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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동안 찾지 못한 아들 묘비 만이라도" 노부부 마지막 동행

입력 2016-05-1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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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동안 찾지 못한 아들 묘비 만이라도" 노부부 마지막 동행


"36년 동안 찾지 못한 아들 묘비 만이라도" 노부부 마지막 동행


"5·18 36년이 되도록 찾지 못하고 있는 아들을 위한 마지막 제사 일지도 몰라 올해는 참석했어라"

검정색 정장과 백색 한복을 차려입은 임준배(82)·김진덕(72) 노부부는 손을 잡고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언던길을 오르고 있었다.

36년이 되도록 시신조차 찾지 못해 아들의 이름 '임옥환'(당시 조대부고 3년)만 새겨진 묘비만이라도 어루만지기 위해 민주의 문을 통하지 않고 계단이 없는 샛길을 택해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손을 잡고 걷는 뒷모습은 다정해 보이는 부부였지만 최근 쓰러져 거동이 불편한 남편 임씨를 부인 김씨가 이끌고 가고 있었다.

노부부는 이마저도 힘겨운지 서너걸음 뒤 1분 정도 쉬기를 반복했다. 유영봉안소 앞에서는 행불자 묘역을 바라보며 아들 이름을 작은 목소리로 불러본 뒤 영령의 넋을 위로하는 추모제가 열리는 추모탑 앞에 도착했다.

노부부의 아들은 당시 전남 고흥에서 광주로 유학을 와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었다.

계엄군이 광주로 들어가는 모든 길목을 차단하자 그는 친구 3명과 함께 5월22일 학교 뒷산을 통해 부모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실종됐다.

당시 동행했던 친구 1명은 계엄군에 체포됐고 2명은 도주했지만 그만 36년이 되도록 부모님 품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노부부는 그때 부터 아들이 돌아오기 만을 기다렸다. 혹시 시신이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마음에 신원미상의 시신이라도 발견되면 만사를 제쳐두고 찾아다녔다.

하지만 세월은 36년이 흘렀고 어느덧 이들은 거동조차 제대로 할 수 없도록 늙어버렸다. 남편 임씨는 수년전 풍으로 쓰러져 지팡이를 집지 않고서는 한발도 떼지 못한다.

이 때문에 노부부는 3년전부터 추모제에 참석하지 않았다. 아들의 누나만 참석해 이름만 새겨진 묘비에 술을 따르고 절을 올렸다.

그러나 이번 추모제는 지나칠 수 없었다.

부인 김씨는 "당시 함께 산을 탔던 친구들의 증언이 없었으면 행불자 묘역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을 것인디"라며 "그것을 위안으로 삼고 지금까지 버티고 있당게요"라고 했다.

이어 "아버지 몸이 더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고 올해가 아무래도 마지막 인 것 같아 참석했어라. 아들 시신만이라도 만져볼 수 있게 도와주면 안되것소"라며 마련된 자리에 앉아 추모제를 기다렸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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