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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속 압구정 아파트 굴뚝서 해넘긴 경비노동자

입력 2013-01-01 09:34

"시말서 한 번에 해고…쌍용차 노동자 보고 고공농성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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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말서 한 번에 해고…쌍용차 노동자 보고 고공농성 결심"


혹한속 압구정 아파트 굴뚝서 해넘긴 경비노동자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 중 한 곳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이곳에 입주한 1천900여가구 6천여명의 주민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을 가족과 함께 마무리할 때 한 명의 노동자가 단지내 굴뚝에 올라 영하 10도의 한파 속에서 '고공 농성'을 시작했다.

31일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솟은 42m 높이의 굴뚝에 올라간 경비원 민모(61)씨는 함께 올라간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관계자와 함께 침낭에 들어가 칼바람 속에 새해를 맞았다.

민씨는 1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내년까지 근무보장을 해준다던 회사에서 부당해고를 당했는데 이곳에라도 올라가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았다"라며 고공 농성을 시작한 이유를 설명했다.

2003년 경비원 일을 시작한 민씨는 최근 아파트 관리회사인 한국주택관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올해 정년(60세)을 넘긴 민씨는 62세까지 촉탁직으로 계속 일할 걸로 예상했으나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취업규칙상 정년이 60세지만 관리회사는 그동안 근무평가가 우수한 경비원을 65세까지 촉탁직으로 재고용해왔다. 지난 3월 아파트 동대표 회의에서 촉탁직 상한 연령을 65세에서 62세로 낮췄으나 민씨에게는 아직 1년이 남아있었다.

민씨는 "딱 한 번 자정에 도는 순찰을 깜빡해 시말서를 썼는데 그게 해고 사유가 될지 몰랐다"며 "항상 휴대전화에 새벽 12시로 알람을 맞춰놓고 자는데 그날은 실수로 정오로 맞춰놓아 깨지 못했다"고 말했다.

관리회사는 올해 정년퇴직 대상인 경비원 23명 중 14명을 해고하고 9명을 촉탁직으로 1년간 재계약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해직자들은 새벽 시간 근무 중 잠깐 졸았거나 경비초소 안의 형광등 밝기를 무단으로 바꾸는 등 경미한 사유로 시말서를 쓴 경비원들이다.

고공 농성을 시작하자 관리회사가 노조와 교섭에 나섰지만 해고자 복직 등 채용과 관련된 실질적인 권한을 지닌 아파트 동대표와 협의해야 하는 상황이라 협상이 언제 타결될지는 미지수다.

관리회사가 노조에 '약한' 모습을 보일 경우 다른 아파트 단지의 경비용역을 따내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씨는 쌍용자동차 공장 정문 앞 송전탑에서 시위하는 노동자들을 신문에서 보고 고공 농성을 결심했다. 1982년 단지가 들어설 당시 세워진 이 굴뚝은 아파트 난방을 중앙에서 개별난방으로 전환하면서 10여 년 전부터 사용되지 않고 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민씨는 "위를 보면 어지럽고 아래를 보면 아찔해서 눈앞 사다리만 봤다"며 "한 계단 올라가고 쉬고 또 한 계단 올라가고 쉬면서 겨우 올라갔는데 나중에 내려간다 해도 어떻게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왜 고공농성을 선택했느냐고 묻자 "오늘 새벽부터 새 인력이 들어오는데 급한 마음에 다른 방법을 생각할 시간도 없고 '저기에 올라가면 뭔가 해결되겠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에게)나 혼자 해결할 테니까 제발 이곳에 오지 말라고 했다"며 "함께 모여 식사하면서 새해를 맞아야 하는데 이렇게 돼서 미안하다. 할 말이 없다"며 말끝을 흐렸다.

바람을 조금이나마 피하고자 난간 위에 누워 전화를 받던 민씨는 손이 시려 더는 휴대전화를 들고 있기가 어렵다며 통화를 마쳤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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