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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개입 늘리면 공정?…최저임금 결정체계 논란 계속

입력 2019-02-27 14:29

결정위 공익위원 국회추천 논란 우려…구간설정위 '옥상옥'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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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위 공익위원 국회추천 논란 우려…구간설정위 '옥상옥' 지적

전문가 개입 늘리면 공정?…최저임금 결정체계 논란 계속

정부가 최저임금위원회 이원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을 확정했지만,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이 얼마나 사그라질지는 미지수다.

개편안 곳곳에 노·사의 격렬한 갈등을 초래할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가 27일 발표한 개편 최종안은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하는 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게 핵심이다.

전문가들로만 구성된 구간설정위가 최저임금 상·하한을 설정하면 노·사·공익위원이 참여하는 결정위원회가 그 범위 안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게 된다.

전문가들이 사실상 노·사 협상을 제한하게 한 것으로,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전문가의 영향력을 대폭 확대한 것이다. 여기에는 기존 최저임금위 논의가 노·사 중심으로 진행돼 과도한 갈등과 파행으로 점철됐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임서정 노동부 차관도 이날 브리핑에서 "앞으로 최저임금은 전문가들이 객관적인 지표를 근거로 설정한 구간 범위 내에서 심의가 이뤄지기 때문에 기존 노·사 교섭 방식의 갈등 구조가 완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구간설정위는 연중 상시로 통계 분석과 현장 조사 등을 하고 이를 토대로 최저임금 인상 구간을 설정한다. 구간 설정에는 최저임금 결정 기준에 추가된 고용 동향과 경제 상황 등이 반영된다.

문제는 전문가들이 얼마나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다.

개편 최종안은 노·사·정이 전문가를 5명씩 추천하고 노·사가 이들 중 3명씩 순차 배제해 9명으로 구간설정위를 구성하도록 했다.

노·사의 순차 배제는 중앙노동위원회 구성에 사용되는 방식으로, 극단적 입장을 가진 전문가를 배제해 갈등을 줄이는 장치다.

일각에서는 노·사의 순차 배제로 전문성과 소신을 갖춘 인사는 빠지고 무색무취의 인사만 남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노·사·정의 추천을 받는 전문가가 15명으로 소수인 만큼, 이 중 6명을 배제하더라도 충분히 전문성과 소신을 갖춘 인사로 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구간설정위 전문가들이 노·사의 대리인 역할을 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는다.

전문가가 노·사와는 달리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념적으로는 얼마든지 어느 한 편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논의가 구체적인 현실에 뿌리내리지 않은 탁상공론으로 변질할 경우 더 비타협적인 양상을 띨 수도 있다.

구간설정위 전문가들이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최저임금 상·하한 폭을 지나치게 크게 설정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최저임금 인상 구간 설정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이 때문에 노동부가 개편안 초안에 관한 의견수렴을 위해 개최한 전문가 토론회에서도 구간설정위를 따로 두는 게 '옥상옥'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결정위원회 공익위원 7명 중 4명을 국회의 추천을 받아 위촉하기로 한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논의가 국회의 개입으로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추천 공익위원 중 여당과 야당의 몫을 어떻게 배분할지를 두고 소모적인 논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최저임금제 시행 첫해인 1988년 이후 최저임금 결정에 참여하는 공익위원 구성에 국회 추천 방식을 도입한 것은 처음이다.

최저임금 결정 기준을 대폭 손질한 데 대해서도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현행 최저임금법은 최저임금 결정 기준으로 근로자 생계비, 유사근로자 임금, 노동 생산성, 소득분배율 등을 명시하고 있는데 개편안은 여기에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과 경제 상황을 추가했다.

올해 고용과 경기 사정이 크게 개선되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최저임금 결정에 고용과 경제 상황을 반영하면 최저임금 인상률을 낮추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최저임금 결정 기준 개편이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을 위한 수순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결정 기준 개편은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 '높은 수준의 고용'과 '경제적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는 국제노동기구(ILO) 제131호 협약 기준에 따른 것이라는 게 노동부의 입장이다.

노동부가 지난달 7일 발표한 개편 초안에는 기업의 임금 지급 능력도 기준에 포함됐으나 최종안에서는 빠졌다. 경영계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는 대목이다.

노동계는 기업의 임금 지급 능력을 최저임금 결정 기준으로 삼는 것은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 보장이라는 최저임금 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는 데다 사업주의 무능력에 따른 경영난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셈이라며 반대해왔다.

최저임금 결정 기준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자 전문가 토론회에서는 최저임금을 도출하는 객관적인 산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이에 대해 임서정 차관은 "(최저임금) 결정 산식을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중장기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게 다수 의견이었다"며 장기적 과제로 남겼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최저임금 제도를 도입한 지 31년 만에 결정체계를 개편하는 것은 최저임금 속도조절의 수순일 뿐 아니라 책임 회피를 위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한다.

최저임금이 형식적으로는 독립 기구인 최저임금위에서 결정되지만, 사실상 공익위원을 통해 정부가 개입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데도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경영계 비판과 속도조절에 대한 노동계 비판을 동시에 피하려고 결정체계를 복잡하게 만든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전문가 토론회에서 한 전문가는 정부 책임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구간설정위원회 전문가를 전원 정부가 추천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임금을 둘러싼 노·사 협상은 치열한 '밀고당기기'가 불가피한데도 정부가 노·사 교섭 위주의 최저임금 논의가 문제라는 식으로 접근해 노·사의 자율적인 협상에 대한 불신을 표출한 것도 문제라는 비판도 있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이 작년 5월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희석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잇는 '개악'으로 간주하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형석 전국민주노동조합(민주노총) 대변인은 "문제는 최저임금 결정 방법이 아니라 방향과 의지"라며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과 임금 양극화 완화 의지와 방안부터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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