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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정규직 해고 쉬워야 비정규직 문제 풀린다?

입력 2014-11-25 22:28 수정 2020-06-1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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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정부가 정규직의 해고를 쉽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어제오늘 논란이 굉장히 컸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지나친 보호를 받고 있는 정규직이 걸림돌이라는 이야기인데요, 오늘(25일) 팩트체크에서 이 말이 과연 맞는 것인지 한 번 따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필규 기자! 정부 관계자의 발언, 정확히 어떤 것이었습니까?

 
[기자]

어제(24일) 오전이었습니다. 한 기재부 고위 관계자가 기자실에 내려와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했는데,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대한 질문을 받자 "정규직 해고의 절차적 요건을 합리화하는 방안이 국정과제에 있다. 그런 취지의 대응을 논의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한 겁니다.

[앵커]

'해고의 절차적 요건을 합리화한다'…쉽게 얘기하면 '해고를 쉽게 한다', 이런 얘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다른 해석이 별로 존재하진 않을 것 같은데요.

[기자]

발언이 나간 뒤 논란이 커지자 기재부는 부랴부랴 구체적으로 논의한 적 없다는 해명자료를 내기도 했는데요.

발언의 맥락을 보면 "고용 유연성 측면에서 해고의 절차적 요건을 합리화한다" 이렇게 얘기한 겁니다.

그러니까 말씀하신 대로 해고를 쉽게 한다는 거지 어렵게 하는 거라고 볼 순 없는 거죠.

또 지난달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정규직 과보호가 문제"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이러니 정부 차원에서 정규직 해고를 더 쉽게 하는 쪽의 논의가 진행되는 것은 맞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앵커]

그렇다면 실제로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는 것이냐, 이걸 따져볼 필요가 있겠죠?

[기자]

네, 이 이야기를 할 때 많이 언급되는 게 캐나다에 있는 프레이저 연구소의 노동시장 경제자유 순위입니다.

2011년 기준으로 홍콩, 미국, 피지, 브루나이 등이 상위권이고, 한국은 133위로 상당히 낮은 편입니다.

[앵커]

쉽게 말하면 홍콩이 해고하기 가장 쉬운 곳이고, 한국은 굉장히 어렵다는 얘기가 되는 건데, 이걸 좀 따져봐야겠군요.

[기자]

네, 저 표를 보시면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건데요. 그런데 이런 분석에 대한 반론도 있습니다.

먼저 노동사회연구소에서 OECD 자료를 가지고 분석한 건데요. 한국의 경우 비정규직 근로자 비율이 27.5%로 스페인 다음으로 가장 높습니다. 그리고 1년 미만 일한 단기근속자 비율은 1등입니다.

반면에 10년 이상 오래 근무한 사람 비율은 가장 낮고요, 평균 근속연수도 4.9년으로 조사대상 중 최저입니다.

[앵커]

이게 사실 옛날하고는 굉장히 많이 바뀐 상황이죠.

[기자]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고용이 가장 불안한 상태라고 볼 수 있고, 한국의 고용 유연성도 주요선진국보다 높다는 반론이 가능한 겁니다.

[앵커]

이것만 놓고 보자면 어느 직장에서든 짧게 일한 사람들이 가장 많고, 1위니까요. 그리고 직장에서 오래 일한 사람 비율은 23위…최하위 수준인가요? 그러니까 과연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는 것이냐, 이 자료에 의해서는 아닌 걸로 나오네요.

[기자]

더 심각한 문제는 프레이저 지수에서 우리보다 순위가 높은 덴마크나 독일의 경우, 해고나 실업에 대한 대책이 잘 마련돼 있지만 우리는 이런 사회보장 장치가 부족하단 점입니다.

그래서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프레이저 지수의 문제를 지적했는데요, 해고가 쉬우냐 어려우냐 하는 부분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두고 있고, 또 그 나라 노동 규제에 대해 고용주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주관적인 내용을 평가항목으로 두고 있어 신뢰도가 상당히 떨어진다는 지적입니다.

[앵커]

그렇군요. 그런데 이 정부 들어설 때 '일자리 지키기'가 대표적인 공약이었고요, '늘지오'란 말도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공약과 엇나가는 발언을 한 것 아니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기자]

말씀하신 대로 '늘지오', 새 일자리를 늘리고, 기존 일자리는 지키고, 일자리의 질은 더 올린다고 해서 늘지오 공약이었죠.

이 부분에 대해 확인해봤더니 정부에선 이 해고요건을 완화하는 게 새 정부 국정과제였고, 공약에도 있었다 이런 해명입니다.

그래서 공약집을 다시 찾아봤더니 '새누리의 실천 : 근로기준법의 정리해고 제도 관련 규정을 개정하겠다'는 내용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같은 페이지 바로 위에 '고용안정 및 정리해고 요건 강화'라는 문구가 있다는 겁니다.

[앵커]

강화라고 얘기한 것은 누가 봐도 정리해고를 잘 못 하게 요건을 강화하는, 엄밀하게 하겠다는 것으로 들리는데. 지금 정부에서 나오고 있는 얘기는 오히려 정반대로 간다, 이런 얘기가 되겠군요.

[기자]

맞습니다. 이 공약집 한 페이지에 있는 저 두 이야기가 서로 다른 쪽을 보고 있는 셈인 건데요.

앞서 잠깐 언급했던 부총리의 이야기, 직접 들어보시죠.

[최경환 경제부총리/관훈토론회(지난달 2일) : 솔직히 현재 상황에서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 상황에서, 정년이 60세까지 늘어난 상황에서 누가 정규직 뽑으려 하겠습니까? 비정규직은 양산되고, 정규직은 한번 뽑았다 그러면 평생 먹여 살려야 되고 이렇게 노동시장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지금 들으신 것처럼 노동시장 양극화의 원인으로 '정년 60세 연장', 이걸 콕 집어서 지목하고 있는데요.

이 역시 지금 보시는 것처럼 같은 페이지에 있는 새누리의 공약 중에 한 부분이었습니다.

[앵커]

새누리의 약속 맨 앞에 나오는 게 정년을 60세로 연장한다는 것이었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앵커]

그런데 늘려놓고 보니까 괴롭다, 이렇게 보입니까?

[기자]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건데요. 현 정권에서 추진해 놓고, 또 이걸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하는 것, 모순이란 지적을 피할 수 없는 부분이죠.

[앵커]

그러면 이 약속을 믿었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운 측면이 있었을 거고요.

[기자]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시절 "비정규직 차별을 철폐하겠다. 안 따르는 기업은 불이익을 주겠다"고 까지 강조했는데요, 그러다 보니 결국 정규직 처우를 나쁘게 만들어 차별을 없애겠다는 거였느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공약 수정, 물론 불가피한 경우에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문제를 앞서 보셨던 것처럼 기재부 공무원 입에서 흘러가듯 나와 공론화시킨다는 건 부적절했다는 지적, 이 역시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앵커]

네, 꼼꼼하게 따져본 팩트체커 김필규 기자였습니다.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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