단이 시내에 제대로 진입을 못하니까 헬기 투입이 결정이 됩니다.

당시 육군본부 작전참모부 작전조치사항을 보면, 5월 21일 UH-1H 그리고 500MD 헬기가 동원되는 것으로 나오고요.

특히 500MD 헬기 같은 경우는 공격형 헬기입니다. 그리고 작전대기시간은 오전 10시로 표현이 돼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자료를 보겠습니다. 다음은 특전사령부 작전 결과 문서인데요. 오후 5시에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이 일시 철수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앵커]

21일에… 그리고요.

[기자]

그리고 수원 제10전투비행단 조종사가 출격 대기 명령을 받은 시간, 그 대기가 해제된 시간. 이것들이 지금 보신 상황과 일치합니다. 잠깐 들어보겠습니다.

[김모 씨/5·18 당시 공군 전투기 조종사 : 오전 한 10시쯤, 11시쯤 지시가 떨어져서 준비해서…준비해서 있었는데 그날 오후 한 4시, 5시 무렵 퇴근 시간 가까이 됐을 때 해제가 됐어요.]

[앵커]

시간까지 꼭 들어맞는군요. 물론 자세한 내용을 조사해봐야겠지만요.

[기자]

네 문재인 대통령이 특별조사를 지시한 것은 JTBC가 보도한 공군 조종사들의 출격 대기 명령 그리고 헬기 사격에 관한 부분입니다.

이 두 부분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먼저 5·18 당시 광주 상황을 직접 목격하고 수기를 남긴 아놀드 피터슨 목사의 부인, 바바라 피터슨씨의 증언을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바바라 피터슨/피터슨 목사 부인 : 헬기가 사람들을 향해 사격할 때, 남편이 사진을 찍었고, 저도 남편과 함께 우리 집 2층 발코니에 있었습니다. 저희 둘이 (사격현장을) 함께 봤습니다. 남편만 본 게 아니고요.]

헬기 사격을 봤다는 피터슨 부부 외에도 여러 목격자 진술을 종합하면 그 시간은 오후 1시 30분에서 오후 5시 사이입니다.

헬기 출격 대기 시간에서 계엄군의 도청 철수 시간, 그 사이의 간격과 일치하는 상황입니다.

[앵커]

그렇군요. 그 시간은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발포가 있었던 시간이기도 하죠. 이건 매우 중요한 시간대입니다.

[기자]

그렇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11특전여단 전투상보를 보겠습니다.

13시, 오후 1시부터 폭도들이 사격했다…지금 보면 폭도들 사격함이라고 돼있는데. 그 중간 부분을 잘 읽어보면, 폭도들이 우리 계엄군에게 사격을 했다 이렇게 보고가 된 문서입니다.

이 시간이 바로 지난 1995년 검찰 조사결과 그리고,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등을 통해서 계엄군의 집단발포와 조준사격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 시간입니다.

[앵커]

그렇다면,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건 분명 계엄군이 집단발포한 상황인데, 왜 여기엔 폭도가 했다고 돼 있습니까.

[기자]

네 계엄군 사격이 아니라 시민들이 사격을 한 거로 돼 있습니다.

[앵커]

이른바 그들이 표현한 폭도죠.

[기자]

네 그렇습니다. 계엄군은 표현 또한 시민이 아니라 폭도라고 적어놨고요. 하지만 계엄군이 집단 발포를 했던 시간으로 이미 과거 검찰 조사 결과 그리고 과거사위의 조사 결과 확인이 된 상황입니다.

그래서 문서를 허위로 작성했거나 혹은 왜곡한 것이 아니냐 이런 의혹이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번에는 20사단 충정작전 상보입니다. 오후 4시 30분에 헬기 투입을 시도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앵커]

우리가 지금 의문을 제기하는 그 모든 일이 그러니까 5월 21일 하루에 일어난 그런 상황이라고 봐야겠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조종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 날의 상황을 정리해보면, 21일 오전 10시에 육군 헬기가 작전 대기를 시작하고 같은 시간에 공군 전투기들이 출격 대기 명령을 받습니다.

그리고 오후 1시에는 계엄군이 집단발포를 하고, 이 시기를 전후해서 헬기 사격도 목격이 되고요.

그러다 시민들이 일부 무장을 하기 시작하니까 계엄군이 오후 5시에 도청 앞에서 일시 철수하면서 시민들이 도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 시간은 육군 헬기가 철수한 시간, 그리고 공군 전투기 출격 대기가 해제된 시간과도 일치합니다.

딱 하루 사이에 완전히 벌어진 일인데요, 어제 사천 비행단 상황을 말해주신 예비역 장성도 똑같이 말을 했습니다. 들어보시겠습니다.

[예비역 장성/5·18 당시 공군 전투기 훈련생 : (폭탄) 장착 후 24시간 이내에 무장 해제됐던 것은 기억이 분명합니다. 왜냐면 그 무장한 것 때문에 비행훈련을 못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앵커]

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고요. 오늘 저희들이 정리해드린 이 일지. 사실 21일 하루에 일어난 일들인데. 이것이 당시의 상황을 특히, 공군의 출격 대기라든가 기타 다른 상황과 연결시켜볼 때에 매우 중요한 상황이어서 저희들이 2부에 이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드리면서 무엇을 그렇다면 조사해야 되는가 하는 문제를 전문가와 잠깐 얘기 나눠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 [인터뷰] "군 기록은 절반의 진실…자발적 증언과 교차분석해야" (http://bit.ly/2g7cdVz)

2부에 유선의 기자가 다시 나와서 설명을 좀 해드리길 바라겠습니다.

관련기사

문 대통령, '5·18 출격 대기' 특별조사 지시…배경은? 국방부 "특별조사단 구성…작전일지·존안자료 공개 추진" 핵심은 '발포 명령자' 찾아내기…다시 전두환에 쏠리는 눈 5·18 당시 최소 8개 비행단에서 '작전 또는 출격 대기'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