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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 "범인 못찾는 경찰…흥신소라도 갈까요" 중고차 사기 피해자의 눈물

입력 2021-07-02 14:26 수정 2021-07-0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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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달간 신종 중고차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의 차량. 9명이 9대의 차를 빼앗겼다. [JTBC뉴스룸 캡처] 지난 두달간 신종 중고차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의 차량. 9명이 9대의 차를 빼앗겼다. [JTBC뉴스룸 캡처]
"용의자를 찾을 수 없어 수사를 중단합니다"

지난 2월, 신종 중고차 사기를 당해 자동차를 잃고 3천 여만원의 피해를 본 강 모씨는 사고 다음 날 경찰서에 고소장을 냈습니다. 석 달 뒤인 5월 31일 경기 파주경찰서는 강씨에게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어 수사를 중지한다"는 통지서를 보냈습니다. 결국 못 잡았다는 겁니다.

급증하는 신종 중고차 사기
강씨는 JTBC와의 통화에서 "고소장을 낼 때부터 경찰이 '대포폰이다, 발신자는 중국에 있을 것'이라 말했다"며 수사의지가 별로 없었다고 했습니다. 같은 수법으로 최근 두 달간 자동차를 잃어버린 피해자만 9명에 달합니다. 피해액은 2억원이 넘습니다. 확인된 숫자만 이 정도니 실제 피해자 수는 더 클 가능성이 큽니다.

한 피해자는 지난 1월 파주경찰서에 중고차 사기 사건을 신고했지만 경찰은 5월 "용의자 특정을 못한다"며 수사를 중단했다. [JTBC뉴스룸 캡처]한 피해자는 지난 1월 파주경찰서에 중고차 사기 사건을 신고했지만 경찰은 5월 "용의자 특정을 못한다"며 수사를 중단했다. [JTBC뉴스룸 캡처]
취재진이 만난 피해자 대부분은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합니다. 도대체 어떤 사기 수법이길래 경찰은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 피해자-딜러 연결해 '3자 사기'
최근 기승을 부리는 중고차 '3자 사기' 수법은 이렇습니다. 피해자가 인터넷에 중고차 매물을 올리면 사기꾼은 "차값을 그대로 쳐 드리겠다. 대신 세금 문제가 있으니 다운계약서를 작성하자"는 솔깃한 제안을 합니다. 사기꾼은 가짜 명함과 가짜 사업자 등록증을 보내며 "내가 멀리 있으니 협력업체 직원을 보내겠다"고 속입니다.

중고차 사기꾼이 피해자에게 보낸 문자. 인터넷에 올린 그대로 가격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JTBC뉴스룸 캡처]중고차 사기꾼이 피해자에게 보낸 문자. 인터넷에 올린 그대로 가격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JTBC뉴스룸 캡처]
여기서 협력업체 직원은 사실은 피해자와 가까운 지역에서 일하는 중고차 딜러입니다. 사기꾼은 딜러에게 다운계약서를 근거로 "싼 매물이 있다. 나와 잘 안다고 해달라"며 피해자의 차량을 소개하고 두 사람 사이 거래를 성사시킵니다. 이후 피해자에겐 "제 직원이 보낸 돈을 저한테 다시 보내시면 웃돈을 얹어 주겠다"고 합니다. 이 돈을 받으면 잠적합니다.

"딜러와 직접 계약속을 수 밖에 없었다"
"설마 이런 제안에 속겠어?"라는 분들 계실 겁니다. 하지만 JTBC가 만난 피해자들은 "속을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합니다. 사기꾼의 말대로 직접 딜러와 만나 차량을 계약했고, 잠시 자신의 통장에 돈도 들어왔으며, 또 '올린 가격 그대로 주겠다'는 제안이 너무 솔깃했다는 겁니다.

