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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쓰레기봉투 산' 뒤에…숨겨진 '공짜 노동'

입력 2020-10-26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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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늦은 밤 큰 길가에 보면 '종량제 봉투'들이 쌓여있곤 하지요. 몸집이 큰 청소차가 골목골목 다닐 수가 없으니 집집마다 나온 종량제 봉투를 차에 싣기 쉽게 미리, 큰길에 모아둔 건데요. 청소 노동자들 사이에서 선작업이라고 불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일부 지자체 청소 노동자들은 이 작업이 노동 시간에 포함돼있지 않아서 무료 봉사나 마찬가지라고 말하는데요.

밀착카메라 이선화 기자가 이들의 밤을 함께 해봤습니다.

[기자]

청소노동자 서광원 씨의 하루는 길거리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노란 비닐봉투에 담아온 작업복을 꺼내 덧대입습니다.

따로 탈의실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서광원/청소노동자 : 탈의할 수 있는 공간이 없습니다. 노상에서 탈의하고 노상에서 탈복합니다.]

서둘러 매일 손수레를 세워두는 곳으로 이동합니다.

골목골목 손수레를 끌고 바삐 움직입니다.

지금부턴 시간 싸움입니다.

하지만 무게 때문에 마음처럼 따라주질 않습니다.

[이거는 100L. 이거는 그나마 덜한 거예요. 이거 한번 들어 보세요. (이건 그래도 50L인데…75보다 더 무거운데요.)]

안전모를 쓰면 시야를 가리는 탓에 골목길을 돌 때는 잠시 벗어둡니다.

골목골목에서 수거해온 쓰레기들을 한곳에 모아두고 있습니다.

옆에 도로가 청소차가 다니는 도로이기 때문에 이렇게 모아두면 한 번에 실을 수가 있는 건데요.

차량이 오기까지 다섯 시간 정도를 기다려야해서, 이렇게 분류 작업을 해놓고 있습니다.

[서광원/청소노동자 : 이걸 깨끗하게 해놓는 이유가 냄새가 나잖아요. 주민들 안 좋잖아요. 이쪽 사람들은 냄새가 나겠지. 그나마 내가 정리를 해주니까 (이 장소에) 놓지 말라는 얘기를 안 하죠.]

일을 시작한 지 벌써 두 시간 반째, 쓰레기봉투들이 어느덧 산처럼 쌓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출근 시간이 지금부터라고 말합니다.

[서광원/청소노동자 : (계약서상) 오전 1시부터 10시. 중간에 휴게시간 한 시간 포함. 4시간, 4시간 휴게시간 한 시간 포함. 9시간 근무로 되어 있습니다.]

앞선 작업은 본 업무를 위한 것으로, 말하자면 '무료 봉사'인 셈입니다.

지금 시간이 새벽 두 시를 훌쩍 넘겼습니다.

출근해서 옷을 갈아입고 업무를 시작한 지 벌써 세 시간 반이 넘었는데요.

그런데 이렇게 미리 출근해서 작업을 해놓지 않으면 주업무인 청소차 상차 작업 시간을 맞출 수가 없다고 합니다.

청소차가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면서 쓰레기를 수거하면 정해진 시간 내에 일을 끝낼 수 없는 겁니다.

때문에 매일 두세 시간 씩 먼저 출근하는 게 관행이 된 상황입니다.

새벽 세 시가 되자 청소차가 나타납니다.

쓰레기봉투를 모아둔 곳을 다시 찾아 차에 옮겨 실은 뒤 뒤에 올라탑니다.

[서광원/청소노동자 : 온도가 제일 많이 떨어지는 게 새벽이잖아요. 2시, 3시. (차에) 매달려서 하면 아우 정말 추워요. 추워서 동상 걸리는 거는 어렵지 않죠.]

청소차가 집하장으로 출발하면, 그제야 노동자들의 휴식 시간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쉴 곳이라곤 청소차에 실릴 스티로폼이 전부입니다.

[서광원/청소노동자 : 차 기다리고, 길거리에서 기다리는 것이 저희 휴식시간입니다. (그런데) 움직이다 보면 몸에 땀이 나잖아요. 땀이 나는데 잠깐 쉬면 땀난 거가 다 얼음이 되잖아요.]

청소차가 두 번째 집하장으로 떠나자, 어느새 옷을 갈아입었던 길가의 곰탕집이 문을 열었습니다.

가게 주인이 편의를 봐주는 덕에 매일 이곳에서 손을 씻고, 간단하게 끼니도 해결합니다.

[서광원/청소노동자 :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음식점이 문을 (많이) 닫아서 저희가 거기서 세수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그나마 주민들이 도와줬는데.]

최근 지자체에선 청소노동자들의 근무 시간을 밤에서 낮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업무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취지입니다.

노동자들은 환영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선작업 문제가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반쪽짜리 정책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장경술/전국연합인천환경분과협의회 의장 : 일찍 나와서 일하는 게 한 시간 정도면 상관없는데 보통 서너 시간. 6일 근무입니다. 이런 식으로 주간작업한다고 하면 주간작업하나 마나예요, 더 힘들어져요.]

결국 사람을 더 뽑고, 차량 대수를 늘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구청 측은 당장 규모를 확대할 여력이 없다고 말합니다.

[인천 중구청 환경보호과 : 아직 우리는 확정이 안 됐고요, 주간근무제가. 청소행정에 들어가는 예산이 너무 많다 보니까 업체에서 원하는 대로 인원을 무한정 늘려줄 수는 있는, 기초자치단체 예산 사정이 그렇게는 안 되거든요.]

다시 아침이 왔습니다.

거리는 다시 깨끗해졌습니다.

모두가 잠든 시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분주했던 청소 노동자들 덕입니다.

이들이 흘린 땀이 이제는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VJ : 박선권 / 영상디자인 : 배윤주 / 인턴기자 : 김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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