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되짚어보겠습니다. 이 사건의 수사는 시작부터 축소와 은폐였습니다.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며 사건을 왜곡했는데요. 그러나 당시 수사팀은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고, 그 이후 예외없이 승승장구했습니다.
조민진 기자의 취재입니다.
[기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자 당시 정부는 이 사실을 조직적으로 축소·은폐하려 했습니다.
사건 수사를 맡은 검찰이 고문경찰관 2명을 구속기소했지만 한 달쯤 지난 뒤, 고문에 가담한 경찰관이 3명 더 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수사를 미적거렸습니다.
그러다, 그해 5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폭로가 있은 뒤에야 2차 수사를 벌여
세명을 추가 구속했습니다.
이 때문에 2009년 과거사위원회는 당시 검찰이 외압에 의해 진실을 왜곡했다며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공식 사과는 없습니다.
사건 수사검사였던 안상수 창원시장은 자서전을 통해 외압으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데 대해 부끄러웠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해서는 할 만큼 다한 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안상수/당시 수사검사 : 지금의 잣대로 모든 것이 자유스럽게 수사할 수 있는 이때의 잣대로 보면 안 됩니다. 그때는요. 사실은 목숨 걸고….]
수사팀에 참여했던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도 같은 취지였습니다.
[박상옥/대법관 후보자 : 경찰의 조직적 사건 축소 다음에 은폐 이런 것들이 이 사건의 가장 핵심적 내용이었기 때문에…밝히는 과정이 좀 길고 힘들었다는… .]
이들 수사팀은 이후 약속이나 한 듯 승승장구했습니다.
당시 신창언 부장검사는 헌법재판소 재판관까지 올랐고, 안상수 검사는 정계에 진출해 여당 대표까지 지낸 뒤 현재는 자치단체장으로 있습니다.
당시 박상옥 검사는 현재 사법부 최고 권위의 대법관 후보자로 지명된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