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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다 버렸다" "다행인지도"…수능연기에 학생·학부모 '멘붕'

입력 2017-11-15 23:06 수정 2017-11-16 01:09

"걱정돼서 아이한테 전화했더니 환호성 지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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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돼서 아이한테 전화했더니 환호성 지르더라"

포항 지진 영향으로 사상 최초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연기되자 학생과 학부모들은 말 그대로 '멘붕'에 빠졌다.

수능일을 목표로 시험 준비를 해왔던 학생들은 앞으로 스케줄과 체력·정신력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러워했지만, 자연재해로 인한 수능 연기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도 많았다.

일부 학생들은 시험 준비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기도 했다.

경기도 용인 수지에 거주하는 고3 수험생 서모(19)군은 "떨려서 잠도 못 잤는데 갑자기 수능이 연기돼 어이가 없다"면서도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주일 더 남았으니까 안도감이 든다"고 말했다.

집에서 마지막 정리를 하다가 연기 소식을 들었다는 장예지(19)양은 "재수를 하는 입장에서 많이 긴장했던 시험인데 뉴스를 보고 앞으로 대입 전형일정이 어떻게 될지 혼란스러웠다"며 "수능 이후에 논술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향후 일정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는 게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장양은 "지금까지 달려온 수험생 입장에서는 체력 관리, 정신력 관리를 일주일 더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면서도 "이미 시험 문제는 출제됐을 테고, 일주일 동안 좀 더 최선을 다하면 결과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 반 다행 반'인 심경"이라고 말했다.

경기 광명의 고3 수험생 박모군도 "이번 주말에 일부 대학 논술 시험이 있는데 저는 수능을 보기 전에 논술부터 보게 되는 셈"이라며 "수능 공부를 미뤄두고 논술 준비를 할 수도 없어 애매하다"고 걱정스러워했다.

그러나 일부 수험생은 수능 연기가 당혹스러운 듯 과격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경기도의 한 기숙학교에 다니는 이모(18)군은 "기숙사에서 친구들이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며 "화가 나 물건을 던지며 부수는 아이들까지 있다"고 전했다.

이군은 "마음의 준비를 다 하고 있었는데 이게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포항 애들은 좋겠지만, 연기 대신 다른 방식을 찾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학부모들도 수험생들만큼이나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오히려 잘됐다는 의견도 함께 나왔다.

경기 일산에 사는 고3 학부모 신모(54·여)씨는 "아들이 페이스 조절을 한다고 일찍 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황당하고 믿기지 않는다"며 "수능 공부를 1주일 더 해야 하는 아들이 안됐다"고 걱정했다.

고3 학부모 김모(50)씨는 "수능 연기는 아이들 다 죽이는 것이다"라며 "우리 아들은 책도 다 버렸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울상을 지었다.

재수생 자녀를 둔 김모(59)씨는 "지금 아들이 도서관에 있는데 평소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하고 공부해서인지 연결이 안 된다"며 "연기된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고3 딸을 둔 아버지 김모(48)씨는 "애 엄마와 '애들 힘든데 어떡하냐'며 착잡해 하고 있었는데 애하고 통화해보니까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고 한다"면서 "내일 수능에 엄청난 중압감 느끼고 있었는데 당장의 긴장감에서 해방되고 준비할 시간을 더 벌어서 좋다고 한다. 애가 좋아하니까 다행"이라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수능연기에 학원가에서도 혼란스러운 모습이 감지됐다.

서울 노량진 학원에서 수험생활을 해온 정모(20·여)씨는 "이날만을 위해서 1년간 준비했고 막바지 컨디션 관리하면서 수액 주사도 맞았는데 너무 당황스럽다"며 "앞으로 1주일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한 학원 관계자는 "학원을 여는지, 자습실에서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지 등을 묻는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며 "일단 정상적으로 나와서 공부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인터넷카페에는 '지구가 준 선물-마지막 1주일을 불사르는 특강'이라는 대치동 특강 상품 광고가 올라오기도 했다. 누리꾼들은 학원가의 장삿속에 혀를 끌끌 차면서도 진짜 학원의 특강 상품인지를 의심하기도 했다.

학교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일단 수능이 연기됐다는 사실을 알리고 교육청·학교의 지침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강남의 한 고등학교 교장은 "지진은 자연재해라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것이니 공정성을 위해 잘한 결정"이라면서도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일주일 고통이 더 연장된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경기도 지역의 고3 담임선생님인 김모씨는 "학생이 저한테 연락해서 수능 연기 사실을 알게 됐다"며 "교육청에서는 아직 아무 전달사항이 없어 당장 내일 학생들에게 등교하라고 해야 할지 어떨지 알 수가 없다"고 답답해했다.

경기 하남고 이수목(34) 선생님은 "학교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수능 시험 진행에 무리가 있으니 잘한 결정"이라며 "논술 등이 맞물려 있는데 대학교도 발 빠르게 일정을 수험생에게 공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사는 "예정대로 해야 하는데 이렇게 연기되면 불안감이 증폭되는 등 더 큰 혼란이 올 수 있다"며 "연기할 것이었다면 더 일찍 알려줬어야 한다. 컨디션 조절한다고 벌써 잠자리에 든 학생들이 고사장으로 '등교'하는 진풍경이 벌어지면 어쩌나"하고 우려했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는 수능 연기를 두고 수험생들의 푸념과 안전을 위해 옳은 결정이었다는 등의 글들이 올라왔다.

수험생으로 보이는 한 네티즌은 "내일 이 시간에는 세상 편히 잘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공부를 해야 한다"며 "포항 지진을 생각하면 옳은 결정이라서 누구 탓도 못하겠다"고 아쉬워했다.

다른 트위터 사용자는 "군인인 친구 동생이 수능을 보려고 휴가를 맞춰서 나왔는데 이렇게 연기해버리면 어떻게 하느냐"라며 급작스러운 연기로 특수한 사정이 있는 수험생들이 곤란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트위터 사용자는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수능이 아무리 의미가 큰 전국적 행사라고 해도 학생들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을 가지고 시험을 치르는 건 정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글을 남겼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수험생들이 수능을 앞두고 학원 바닥에 버렸던 문제집을 다시 주워서 가는 사진 등이 올라오기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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