일부 딜러는 사기꾼과 잘 아는 사이라고 했다가, 사기가 드러나자 "사실 잘 모르는 사람"이라며 말을 바꾼 경우도 있었습니다. 피해자와 사기꾼의 통화 녹취를 들어보면 피해자들이 사기를 의심하는 질문도 여러 차례 합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사기꾼은 "걱정하지 말라""(딜러가 준 돈은) 제가 드린 돈이다"라며 피해자를 안심시켰습니다.

중고차 사기꾼이 피해자를 속이며 말하는 녹취록 중 일부. [JTBC뉴스룸 캡처]중고차 사기꾼이 피해자를 속이며 말하는 녹취록 중 일부. [JTBC뉴스룸 캡처]
JTBC가 앞서 입수한 경찰의 '수사결과통지서'에는 사기꾼을 도와준 사람도 등장합니다. 자신의 명의를 빌려 불법 유심을 개통하게 해 준 사람, 대출을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통장을 빌려준 사람들입니다.

보이스피싱과 마찬가지로 전화 통화 몇번으로 수천만원을 버는 신종 중고차 사기 역시 조력자들이 있었습니다. 사기꾼은 다른 사람의 명의로 유심을 빌려 대포폰을 이용해 사기를 쳤고, 또다른 사람의 통장으로 돈을 받아 입금된 금액을 당일 인출해 잠적하는 수법을 썼습니다.

피해자가 돈을 입금한 뒤 중고차 사기꾼이 잠적한 상황. [피해자 제공]피해자가 돈을 입금한 뒤 중고차 사기꾼이 잠적한 상황. [피해자 제공]
피해자들 "초동조치 나섰다면 추가 피해 막았을 것"
피해자들은 "경찰이 초동조치를 서둘렀다면 추가 피해를 막았을 것"이라 말합니다. 사기꾼은 4월부터 6월까지 5명의 피해자에게 같은 계좌로 사기를 쳤는데 그 계좌라도 신고 뒤 바로 정지시켰어야 했다는 겁니다.

지난 5월 2200만원의 피해를 본 김모씨는 "나와 거의 똑같은 수법으로 피해를 볼뻔한 분이 있었다"며 "그분이 도와주겠다고 해서 경찰에 연락하니 경찰로부터 '우리 관할이 아니니 112에 신고하라는 말만 들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4월~6월 사이에 사기를 당한 피해자 중 5명은 같은 이름, 같은 계좌, 같은 수법을 사용하는 사기꾼에게 사기를 당했다. [JTBC뉴스룸 캡처] 4월~6월 사이에 사기를 당한 피해자 중 5명은 같은 이름, 같은 계좌, 같은 수법을 사용하는 사기꾼에게 사기를 당했다. [JTBC뉴스룸 캡처]
김씨는 "흥신소라도 찾아가 사기꾼을 잡고 싶다" 했습니다. 다른 피해자는 은행에도 즉시 계좌 지급 정지를 요청했지만 "현행법상 보이스피싱 등이 아니면 어렵다"는 답변만 들었습니다. 지난 6월 그랜저를 빼앗긴 성 모씨는 "우리나라 법이 사기꾼에게만 유리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중고차 사기 피해자를 대리한 경험이 있는 주영글 변호사(법무법인 강남)는 "경찰이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하는 범죄가 의외로 많다"고 했습니다. 용의자가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쓰는 경우 놓치는 경우를 자주 경험했다는 겁니다.

"2~3일에 한명씩 피해자 늘어"
경찰 출신 변호사는 "경찰은 용의자가 특정되기 어려운 수사보단 당장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사건에 수사 인력을 투입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2~3일에 한 번꼴로 단톡방에 새로운 피해자가 들어온다"고 말합니다.

중고차 사기 취재를 하던 지난달 30일 또다른 피해자가 발생해 인터넷 커뮤니티에 피해글이 올라왔다. [피해자 측 제공]중고차 사기 취재를 하던 지난달 30일 또다른 피해자가 발생해 인터넷 커뮤니티에 피해글이 올라왔다. [피해자 측 제공]
실제 이번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도 지난달 29일 추가 피해자가 1명 더 늘어났습니다. 인터넷 중고차 거래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경찰 수사가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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