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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반항하는 노예'들이 만든…'민주주의의 품격'

입력 2017-01-25 22:45

누군가는 결코 이해하지 못할…법을 초월한 '인간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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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결코 이해하지 못할…법을 초월한 '인간의 품격'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미켈란젤로의 작품, '반항하는 노예'입니다.

때는 1983년. 당시 서른을 갓 넘긴 청년은 작품 앞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속에서 뭐라 이름 하기 어려운 광풍이 소용돌이쳐 도무지 진정할 줄을 모른다… '노예'는 나의 형인 것이다. 나는 그것을 감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 청년의 이름은 서경식. 그의 두 형 서승과 서준식은 1971년 재일교포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되어 12년째 복역 중이었습니다.

청년의 눈에는 차가운 독방에 갇혀있는 형들의 모습과 미켈란젤로의 이 작품 '반항하는 노예'가 겹쳐 보였던 것입니다.

평범한 시민을 하루아침에 간첩으로 만들었던 수많은 조작사건들은 그 이후로도 독재의 통치수단으로 악용되어 수도 없이 되풀이됐습니다.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 아니 누군가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말하는 그때의 가해자들.

그 중의 한 명은 1975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시절 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총 지휘한 인물이었습니다.

역사의 으슥한 굴곡마다 빠짐없이 이름을 올려 왔던 사람. '법의 지배자'라는 오랜 명성답게 처벌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지요.

이번만큼은 단단하고 촘촘하게 짜인 그물망 앞에서 그는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인가.

공교로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지금 권위주의 정권이 오랜 세월 가둬두었던 그 반항하는 노예들이 남겨준 혜택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앞서 언급한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 서준식 씨를 비롯한 인권운동가들의 노력으로 인해 사복을 입은 채로 조사를 받고 난방이 가능한 구치소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들의 뒤를 이어 구치소로 들어올 사람들이 누구이든 심지어 가해자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인권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 그것은 공작정치의 피해자들이 보여준 품격이었습니다.

유신헌법의 설계자이며 법의 지배자라 불린 누군가는, 그리고 이제 와 난데없이 민주주의를 입에 올린 누군가는, 결코 이해하지 못할 법을 초월한 인간의 품격.

포기하지 않고 '반항하는 노예'들이 만들어낸… 법 따윈 없어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평범한 시민들이 만들어낸… 민주주의의 품격이었습니다.

오늘(25일)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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