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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세 영원한 시인, 기형도 26주기…팔순 노모의 사연

입력 2015-03-05 22:00 수정 2015-03-05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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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기형도 시인이 쓴 '빈집'의 구절입니다. 내일모레(7일)면 시인이 우리 곁을 떠난 지 26년이 됩니다.

서른을 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영원한 문학청년으로 남았죠, 또 아들의 시집을 오랜만에 펼쳐 든 팔순 어머니의 사연까지… 강나현 기자가 전합니다.

[기자]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아들이 더 보고파질까, 어머니는 그동안 쉽게 시집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장옥순 여사/기형도 시인 어머니 : 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니까… 우리 아들이 나를 생각해서. 그 열무장사 기다리면서 제 방에서 공부하던 게 눈에 선해요.]

나중에 꼭 학교에 다니라는 아들의 말을 잊지 못했던 어머니는 팔순이 넘어서야 학교 문을 두드렸고 지난달 초등학교 졸업장도 받았습니다.

26년 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시인 기형도.

어릴 때부터 글 쓰는 일을 즐겼던 그는 신문사에 기자로 들어가고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시인의 꿈을 조금씩 펼쳐 나갔습니다.

늘 쾌활하고 사람을 좋아했던 그는 술엔 유독 약했습니다.

[박종권/전 중앙일보 기자(기형도 시인 동료) : 술 깨는 방법으로 노래를 부르거나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면서, 잠들면서 그렇게 해서 술이 깬 다음에 집으로 귀가를 했었죠.]

1989년 3월 7일 새벽, 여느 때처럼 극장에 앉아있던 그는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그의 나이 29살, 생일을 일주일 남겨둔 채였습니다.

가방 속에 들어있던 원고뭉치를 엮어 처음이자 마지막인 그의 시집이 나왔습니다.

밝고 다정했던 모습과 달리, 그가 남긴 시에는 시대의 우울이 깊게 배어있습니다.

멀어지는 희망을 안타까워한 그의 시는 청춘들에게 가슴 시린 위로가 됐습니다.

[이영준 문학평론가/기형도 시인 대학 친구 : 고독과 소외감, 사회 상황이 주는 절망이 기형도가 그려내는 시 세계와 일치하지 않나 싶고요, 현재 젊은 세대에겐 자신들의 심정을 대변해준다고 느낄 거라고 생각해요.]

멀어지는 희망을 안타까워 한 그의 시는 청춘들에게 가슴 시린 위로가 됐습니다.

[장옥순 여사/기형도 시인 어머니 : (형도는) 내가 쓴 글을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지금도 만날 기도합니다. 우리 형도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우리 형도 이야기하는 사람들 모두 건강하고 좋은 일만 있기를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처럼 그가 남긴 글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러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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